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그믐
기대하지 않으면 편해-
누군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처음엔 그저 회피처럼 느껴졌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대하게 마련 아닌가?
친구에게,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품게 되는 마음
그걸 부정한다는 건 어딘가 차가운 일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기대는 늘 실망을 불렀고,
그 실망은 곧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닿지 못하는
누군가의 모습 앞에서
나는 실망했고, 섭섭했고, 때론 분노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되뇌기 시작했다
기대하지 않으면 편해-
이 말 하나를 마음속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 기대하지 않겠노라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노라고
그러나 마음이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새 또다시 피어오르는 기대
그 기대가 부서질 때마다 생기는 상처
실망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내 표정, 내 말투,
그리고 끝내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까지
난 기대하지 않아-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었다
기대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나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고,
사람 사이의 온기를 믿지 않게 되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 기대하는
그 반복 속에서 나는
기대하는 나와 기대하지 않으려는 나 사이에서
계속 부딪히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묻는다
기대란 정말 버려야 할 감정일까?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되는 순간이
어쩌면 한 번쯤은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답을 찾고 있다
기대하지 않으려는 외로움과,
기대하고 싶은 그리움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