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사면, 정치인이 된 학자

by 에이
2025081500175510015_1755184675_0028544900.jpg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조치로 출소한 모습 (출처: 연합뉴스)


조국이 사면되었다.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편한 옷차림으로 구치소를 나서는 그는 8개월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2024년 12월 12일, 탄핵 소추 표결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던 조국을 사람들은 기억했다. 그는 2025년 8월 15일, 광복절 80주년을 맞이한 특별 사면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대대적인 선거 제도의 개편으로 이른바 위성정당이 각 정당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주당은 2024년 총선에서 민주 진영 연합이라는 정체성으로 개별 정당으로는 원내 의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몇몇 정당의 주요 인사들을 포함하여 범 민주 연합을 만들어냈다. 국민의힘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는 점에서 2024년 총선에서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용혜인 의원을 향해 "비례대표를 두 번이나 하느냐"고 비아냥댔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 지역구이든 비례대표이든, 신념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것은 신념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다당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 양당제 국가인 우리나라 국회의 가장 큰 문제인 소수자의 목소리가 외면될 수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현재로서 최선의 선택에 가깝다.


그러나 또 눈여겨 볼 만한 현상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국혁신당의 등장이다. 170만 명의 당원을 보유한, 원내 12명의 의원을 가진 당이다. 12명의 의원이 모두 비례대표라는 점에서 이전의 국민의당과는 다르다. 게다가 그 성격도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국혁신당은 기자회견을 대검찰청 앞에서 했다. 기억하기로 그때 슬로건이 "3년도 길다"였던 것 같다. 사이다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사이다 같은 정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민주당을 비롯한 전통적인 진보 인사들의 오래 고민하고, 점잖을 떠는 발언과는 수위가 달랐다. 2024년 총선 당시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범 민주 연합을 앞서는 결과도 있었다. 소수 정당과 힘을 합치면 원내 교섭단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정당 출범 이후 몇달 만에 치른 첫 총선에서 12석의 의원을 가진 정당이 되었다. 그때부터 돌풍은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에 민주당에서 분당해서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국민의당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분당했던 정당으로, 당시 호남 지역 의석 대부분을 석권하고 전국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2위를 기록했던 정당이다. 당시 정당의 주축 의원들은 탈당했던 호남계 의원들이었고, 비례대표 13명에 3명의 현역 의원이 추가로 입당하며 38석의 원내 제3정당이자 교섭단체의 조건까지 만족했었다. 지금 민주당에서 활약하고 있는 몇몇 의원들의 흑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추락하기 전까지는 대안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나? 당시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사람은 지금 국민의힘에 있고, 누구보다 열렬히 민주당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민주당의 중진 의원이 되어 있다. 이점에서 조국혁신당과 국민의당은 그 성격이 갈린다.


조국 전 대표가 사면되면 그는 차기 대권 주자로도, 서울시장 후보로도 유력하게 떠오를 만큼이나 지지층을 가지는 인물이라 부담감이 컸을 것이라는 말이 왕왕 돌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사면을 결정했고, 조국혁신당은 이에 대해 공개 감사를 표했다. 그 사면 결정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당선을 위해 뛰어준 조국혁신당의 노고에 대한 답신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깔끔한가. 뒤에서 협잡하지 않고, 앞에서 아닌 척하지 않으며 고마운 일에 대해 고맙다고 말하는 게. 이게 누군가가 외치던 '솔직한 정치'는 아니었을까.


조국 전 대표는 여러 매체와의 출소 직후 공동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정치를 하겠다." 라고 했다. 황명필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역술을 좋아하면서 왜 조국과 친하게 지내라던 말은 무시했느냐"고. 정치인이 되어 돌아온 학자를 보며,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도 그것을 돕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다짐에 어떻게 그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가끔 들어야 하는 그 곧은 말도 듣고 싶지 않아 한 가족을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던 그 시절을 떠올리자면, 감히 대한민국에서 입시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을 이용했다는 그 처절할 정도의 비열함에 속이 뒤틀리지 않을 수 없다.


법학을 전공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의 기쁨을 안다. 미성숙한 존재를 가르쳐 성숙하게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일, 감히 값지다고 표현해도 아쉬울 것 없는 그 일을 내려두고 교수직 관련 소송을 철회한 학자이자 교수가 정치인이 되어 돌아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이라는 타로 카드의 풀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순간이 오면 운명이라는 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그 운명은 때때로 사람을 전혀 다른 삶의 한복판에 놓이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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