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으로의 시간 여행

by 다섯시의남자

골목으로의 시간 여행


ATC 몰과 S&R 멤버십 쇼핑몰(마닐라 알라방에 있는 쇼핑몰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동네가 있다. 넓은 도로에서 직각으로 좁은 골목 하나가 안쪽으로 쭉 나 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200미터 정도 따라 들어가면 바로 끝이 나오는 작은 동네다.

차로 지나가다 몇 번인가 얼핏 보였는데 시장통인가 싶게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오늘은 집에서부터 걸어 나와 맘먹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간식거리를 파는 포장마차 같은 게 두어 개 있고 말 그대로 구멍가게가 서너 집 다닥다닥 붙어있다. 오후 3시쯤 되니 해는 이미 좁은 골목을 비켜나 있고 이 시간이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오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골목에 나와 있다. 어쩌면 양철판으로 된 지붕 아래서 한낮에 집안에서 머물기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안쪽 가게 앞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 음료수라도 하나 마시며 좀 더 두리번거릴까도 생각했지만 낯선 외지인의 움직임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다지 다정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지레 겁을 먹고 그렇게 느낀 것이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을 비켜 사진을 몇 장 찍는 일조차 조심스럽다.


누구나 삶에 노곤함은 있겠지만 이들의 일상은 쉽게 판단되지 않는다. 내 눈에 보이는 열악한 환경이 이들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여유로운 한낮의 시골 풍경을 닮았다.

골목을 나와 마주하는 도로가 자포테로드(Alabang–Zapote Road)다. 알라방에서 가장 차들이 많이 다니는 메인 도로다. 골목 양옆으로 크고 작은 쇼핑몰들이 10개 정도가 경쟁하듯 늘어서 있고 도로 맞은편으로는 벤츠를 비롯한 각종 브랜드의 자동차 쇼룸과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기업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그 사이에서 시대의 흐름과 다른 속도로 골목의 시간이 흘러간다. 이십 분 정도 머물다 나왔을 뿐인데 자동차의 속도와 경적소리에 깨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골목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순간 짐작하지 못할 착각 같은 것이다.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과 조금 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긴장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평범한 눈길을 왜 오해했는지도 모르겠다. 마닐라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골목들이 많다. 내 두려움과 선입견이 모른척하고 넘어갈 뿐 그 속에는 그 나름의 삶의 의미가 있고 소중함이 있을 것이다.

여행이란 나의 고정된 사고를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가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 단단히 간직해 온 고집을 내려놓겠다는 결심이 여행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다음번에 이 골목을 다시 찾게 되면 편안한 얼굴을 드러내고 좀 더 친절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들이나 나나 어차피 영어는 통하지 않을성싶지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표정으로 물어도 보고 그렇게 한발 더 다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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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_거리_내게_말을_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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