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봄날. 경대병원 중환자실 앞 대기실 풍경

by 다섯시의남자

2006년 봄날. 경대병원 중환자실 앞 대기실 풍경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오전 11시에서 11시 30분이다.

하지만 바로 앞에 있는 보호자 대기실은 시간과 상관없이 항상 대여섯 명의 보호자가 기다린다. 텔레비전 쪽으로 얼굴을 하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별 미동이 없는 풍경이다. 마치 신병 훈련소에서 정밀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듯한 긴장과 체념의 공기가 가득하다.

방에는 텔레비전 한 대와 남학생 자취방에 있을 법한 소박한 옷장이 하나 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지쳐갔을 사람들의 채취가 묻어있는 얇은 이불 몇 장이 들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창이 있지만 어쩐 일인지 어둡기만 한 분위기. 벽에 걸린 수건 몇 장이 전부다.

어두워도 불을 껴지는 않는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경우도 드물다.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오롯이 혼자 있는 듯할 뿐이다.


그 방에 들어가고 셋째 날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젊은 아저씨가 면회실 인터폰을 눌렀다. 잠시 면회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웬일인지 순순히 문이 열리고 잠시 후 면회를 마치고 돌아와 말없이 누웠다. 그리고 이틀 후에 8살 아이의 연명치료가 중단되었다. 뇌사상태로 얼마나 오래 중환자실에 있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동안 가끔 애기 아빠의 저녁 면회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막지 못했으리라 짐작한다.

아버지는 팔순을 넘기셨고, 응급실에서 이틀 만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었다. 애통한 마음과 불안함으로 양손을 어찌 둬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곳 대기실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첫날 들어가 구석에 엉거주춤 앉자 누군가 물었다.

“중환자실에는 누가 들어가셨나?”

“아버님이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어지셔서...”

“연세가 어찌 되시는데?”

“여든 서이 되셨습니다.”

거기까지 듣고는 더 이상 질문이 없다.


그날 하루 만에 나는 슬픈 보호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부모가 중환자실에 있는데 어찌 슬프지 않을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곳에서는 세상 이치로는 판단할 수 없는 기준이 있었다. 언제 불려 질지 몰라 밥 한 번 여유롭게 먹고 오기 힘든 그곳은 그냥 방이 아니다. <대기실>이었다.

‘위급할 때 전화를 받고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어라’는 명령을 받고 최고로 가까운 거리에 잠시도 졸인 마음을 풀지 않고 줄 서듯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곳을 벗어나 대중 속에 있으면 불안하다. 서로를 확인하면서 안도하고 위안받고 있다. 자신의 처지가 어디쯤인지 헤아리면서.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열흘을 넘기지 못하셨다. 오전 따뜻한 시간에 연락이 왔다. 그 방을 나오면서 누구와도 인사를 하지 못했다. 중간에 한 번 누군가 사온 간식을 나눠 먹었지만 긴 얘기를 한 것도 아니요, 서로 얼굴을 유심히 본 것도 아니다. 같은 열차를 타고 옆에 앉았지만 기척도 없이 내릴 곳에서 내린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요크루트라도 한 줄 사서 밀어 넣고 왔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장례식장에서 문득 들었다.



지난 주말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면회를 다녀왔다. 심하진 않지만 치매가 있으시다. 맛있는 단팥빵을 드렸더니 방에 가서 나눠 먹어야 한다고 자꾸 가라고 하신다. 웃으시니 좋다.

오래 전과 같은 대기실은 이곳에 없지만, 초조한 기다림이 여전히 일상에서 이어지고 있다.


철학의 명제처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흔이 넘으신 어머니는 어떤 기다림을 품고 계시는지.

내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슬픔만, 아쉬움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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