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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02. 2024

장다리꽃 (3)

1부/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빈소에는 문상객들이 연이어 찾아들었고, 빈소 입구 양쪽으로 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영정 사진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퇴원 후, 엄마의 다리 골절만 완쾌되면 별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걸어 다닐 정도로 회복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 하던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식탐이 많아지고 눈동자는 의심으로 번들거렸다. 먹을 것을 숨겨놓고 몰래 먹는다고 서운해했으며,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게다가 결벽증까지 있었다. 식사할 때도 깨끗이 삶아놓은 수건을 식탁 위에 깔고 그 위에 손을 얹어야 하고, 냅킨, 물컵 등을 준비해야 했다. 음식이 조금만 묻어도 금방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고, 뜨거운 것은 뜨겁다고, 매운 것은 너무 맵다고 타박을 했다. 느닷없이 쑥떡이 먹고 싶다, 녹두전이 먹고 싶다 해서, 녹두 가루를 사다가 전을 지지면 맛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견디기 힘들게 한 건, 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일이 참견하는 것이었다. 주방으로 욕실로 따라다니며 왜 설거지를 쌓아두느냐, 몸에 안 좋은 커피는 왜 마시느냐, 수건을 쓰면 제자리에 두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았고, 가스 불에 음식을 데우고서도 가스 불을 잠그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로 가스 불을 만지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으나 엄마는 번번이 그 일을 잊어버리고 가스 불을 만졌다. 불안해진 나는 한시도 엄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주방 건너편으로 이제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언덕 위에는 물기 머금은 초록의 기운이 가득했다.

분주히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나를 엄마가 불렀다.

밤새 채워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바지를 훌렁 벗어버린 엄마의 뜨뜻한 아랫도리에서는 지린내가 진동했다. 순간 나는 코를 막았다. 기저귀를 빼내어 휴지통에 넣고 더운 물수건으로 엄마의 아랫도리와 허벅지를 신경질적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음모가 다 빠져버린 엄마의 생식기는 굳게 닫혀 있었다. 밤새 화장실 들락거리는 것을 힘들어해서 채워둔 기저귀지만, 엄마 스스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도 번번이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창피한 줄도 몰라? 아무리 딸이라지만 부끄러운 줄도 모르냐고. 만약 내가 없으면 사위한테 이렇게 갈아달라고 할 거야?”

나는 앙상한 엄마의 아랫도리에 성인용 기저귀를 갈아 끼우며 짜증을 냈다.

엄마는 울먹이며 말했다.

“나가 잘못했다. 언능 죽어 없어져뿌러야 쓸 건디 무담씨 살아서 니할라 괴롭히고 있는갑다, 시방. 잠자데끼 살짝 가부렀으믄 원도 없겄는디.”

“맨날 그 소리. 엄마 혼자 오래오래 살아.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겠어! 진짜.”

나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포악을 떨었다.     


엄마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밖으로 나와 아파트를 배회하다가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엄마가 좋아하는 인절미 쑥떡과 과일들을 샀다. 집으로 간 나는 시장 떡집에서 사 온 따끈한 인절미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그것을 받아 든 엄마는 주춤주춤 싱크대로 가더니 떡을 물로 씻는 것이었다.

“왜 그래 엄마?”

엄마는 나를 힐끗 돌아보더니 말했다.

“떡에 허연 것이 안 묻었냐. 씻어 묵어야 제.”

나는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걸 왜 씼어요? 아무려면 딸이 못 먹을 거 묻어있는데 드시라고 하겠어? 그렇게 딸을 못 믿어요?”

엄마는 떡을 씻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손사래를 훼훼 치며 말했다.

“그것이 아니여. 떡에 뭐시 묻어서 그러제이. 암 껏도 아닌 거 갖고 무담씨 그래 싸아. 참말로.”     


그 일이 있고부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 엄마는 주눅이 들어갔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도 엄마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장을 봐왔다. 냉장고에 음식들을 사다 채워놓으며 언제든지 꺼내 먹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항상 나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냉장고를 열었다.


그날도 엄마의 점심을 챙겨주고 나서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항상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엄마가 귀찮기도 하고,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내 옆에만 있으려고 하는 엄마와 같이 있으면 숨이 막혔다. 나는 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못 들은 척 대꾸하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

“또 왜 그래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나 요거 하나 묵어도 되겄냐?”

엄마는 양갱을 손에 든 채 문밖에 서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말했어요. 다 엄마 잡수시라고 사다 논 거야. 그냥 잡수시면 될 걸 왜 자꾸 날 귀찮게 해. 진짜.”

다시 문을 쾅 닫고 난 나는 오디오의 음악 볼륨을 더 크게 높이고 있는 대로 방안의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한참 후에 밖으로 나가보니 집안이 조용했다. 나는 엄마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엄마는 침대 위에 앉아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신혼 시절, 어느 이름 모를 산사를 배경으로 찍은 흑백 사진이었다. 젊은 아버지가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활짝 웃고 있었고, 엄마는 그 옆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요 때가 젤 좋았제. 요 때가 느그 큰오빠 임신해 있었을 때여.”

“천연두로 저세상 갔다던 그 오빠?”

“그러제. 내 자석이 안 될라고 그랬등가, 어찌 그리도 잘생기고 포동포동 이뻤등고 잉. 어디 나가믄, 모도 다 이쁘담서 보듬고, 쓰다듬고 했제. 그 해에 천연두가 돌아 댕게서 다덜 주사들을 맞혔는디, 이 미련흔 어매가 젖살 올라 뽀얗고 통통흔 애기 주사 맞으믄 살 빠진다고, 안 맞혔드만 병이 붙어서…. 금쪽같은 우리 애기 몸에 열꽃이 피고, 무신 약을 써도 안 듣드만, 저 세상으로 안 가뿌렀냐.”

“그 얘기는 우리에게 늘 하신 얘기잖아요. 엄마.”


느그 아부지랑 애기를 묻고 무덤가에 넋을 빼고 앉았는디, 그때도 봄이었등가 무덤가에 장다리꽃들이 노랗게 피었드랑께. 그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날아가는디, 그 거이 내 새끼 넋인 거 맹키어서 한정 없이 울었제. 인자 나는 어찌 살끄나. 아까운 자석 짠해서 나는 어찌 살 끄나……. 날이 저물어 집에 와 봉께 느그 오빠 똥 기저귀가 한쪽에 뭉쳐 있는디, 나는 그거슬 코에 박고 울었니라.”


“냄새 안 났어. 엄마?”

“내 새끼 몸에서 나온 똥인디 뭔 냄새가 난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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