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일기 & 교사일기
자신의 능력이 뭔지 알지 못하다가
닥친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아, 나한테 이런 능력이 있었네,
나도 이런 일을 꽤 좋아했네.'
하는 걸 깨닫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중략)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회사가 시키더라도,
저는 다른 이에게 해를 입히거나
자신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게 아니라면
가급적 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은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그 일은 자기가 좋아하는,
잘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최인아
예전 학교에서 학부모님과의 트러블로 인해 교직 생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던 이후로 담임으로서 학부모 상담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게 되었다. 두 아이를 임신했던 해에도 모두 담임을 맡았고, 육아휴직을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늘 담임이었으므로 처음 발령을 받은 후로 13년 동안 쉬지 않고 담임을 했다. 마지막으로 담임을 했던 해에는 처음으로 고등학교로 발령이 났는데 일 년 내내 담임반 여학생들과 감정싸움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그 여학생들끼리의 학폭 또한 이어졌다. 학폭의 원인을 제공했던 여학생의 학부모님에게 협박을 받기도 하고, 나에게 원한이 있던 몇몇 아이들이 교원평가 점수를 엉망으로 주는 바람에 최악의 담임 평가를 받았다.
계속되는 학부모님과의 상담과 아이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너무 많은 감정 소모를 했고, 이렇게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는 다음 해 도저히 담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비담임을 주시면 아무 업무나 맡아서 하겠다고 관리자분들께 사정사정해서 사람들이 다들 기피했던 고교학점제 업무를 2년 동안 맡았다. 다음 해엔 연구 부장. 그런데 3년 동안 담임을 하지 않고 업무와 수업에만 매달려 있었더니 마음이 점점 공허해졌다. 아이들과의 돈독한 관계에 대한 갈망으로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다시 중학교로 가서 담임을 하며 아이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졌다.
다음 발령지는 원하는 대로 중학교가 되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학년 부장이었다. 담임을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학년 부장이라니.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예전처럼 진상 학부모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산더미 같은 고민을 안고 3월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나 생각보다 학년 부장이 잘 맞잖아? 담임쌤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돕는 일이 생각보다 보람차고 뿌듯했다. 금쪽이들이 점점 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설레고 행복했다. 그전 학교에서 그렇게 피해 다녔던 학년 부장이 나한테 제일 잘 맞는 옷이었던 것.
물론 그 사이 나에게도 연륜이라는 게 더 쌓였을 테고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가 무뎌질 시간도 있었으니 좀 더 단단해진 내가 되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끝까지 학년 부장을 피해 다녔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행복을 지난 2년 동안 경험하게 됐다.
올해도 난 학년 부장을 맡았다. 학교에서 학년 부장을 다들 기피하시니 내가 학년 부장을 하겠다고 하면 매우 환영하는 분위기다.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내 역할에 임하고, 학년 부장을 잘 해내는 비법도 다듬어 연수도 만들어 봐야겠다. 학년 부장을 맡으실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내가가진것을세상이원하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