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르도네/열림원
언젠가는 무너지겠지만
산꼭대기로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의 신화》 p.163/문예출판사(1993)
늪지대에 지은 장엄호텔은 할머니의 자랑이었지만 할머니가 죽은 뒤부터 서서히 무너져 간다. 쉴 새 없이 변기와 하수관을 뚫어 줘야 하고 지붕에서 물이 새고 모기가 극성이고 쥐가 드나든다. 발코니의 목재들은 썩기 시작해 걸어 다니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호텔에는 전염병이 번진다. 이 호텔에는 화자(話者)의 언니 아다와 아델이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막내인 화자를 호텔에 남겨 두고 어머니를 따라 떠났다가 어머니가 죽자 호텔로 돌아왔다. 아다는 병들어 있어 자주 기절을 하고 씻겨 주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아다의 병원비와 약값을 대느라 과로로 죽은 것 같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아델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투숙객과 시간을 보낸다. 투숙객은 대부분 철도 공사 인부들이었다. 늪을 가로지르는 철도 건설이 계획되면서 인부들이 호텔을 숙소로 썼지만 공사가 중단되면서 그들도 떠나고 간간히 뜨내기손님들이 온다. 아다와 아델은 호텔에서 가장 좋은 방을 차지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다. 화자가 언니들을 돌보는 이유는 호텔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호텔과 함께 빚도 물려주었고 번 돈은 모두 호텔을 수선하고 빚을 갚는 데 들어간다. 이 일은 아마도, 호텔이 완전히 무너지는 그날까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대화 하나 없이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프랑스 작가 마리 르도네의 소설 삼부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이재룡 번역가의 해설에 따르면 마리 르도네는 아버지를 증오했고,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정신분석과 함께 글쓰기에 몰입했다. 첫 작품을 발표한 이후 아버지 성을 버리고 어머니 성으로 개명한 마리 르도네는 아니 에르노,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함께 프랑스 여성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마리 르도네는 소설을 통해 '종말에 이르는 과정과 그 이후의 세계' (옮긴이 해설, 172)를 구현하고 있다고 한다. 《장엄호텔》에서 아포칼립스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화자이다. 장엄호텔이 오늘 무너질지 내일 무너질지는 오직 화자 손에 달려 있다.
언니들이 장엄호텔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데엔 호텔의 상속자가 화자라는 것 말고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병들어 있는 아다는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잠깐의 산책도 견디지 못하고 곧장 자리에 눕는다. 아델은 늘 연기 연습 중이다.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극장 주인이 불러 주길 기다리지만, 정작 연락이 왔을 때는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다의 병과 아델의 꿈은 어쩌면 무노동의 그럴듯한 핑계가 될 수도 있겠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한 화자는 아파서 몸져눕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지금 당장 변기 뚫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업이므로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문득 내가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37) 다는 것은 고통도 의욕도 못 느끼며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인식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의지와 무관하게 장엄호텔에 던져져 주어진 일을 묵묵히 감내하는 화자는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를 닮았다. 신들의 노여움을 산 시지프는 지옥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힘겹게 옮긴 바위는 육중한 무게로 인해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는 다시 올려놓는 일을 끝없이 반복한다. 성취에 대한 희망이 없는 노동보다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신들은 생각했다. 신들의 의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시지프의 신화》 p.163/문예출판사(1993))는 카뮈의 제안대로 승리하는 시지프를 상상해 보기로 한다.
시지프의 바위는 오르페우스가 노래하는 동안 그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 굴러 내려오는 것을 멈추었고 그 사이에 시지프는 쉴 수 있었다. 길고 고된 노동 중에 찾아온 뜻밖의 휴식이 얼마나 달콤했을지는 굳이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잃은 슬픔에 잠겨 노래하지 않는 동안에는 어땠을까. 시지프는 주어진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신들에게 반항했다. 주저앉아 우는 시지프를 기대했던 신들은 바위와 산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마침내 우뚝 솟은 산이 되고 단단한 바위가 되는 시지프를 보게 된다. 시지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장엄호텔의 손님과 언니들이 전염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동안에도 살아남은 화자처럼.
내게는 늪은 언제나 늪일 따름이다. 나처럼 늪을 잘 알고 나면 늪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97)
화자가 툭툭 던지듯 내뱉는 단문의 언어들은 때로 반복되기도 하는데, 할머니가 늪에 호텔을 지은 것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눈에 띈다. 처음엔 늪에 호텔을 지은 건 할머니의 욕심이고 잘못이라고 말하더니 나중엔 좋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늪에 살면서 늪에 익숙해지고 늪을 다룰 줄 알게 되어 늪의 주인이 된 것이다. 화자는 늪에게 호텔을 쉽게 내어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젠간 무너질 게 자명하지만 완전히 무너지는 그날까지는 고치고 다듬으며 호텔을 지켜낼 것이다. 날마다 점점 더 나빠져 가겠지만 오늘 하루 버텨내는 것, 그것이 그녀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