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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건강한 아이라면, 더 욕심내지 않는 내가 되기

- 엄마일기

by 함께

첫째의 반 배정 발표가 나는 날. 2시에 친구들과 함께 반 배정을 확인하러 나갔던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같이 놀다가 자기만 학원에 가야 하는데 오늘만 학원을 빠지면 안 되냐는 것. 전에도 종종 밴드부 연습 때문에 학원을 빠진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는 했지만 사실 연습이 끝나고라도 가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냥 다음날 가서 더 열심히 하라고만 얘기하고 말았다. 학원을 빠지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이의 나이였을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학원을 두 달 정도 다닌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노는 게 너무 좋을 나이. 그때 학원을 다닌 건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을 예습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학원도 따라다니고 싶어서였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첫째가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중학교 1학년 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친구가 하나도 없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1시간이나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긴 카톡을 보냈다.


'엄마는 공부하라는 잔소리 안 하고 싶어. 그냥 스스로 알아서 잘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최대한 싫은 소리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도 고등학교 입시에 대해서 경각심이 없는 것 같아서 좀 속상해. 지난번에도 하루에 두 과목씩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얘기해 놓고 하루에 한 과목도 제대로 안 하고 있는 거 보면서 많이 답답했는데 그래도 알아서 하겠지 하고 기다렸어. 그런데 이제 개학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도 친구들이랑 노느라 학원을 빠지겠다고 하니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애들보다 공부 안 했던 기간이 있어서 지금 정말 열심히 해야 돼. 제과제빵 시험 준비할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때 같은 마음가짐으로 해야 겨우 성적 올릴 수 있어. 가고 싶어 하는 외식조리과에 못 가면 지금보다 훨씬 치열하게 공부해야 돼. 네 마음가짐이 자꾸 흐트러지고 있는 것 같아서 엄마는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 오늘 학원에 가고 안 가고는 네가 알아서 결정해. 대신 엄마가 계속 믿고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게 스스로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러자 잠시 후 첫째에게 답이 왔다.


'나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돼서 속상해. 수학은 잘 되다가 또 이해가 안 되고... 그래서 요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ㅜㅜ 오늘까지만 쉬다가 내일부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공부 아침에 한 과목 하고 저녁에 한 과목 할게. 실망시키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미안해... 일주일 남았지만 스스로 양심적으로 최대한 열심히 해볼게.'


'그래, 엄마도 믿어볼게~ 오늘은 편하게 친구들이랑 시간 보내고 와. 짜증 내지 않고 진지하게 답 보내줘서 고마워~'


'응. 나도 고마워. 믿어주고 허락해 줘서. 진짜 열심히 해볼게!!'​


마음만 먹으면 거짓말을 하고 엄마 몰래 학원을 빠질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는 솔직하게 얘기하며 오늘 학원을 빠지면 못한 공부를 집에 와서 더 많이 보충하겠다고 얘기했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끝까지 안된다고 했다면, 아이는 학원에 가서 제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 첫째가 제일 친했던 친구들 무리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 아이는 극도로 자존감이 낮아졌고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서 게임과 폭식으로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자꾸만 망가져갔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는 내가 담석증으로 아팠고, 4학년일 때는 허리 디스크로 아파서 스스로를 돌보느라 많이 지쳐있던 시기였다.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줘서 첫째가 그렇게 된 것만 같아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건강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아이들과 자주 여행을 다녔고, 첫째는 다른 친구들을 사귀며 차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아이가 앞으로 학교생활을 하며 더 이상 왕따만은 당하지 않기를 기도했었다. 아이에게 다른 건 바라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아이는 지금 학교에서 밴드부 보컬로 활동하며 미인정 결석 한 번 없이 너무나도 건강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마음이 아파서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즘,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할 일인가. 내 아이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는 것. 아이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믿고 기다리면 그 마음의 결실을 이루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 옆에서 그저 아이가 잘 커가는 모습을 응원해 주기만 하면 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은 밤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첫째의 뒷모습이 참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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