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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동명항

by 정윤

새벽 4시. 아들과 함께 어둠의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3시간 여만에 도착한 동명항 영금정. 우리는 어둠의 장막이 벗겨지기 시작하는 영금정으로 올라갔습니다.


검푸른 바다에는 파도가 일고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맵고 시린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습니다.

멀리서 불빛을 깜빡이며 고깃배들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새 잡은 고기들을 싣고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항구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의 노고가 그 불빛 속에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40여분 쯤 지났을까요. 서서히 어둠의 장막이 벗겨지면서 보랏빛으로 탁 트이는 순간. 나는 그 찰나의 감흥을 보았습니다. 파도는 점점 더 거세게 내 가슴에 들어차고, 포말로 부서지는 하얀 거품이 바위 위로 튀어 올랐습니다.


바다와 구름들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면서 손톱 모양만 한 응축된 빨간빛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탄성소리와 함께 그 빛은 점점 더 크게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서두르는 법 없이, 그러나 강렬하게, 그 둥근 빛은 차츰 넓어지면서 바다 위로 둥실 떠올랐습니다.


떠오른 해의 모습은 장엄했습니다. 그 모습은 이 넓은 우주에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나라는 존재의 미약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그토록 쫓기며 살아왔을까. 빛을 받은 바다는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찰랑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희망을 품으며 살아갑니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나의 미래엔 저 붉은 해처럼 밝은 빛이 들겠지. 그래 나에게도 저 붉은 태양처럼 밝고 희망찬 내일이 올 거야,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올 한 해도 저 붉은 해처럼 역동적이고 밝은 날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붉은 해처럼.




새벽의 동명항은 활기에 넘쳤습니다.
고깃배들이 들어오고, 경매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아 퍼덕거리는 생선처럼 생동감이 넘쳐흘렀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배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을 받기 위해 그들은 뛰어다녔습니다. 그곳은 살기 위한 몸부림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들에 비해 나는 얼마나 편한 삶을 살고 있었으며 얼마나 게으르고 무기력했던가. 그동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으며 생활에 만족할 줄 모르는 불만투성이였나. 가족들이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고 툴툴거리고, 내 나이가 외로워져 눈물지었습니다.
괜스레 우울했던 날, 혼자 차를 몰고 나가 커피를 홀짝이고 오면서도 가슴속은 왜 그리도 공허했던지.


돈 몇 푼으로 간단하게 값을 치르며 아무 생각 없이 날고기를 음미했던 나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시린 손을 불어 가며 손님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그 들 앞에서 나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휴휴암


휴휴암.
'쉬고 또 쉰다'라는 뜻의 휴휴암에는 푸른 동해바다와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동해안의 절경과 낭만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난 무인지경의 바다를 바라보며 한껏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가슴속으로 맑고 달디단 공기가 내 폐부를 파고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을 끈 것은 나투신 관세음 보살상이었습니다. 그 바위는 신기하게도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앞을 우뚝 지키고 있는 거북바위.
정말이지 그 모습은 와불을 수호하는 충성스러운 신하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거북이 움틀 거리는 듯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의연하게 나투신 관세음 보살상을 지키고 있었지요. 파도의 물보라가 바위 위로 튀어 오르자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통통 튀어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횟집... 그리고 갈매기.
바다가 바라보이는 횟집에 앉았습니다.
통유리 너머로 파도가 들이치고,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아올랐습니다.
그때, 통유리 앞으로 몰려드는 갈매기 떼들.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방장이 던지는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갈매기들이 통유리 쪽으로 몰려들었고, 그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입에서 살살 녹는 횟감에, 출렁이며 가슴으로 다가오는 파도, 먼바다 끝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 결은 은빛 가루를 뿌린 듯했습니다.

여행은 떠나는 이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줍니다.
때로는 그 이야기가 이제 갓 아물어 가는 상처를 건드리기도 하고, 삶이라는 소설 속에 새로운 등장인물과 배경을 삽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끝없이 여행을 떠나며 탐색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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