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쇼파에 누워서 핸드폰 보고 있으면서,
“둘째야 핸드폰 그만해!
저는 비염약 잘 챙겨먹지 않으면서,
”아버지~ 약 잘 챙겨드세요~“
저는 평소에 잘 걷지도 않으면서
”어머니~ 운동 좀 하세요~“
저는 손에 맥주캔을 들고 있으면서,
”장모님 술 좀 그만드세요~“
이처럼 자기도 하고 있으면서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 적 있으신가요?
이런 현상은 나의 모습이 남에게 투영되어 보이는 걸까요? 아니면 나는 안 보이는 나의 단점이 남에게 보이는 걸까요? 아니면 나도 잘못된 걸 알지만 스스로에게만 너무 관대한 걸까요? 이러한 상황의 끝은 장모님의 일화에 있었습니다.
장모님이 심장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수술까지는 아니지만 판막에 문제가 있고, 고지혈증도 있어서 스테로이드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장모님은,
“의사 선생님, 그럼 어떻게 관리해야할까요?”
”스테로이드 관리를 위해 술도 끊고, 운동도 하고, 체중도 줄여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진료실을 나온 뒤, 함께 간 처제에게 장모님이,
”그래서 나 어떻게 해야한다는거니?“
”술 끊으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거 말고 뭐해야해~“
쿨하신 우리 장모님! 당장 앞에서 하는 얘기도 들리지 않을 만큼 나의 단점이 감추고 싶은 건지, 알면서도 하기 싫은 건지, 정말 이게 잘못된 걸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분석될지 궁금하네요.
우리 몸의 근육에서도 한 근육이 작용하면 반대쪽 근육을 신장시켜서 원치 않은 움직임을 발생하는데도, 그 근육은 자기가 만든 움직임이라는 걸 인지하지 경우가 있습니다.
근육은 관절을 가로질러 주행해서 그 관절을 움직이는 역할을 합니다(이전 글인 '이 근육은 어떤 작용을 할까?'를 참고하세요.) 근육은 대부분 하나의 관절을 가로질러서 작용하지만, 몇몇 근육은 두 개 이상의 관절을 지나서 주행합니다. 이러한 관절을 두 관절 근육(two-joint muscle) 또는 다 관절 근육(multi-joint muscle)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다 관절 근육 중에 손목 굽힘근들(wrist flexors)과 손목 폄근들(wrist extensors)이 있습니다. 손목 굽힘근들은 위팔뼈의 안쪽위관절융기(medial epicondyle)에 부착되어 손목을 지나 손바닥 방향으로 주행하고, 손목 폄근들은 위팔뼈의 가쪽위관절융기에 부착되어 손목을 지나 손등 방향으로 주행합니다. 근육은 가로질러 주행하는 관절에 모두 작용하기 때문에, 손목 굽힘근과 폄근들은 손목과 손가락 관절에 모두 작용하게 됩니다. 손목 굽힘근들은 손목을 굽히면서 동시에 손가락도 굽히게 되고, 손목 폄근들은 손목을 폄과 동시에 손가락을 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손목을 한 번 굽혀보시겠어요? 손가락에 힘을 빼고 손목을 굽히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가요? 여러분의 손가락을 한번 잘 보세요. 나는 손목을 굽혔는데 손가락이 스르륵 펴지지 않았나요? 손목을 굽혔으니 손목 굽힘근들을 작용해서 손목도 손가락도 모두 굽혀져야 할텐데, 손가락은 오히려 펴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손목 굽힘근들과 손목 폄근들이 서로 마주보며 주행하는 다 관절 근육이기 때문에, 한쪽이 짧아지면 반대쪽은 늘어나게 되는 길항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손목 굽힘근의 작용으로 근육이 짧아지면서 손목을 굽히게 되면 손등쪽에 손목 폄근들이 반대로 늘어나게 됩니다. 손목 폄근들이 어느 지점이상 늘어나게 되면, 너무 늘어나서 원래 위치로 다시 돌아오려는 힘이 발생합니다. 마치 스프링을 약간 늘리면 돌아오려는 힘이 안생기고 어느 지점이상 늘렸다 놓게 되면 원래 위치로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힘을 당기는 힘 또는 장력(tension)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건, 이 장력이 손목 폄근이 능동적으로 수축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손목 굽힘근들에 의해 손목이 굽혀지면서 수동적으로 손목 폄근이 늘어나서 발생한 힘이라서 정확한 명칭은 수동 장력(passive tension)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손가락에 힘을 빼고 손목을 한번 펴볼게요. 어떤가요? 이번엔 손가락이 앞으로 말리죠?
자신경(ulnar nerve)라는 말초신경이 손상되면 나타나는 변형 중에 갈퀴손(claw hand)이라고 있습니다. 마치 손가락이 갈퀴처럼 말린다고 해서 갈퀴손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는데요, 정확한 4, 5번째 손가락의 손허리손가락 관절의 폄과 손가락사이관절의 굽힘 변형입니다. 자신경은 4, 5번째 손가락을 굽히는 근육을 지배하는 신경입니다. 그렇다면 자신경이 마비가 된다면 손가락을 굽힐 수가 없겠죠? 그런데 왜 손가락이 구부러질가요? 자신경이 마비되면 손목과 손가락 굽힘근이 마비되어서 상대적으로 손목과 손가락 폄근이 강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손목과 손가락이 펴지겠죠. 하지만 앞서 배웠듯이, 손목 폄근에 의해 손목이 펴지면, 손목 굽힘근은 마비되었지만 손바닥에 있는 손목과 손가락 굽힘근에 수동 장력이 발생해서 손가락을 구부러지게 됩니다.
또 다른 말초신경병으로 노신경(radial nerve) 손상에 의한 손목처짐(wrist drop)이라는 변형이 있습니다. 노신경은 손목과 손가락 폄근을 지배하는 신경이기 때문에 노신경이 마비되면, 손목과 손가락을 펼수 없으니 손목과 손가락이 앞으로 구부러지겠죠. 그래서 손목이 굽혀져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손목처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손가락은 굽혀지지 않고 펴지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손목 굽힘근에 의해 손목이 구부러지면, 손목 폄근은 마비되었지만 손등에 있는 손목과 손가락 폄근에 수동 장력이 발생해서 손가락은 펴지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손목 굽힘근들이) 술을 먹어서(손목을 굽혀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 건데(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건데), 괜히 친구에게(손목 폄근들에게) 술 먹지 말라고(손가락을 펴지 말라고)한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 나의 잘못부터 돌아보고 고치는게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장모님이 이 글을 보지 않으셔야 하는데....
< 이 글을 읽고 다음을 생각해보세요 >
1. 나는 하면서 남은 못하게 한 적 있었으면 어떤 경우였나요?
2. 수동 장력을 일상에서 어떤 경우에 볼 수 있을까요?
3. 갈퀴손과 손목처짐은 각각 어떤 신경의 손상이며 변형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