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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02. 2024

장다리꽃 (4)

1부/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잔 나는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할 수 없이 빈소 옆에 딸린 빈방에 가서 누웠다. 다행히 병원 영안실은 가족들 외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빈소가 텅텅 비어 있었다. 엄마를 모신 빈소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복도에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눈이 쓰려왔다. 하지만 신경은 더욱 예민해지고, 의식은 오히려 말갛게 개어왔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새어 나갔다. 그러나 50을 세어도 정신이 또렷해졌다. 벌떡 일어나 벽에 붙은 형광등 스위치를 끄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갑자기 시야가 캄캄해지면서 어두운 관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왈칵 무서움이 밀려왔다. 사방에서 이름 모를 원혼들이 나를 향해 손을 뻗쳐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일어나 다시 형광등 스위치를 올렸다.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갑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을 겪었을 엄마가 떠올랐다. 죽음의 그림자가 엄마를 향해 손을 뻗쳐왔을 때,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수도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공포. 그 소스라침. 엄마의 죽음은 점점 더 진한 색채로 내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엄마를 노인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섰을 때, 내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엄마의 몸부림이 점점 더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엄마가 내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을 때 그 손에서 느껴지던 미미한 떨림. 그 느낌은 내 몸에 붙어서 평생을 질기게 따라다닐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몇 년 전, 토끼를 버릴 때의 느낌과 똑같았다.  


계절은 이제 막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 끝 무렵이었다. 당시 생후 3개월쯤 된 토끼를 얻어다 키우고 있었다. 털이 하얗고 눈이 앵두 알처럼 귀여운 토끼였다. 베란다 한쪽을 판자로 막고 토끼장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토끼의 모습을 보며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가 힘없이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토끼를 안아 올렸다. 토끼의 눈이 허옇게 흐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여 토끼의 배 부분을 살펴보다가, 기겁해서 토끼를 팽개쳐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기습당한 토끼는 놀라서 몇 발자국 움직이더니 땅바닥에 엎드린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토끼의 아랫배에는 구더기 떼가 수없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토끼의 내장까지 침범해 꿈틀대는 생명의 혐오스러움에 진저리를 쳤다. 순간 나도 모르게 살기가 뻗쳐 나왔다. 토끼의 목을 덥석 잡아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토끼가 꿈틀거리며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나는 토끼에게 가해지고 있는 포악이 두려워 갑자기 손을 떼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죽음으로 빨리 끝을 맺어주는 것이 토끼를 위하는 길인 것도 같았다. 토끼는 서서히 숨이 끊어져 갔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손에서 느껴지던 감촉의 떨림. 그 미지근하고 소름 끼치는 두려움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토끼를 검은 봉지에 넣어 아파트를 나왔다.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삽으로 구덩이를 깊게 팠다. 토끼의 아픔을 처음부터 돌보지 못한 나의 실책과 토끼를 죽인 그 벗어버리고 싶도록 생생한 소름 끼침을 지워버리기 위해 구덩이 속에 토끼를 던져 넣었다. 토끼가 구덩이 속으로 푹 꼬꾸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외면하며 다급히 흙을 메우기 시작했다. 흙은 쌓여갔으나 가슴속은 오히려 수렁처럼 깊고 어두워져 갔다. 흙을 다지려고 구덩이를 메운 자리에 올라섰을 때 발 한쪽이 쿨렁 내려가는 것 같아 소스라쳐 뛰어내렸다. 그 순간 온몸으로 소름이 돋아났다. 토끼의 죽음은 땅에서 발뒤꿈치를 지나 나의 손아귀까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엄마는 식욕을 잃어갔다.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거실 소파에 나와 앉아 있는 횟수가 늘어났다. 새벽에 어두운 거실에 홀로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소스라쳐 놀라곤 했다. 의사와 상담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내가 잠이 오지 않을 때 복용하던 수면제를 엄마가 복용하는 혈압약과 위장약 속에 넣어 엄마에게 먹였다. 그 약을 먹고도 엄마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무서바서 당최 못 자겄다이. 잠만 들라 글먼 시커먼 저승사자가 날 잡으러 온단 말다.”

밤새 엄마 곁에 앉아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엄마가 잠이 들기를 고대했으나 허사였다. 엄마가 잠이 들었다 싶어서 살며시 자리를 뜨면 어느새 깨어서 나를 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하는 수 없이 수면제의 양을 두 배로 늘려 엄마에게 먹였다.

그날 밤, 엄마의 몸에 고열이 나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 남아 있는 해열제를 먹이고 이마에 찬물수건을 얹어주며 수시로 엄마의 체온을 검사했다. 그러나 한 시간쯤 지나자 다시 열이 나면서 토했다. 할 수 없이 좌약으로 된 해열제를 엄마의 항문에 투약시키고 알약으로 된 해열제를 다시 먹였다. 새벽 3시가 지나자 엄마는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간 지 오래되었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엄마가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넋을 놓고 있었다. 119에 전화를 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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