아빠와 붕어빵
유솔아!
네가 다섯 살 때 꿀꿀이 할머니는 너에게 '기적의 한글'이라는 책을 사주었지.
평소에는 너에게 맞는 동화책을 사주다가 이번에는 네가 스스로 글을 깨우쳐서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어. 하지만 너의 아빠와 엄마는 시큰둥했어. 유솔이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안 가르칠 거라느니, 학교 들어가서 배워도 늦지 않다는 거였지. 그렇다고 사온 책을 다시 들고 갈 수도 없어서 일단 받으라 하고 주고 왔지. 돌아가는 길, 괜한 짓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더구나. 네 엄마 아빠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 일인데 이 할미가 공연히 주책을 떨었나 싶었어. 그러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렸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네가 한글을 읽는다고 네 엄마 아빠가 자랑을 하더구나.
그러면서 책을 펼쳐 보이며 너에게 읽게 했어.
정말로 유솔이 너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 나갔어. 할머니는 깜짝 놀랐지 뭐야.
그간의 사연을 들어보니, 할머니가 사다준 한글책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책꽂이에 몇 달째 꽂혀 있었대. 그러던 어느 날, 유솔이 네가 그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책을 펴더래.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재미를 느꼈는지 해보겠다고 했대.
그 후로 하루에 한 장씩 풀어보며 재미있어하더래. 스티커를 붙이며 공부를 하는 글자 놀이에 재미를 붙였나 봐. 5권으로 된 그 책을 두 권 정도 풀었을 때, 너는 책꽂이에 꽂힌 책 제목을 읽어나가더래.
네 엄마 아빠는 희한하고 신기해서 날마다 글자를 알아맞히게 했대. 너는 척척 다 읽어나갔고, 재미를 붙여서 한글을 거의 다 읽을 수 있게 됐어.
할머니는 네가 그럴 줄 알았어. 너는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라 그럴 것 같았거든. 할머니 생각은 주입식으로 한글을 공부시키려고 그런 책을 사다 준 게 아니라, 너 스스로 글자를 익혀서 책을 스스로 읽게 하고 싶었어. 책을 많이 읽으면 머릿속 생각들이 넓어 지거든.
너는 다섯 살 때 이미 한글을 다 깨치고 일기도 쓰고 있었어.
일기도 상당히 중요하거든. 자기의 생각을 적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거야.
유솔아!
사실, 이런 네 모습은 아빠의 어릴 적 모습과 붕어빵이란다.
네 아빠는 어떻게 한글을 떼었는지 아니?
아빠는 세 살 때부터 한글을 읽기 시작했어. 겨우 말을 할 때였는데 한글을 읽는 거야.
할머니가 아빠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적이 있냐고? 아니, 전혀 없었지.
TV를 좋아하던 아빠는 TV에서 나오는 광고나 드라마 글자들을 보고 혼자 깨우친 거야.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우연히 아빠랑 시장에 갔는데, 아빠가 '롯데' 그렇게 읽는 거야.
할머니는 깜짝 놀라서 물었지.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아빠는 무심하게 말했지.
"TV에 나오는 거잖아."
TV에서 롯데 광고할 때 본 '롯데'를 보고 그걸 알았던 거지.
그 후에도 '금성', '3840 유격대', '거북이' '간장','수사반장', 'KBS, 'MBC', 'SBS', 등등.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신이 나서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아빠가 아는 글자들을 가리키며 읽게 했지. 아빠는 그걸 줄줄 읽어대고, 그걸 본 사람들은 놀라며 이렇게 말했어.
'와! 이 얘 천재 아니에요? 세 살짜리가 어쩜 이럴 수가 있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빠가 천재인 줄 알고 너무나 기뻐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했지.
아무튼 네 아빠는 할머니가 일부러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다 알아버렸어. 그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을 다 알아버렸지 뭐니.
유솔아!
아빠는 TV로 세상을 배우고, 너는 할머니의 책 선물로 스스로 세상의 문을 열었구나.
다섯 살에 이미 일기를 쓰며 네 생각을 소중히 담아내던 그 기특한 모습처럼, 앞으로 네가 써 내려갈 인생의 문장들도 언제나 당당하게 빛나길 바란다.
아빠를 꼭 닮은 영리하고 늠름한 우리 손자 유솔아, 꿀꿀이 할머니가 많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