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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아 Oct 12. 2023

홀로 남겨진 이름은

03. 당신은 이름을 잃었다


 당신은 이름을 잃었다.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이름은 사라져 버린다.

 당신은 목소리를 낼 타이밍을 놓친 채 머리부터 조금씩 갉아 먹힌다. 서서히 사라지는 당신을 잡아주는 사람들은 이미 당신을 잊어버렸다.


 나열되는 발음 속에 이름이 만들어지고 정제된 상태로 당신의 이마에 고스란히 부여된다. 옅게 새겨진 이름은 당신이 태어난 이후로 누군가 계속 부르고 또 불러 점차 짙어져 간다.


 당신과 당신을 이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은 불리면 불릴수록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몸집을 불려 나간다. 당신이 당신일 수 있도록 이름은 제 무게를 늘리고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당신 또한 계속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제 가슴팍에 이름을 붙이고 사방을 기웃거린다.


 불리지 않고 홀로 남겨지면 이름이 이름일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일 수 있나.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은 이름은 오늘도 홀로 울음을 참는다.


 세상이 좁혀지고 당신은 빠른 속도로 지워져 간다. 당신과 이름이 떨어져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게 된다면 이름은 조금씩 작아지다가 하, 파, 타, 카, 차, 자, 똑 떨어진 글자로 모습을 바꾸고 당신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의 모습으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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