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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by 정윤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자리한 알람브라 궁전은 천국을 들어서는 것처럼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했다. 건축물에 새겨진 찬란하고 정교한 문양들은 영험한 신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알람브라 궁전 내부 모습은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알람브라'는 그 이름 자체 '붉은 성'이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하고 환상적인 모습이 나를 매혹시켰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알람브라라는 이름은 햇볕에 말린 벽돌의 색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84년, 이곳은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알람브라는 1358년에 지어졌으며 너비는 205 마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 궁전은 가톨릭 교도들이 즐겨 썼던 돌보다는 붉은 흙을 그대로 드러내어 자연에 가까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외부에서 보이는 단조로운 사각형의 평범한 성벽들은 궁전 내부의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은 즐겁고 호화로운 삶을 위해 만들어진 평화와 안식을 표현하는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아라비아 타일로 이루어진 거실과 마당이 20개 이상이며 기둥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게 세공한 회반죽 작품들이 가득하다.


알람브라 궁전은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는 7세기부터 약 800년여 년 간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교도인 무어인(Moors)의 영향 아래 있었다. 가톨릭계에서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8세기부터 ‘레콘키스타’라고 하는 국토회복운동이 전개되면서 이베리아 반도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무어인들들은 '레콘키스타'로 인해 세력을 점점 잃어갔고, 11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그라나다까지 쫓겨 와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무어인들은 나세르 왕조(1232년~ 1492년)를 세우고 새 궁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알람브라 궁전이다. 이 궁전이 완성될 당시 국왕이었던 무하마드 13세는 ‘백성들이 살아서 지상의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 궁전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1492년 나세르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압딜은 가톨릭 세력에 굴복하고 만다. 그들은 평화적으로 알람브라 궁전을 물려주고 북아프리카로 떠났다고 한다. 이로써 스페인은 약 8세기 간의 이슬람 지배를 벗어나 근대 스페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보압딜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은 이사벨 여왕과 그의 남편 페르난도는 이 알람브라 궁전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 후 수세기에 걸쳐 용도변경과 개조, 증축이 되었는데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점령했을 당시에는 병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프랑스군이 떠나면서 알람브라 궁전이 폭파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18세기에는 방치되어 잠시 훼손되기도 했지만, 19세기 이후에 다시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알람브라 궁전은 본래의 모습에서 96퍼센트가 파괴되어 대부분 복원된 건물이라고 한다. 이 남은 4퍼센트 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본래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면 그 모습이 얼마나 찬란했을까.

알람브라 궁전은 오아시스 천국 같았다. 이슬람 색채가 짙은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들은 수목을 이용하기보다 물과 대리석을 이용하여 정결하고 호화스러우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막에서 주로 생활하던 이슬람 사람들에게 천국의 개념은 물이 있는 곳이었고, 그들은 정원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라나다 지역은 거의 절반이 사막 기후인데, 물을 주면서 키울 수 있는 정원과 건축의 비율을 적당히 조합해 더욱 아름다운 구조로 꾸며져 있었다.

아람브라 궁전을 돌아보면서 나는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생각해 본다. 한때 찬란했고 장엄한 국가를 호령하던 위대한 왕조도 어느덧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궁전 안에 새겨진 정교하고 호화로운 문양들은 그 나름대로의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말 못 하는 갑갑함을 내밀하게 감춘 채 시간의 흐름 속으로 그렇게 그냥 흘려보내는 듯 보였다. 화려함의 극치인 건축물들을 보면서도 왠지 나는 허망해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랄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도 누군가 내가 알던 사람이 세상밖으로 떠나갈 것이고, 내가 알던 거리가 바뀔 것이고,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떠나버릴 것이다. 좋은 것, 화려한 것, 호사스러운 것을 보고 나면 좋다,라는 감정보다 왠지 슬퍼지는 이 기분은 뭘까. 그 화려함이나 찬란함 뒤에 가려진 애잔함이나 연민이 느껴지는 건 나로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센티멘탈한 느낌으로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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