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처가 식구들과 여름휴가로 동해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숙제하듯 의무적으로 짐을 꾸렸다.
‘해수욕’ 이란 말, 꽤나 오래전 추억 속에서 기억했을 법한 말이다.
모처럼 많은 사람을 구경했다.
평상과 파라솔을 빌리고, 앉자마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든든한 사위 몫을 하자니 오늘 같은 날은 할 일이 태산이다. 물에 들어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게 편하다.
점심 먹고 파라솔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거친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내렸다.
어차피 물에 젖은 사람들이야 뜨거운 햇빛이 없으니 더 신나 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파라솔 밑에서 비를 피하느라 몸을 잔뜩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소나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읽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에 없지만 제목은 들어 본 적이 있을만한 책이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자니 ‘바다는 이미 젖어 있기 때문에, 비에 젖지 않는다'라고만 하기엔 너무 시시한 해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몰아 친데도 바다는 꿈쩍도 하지 않을 태세다. 내리는 비만 처량해질 뿐 그 바다의 담담함에는 깊고도 넓은 그만의 숨결이 있다.
"나도 바다 같은 깊은 위로를 만나고 싶다"
내 속의 갈등과 고민과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다. 잠시 딴 생각에 몰두했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바다는 어떻게 이 거친 소나기에 저렇게 태연 하단 말인가.
약한 가랑비에도 쉼 없이 조바심을 내는 내 모습은 측은하기만 한데,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가벼움에 속이 상하는데.
오늘 이 바다의 표정에서 나와는 다른 세상을 잠시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