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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04. 2024

장다리꽃 (5)

1부/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엄마의 위내시경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위암일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정밀검사를 해서 위암 판정이 나도 지금 상태로는 수술이 어렵습니다. 너무 노쇠하셔서 수술 도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 설령 수술이 잘되었다고 해도 회복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의사는 공연히 수술해서 생명을 단축할 필요 있겠느냐며, 퇴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를 퇴원시킨 나는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형제들의 논의 끝에 엄마를 노인 병원으로 모시기로 결론을 내렸다.

동생이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동생의 말에 엄마는 훌쩍훌쩍 울었다.

“힘들어도 꾹 참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약 잘 드시면 반드시 좋아질 거예요. 엄마,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당분간만 병원에서 치료합시다. 알았죠? 우리가 수시로 엄마에게 갈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동생이 엄마를 설득하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 병원으로 떠나는 날 아침에 비가 내렸다.

나와 동생은 엄마의 짐을 싸 들고 노인 병원으로 향했다.

말없이 비 오는 차창 밖만 바라보고 있던 엄마는 체념했는지 차에서 계속 잠을 잤다.

동생은 차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그의 얼굴에 착잡한 표정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곤 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노인 병원은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잔뜩 흐린 하늘은 낮게 가라앉았고 부연 황사 먼지가 얼굴 위로 덮쳐 왔다.

동생이 엄마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들어갔다.

담당 의사를 만난 뒤, 원무과에서 입원 절차를 마치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입원실 입구는 행여 노인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철제로 칸막이를 쳐 외부와의 접촉을 막고 있었다. 창가에는 휠체어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노인, 지팡이를 짚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노인들이 보였다. 복도 양쪽으로 열어 놓은 병실 안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침대 하나씩을 차지한 채 누워있었다.  

엄마는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는 터널을 들어가듯 천천히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병실로 들어선 간호사가 엄마를 창가 쪽으로 안내한 뒤 환자복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수건에 물을 적셔 엄마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눈곱이 낀 눈과 입술을 닦아주고 뼈만 남은 엄마의 다리와 몸을 주물렀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엄마의 몸에서는 퇴락한 가을 낙엽 냄새가 났다.


엄마의 옆 침대에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늙은 환자가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골반 쪽은 욕창으로 살이 깊이 패어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었다. 간호사가 깊게 팬 그곳에 박혀있는 소독솜을 빼내고 새로운 솜을 쑤셔 넣었다. 나와 동생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녁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병실 안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묵묵히 텔레비전만 올려다보던 내가 이제 가야 한다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내 손을 붙잡고 따라 나왔다.

“엄마 들어가요. 또 올게.”

내가 엄마의 손을 놓으려 하자 엄마는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까칠한 엄마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 마음 굳게 먹고 있어요. 응? 알았지?”

나는 아기를 달래듯 엄마를 달랜 뒤 손을 빼내려 했지만, 엄마는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러시면 보호자 분들이 마음 편히 못 가시지요, 할머니.”

간호사가 엄마의 손을 빼내며 말했다.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엄마가 마지못해 그 손을 놓으며 울었다.

“안녕! 해야 지요. 할머니, 안녕.”

간호사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엄마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엄마의 얼굴을 외면하며 뒤돌아서서 종종걸음을 쳤다.

엄마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묘지로 가는 길 양쪽으로 플라타너스에 돋아난 연초록 새순들이 진한 싱그러움을 띠고 있었다. 엄마는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땅속에 묻혔다. 관 위에 흙을 덮고 그 흙을 꾹꾹 눌러 밟으며 누워있는 엄마를 생각했다. 건조하고 텁텁한 황사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다. 엄마의 무덤 앞에서 형제들은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나는 맥을 놓은 채 황사로 뿌옇게 흐려져 있는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발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쳐갔다.

무심코 차창 밖을 바라보던 나는 국도변의 길가에 시선을 멈추었다. 노란 장다리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밭이 눈에 띄었다. 차를 갓길에 정차시키고 내렸다. 나는 찬찬히 장다리꽃을 들여다보았다. 온몸의 진액을 뽑아내어 꽃을 피우느라 시들시들해진 줄기는 키만 껑충 커서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무리를 이루어 피어있는 노란 장다리꽃 위로 햇살이 통통 튀어 올랐다. 그 위로 흰나비가 날아가고 있었다. 노란 장다리꽃이 둥둥 허공에 떠오르자 수많은 나비가 떼를 지어 팔랑팔랑 날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를 따라, 아기를 부둥켜안고 걸어가는 엄마의 환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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