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걸음으로 대청봉에 오르다.
해뜨기 전 숙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일찍 나섰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하는 입구에 날짜와 시각을 알리는 전광판이 있었다. 2024년 6월 3일 06시 44분. 컴컴할 때 나섰는데도 입구에 오니 벌써 이만큼 시간이 흘렀다.
등반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기에 최단코스 한계령에서 올라 오색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일반 성인 걸음으로 12시간 소요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2-3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해 지기 전에 완주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느린 속도로 오른쪽 스틱에 의지하여 한발 한발 내딛는 남편의 발걸음을 뒤에서 따라 걷는다. 계단을 오르고 돌길을 딛는 남편의 걸음이 감사하다.
자갈길도 넘어질까 봐 불안했던 걸음이었는데 이제 바윗길도 지나간다. 왼쪽 다리에 차오른 근육과 힘은 남편이 그동안 비축한 보물이다. 남편은 돈을 저축하기보다 근육을 비축했다. 바윗길을 지나가는 남편의 걸음을 뒤에서 보면 마음 한쪽은 울컥하고, 한쪽은 존경스러움이 생긴다.
아래만 보고 걷다가 조금 오르니 조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원한 산바람과 발아래 보이는 풍경에 마음을 뺏겨 시간이 흐르는 것은 잊고 둘이서 좋아라 사진을 찍어댔다. 정상걸음으로도 와 보지 못했던 대청봉을 향해 걷는다고 생각하니 감계가 무량해서 말이다.
날씨가 좋고 시간별 계획을 정확하게 세우지 않은 우리는 도시락도 먹고 풍경과 놀며 오르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평일이라 그런지 산을 오르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중청대피소 근처 갔을 때 대피소를 짓기 위해 헬기로 물건을 이송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정상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서너 명 보이기 시작했다. 대청봉 오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아는 그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놀란다.
"어휴, 힘드셨겠어요!"
"감사합니다!"
관심 가져주는 것에 고마워 나는 상냥하게 답례하지만, 남들 시선에 자유로워지는 것에 단련이 된 남편은 "아, 예..." 하고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중청대피소 맞은편으로 저 아래 공룡능선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산속 공기가 차가워졌다. 소청봉을 지나 대청봉에 가까워진 것이다.
거북걸음으로 대청봉에 오른 것이 감격스러워 한참을 둘러도 보고 정상석을 껴앉았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거북걸음일망정 둘이라고 해냈다!
내려오는 오색코스는 한계령 코스의 오름과 달리 조망도 없고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길이었다. 끝없이 내려가는 길이 너무 지겨워 다람쥐에게 먹이도 주고 잠깐 앉아 쉬곤 했는데, 남편 다리에 무리가 가서 쉬는 줄 눈치채지 못했다.
오색코스로 내려오기 시작한 초입부터 무리가 가서 아프기 시작한 남편의 다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돌계단에서 이미 산속은 어두워졌고 두 시간을 넘게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내려왔다.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두시간만 사고 싶을만큼 산속 어둠이 무서웠고 산행의 끝이 간절했다. 간식도 떨어졌고 뱃속도 비었지만 저녁 먹을 힘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저녁 먹을 곳을 찾을 생각도 없었고, 찾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숙소로 가고 싶은 마음만 절실했는데 숙소로 돌아왔을 땐 이미 취침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편의점에서 몇 개의 빵과 음료를 산 뒤 숙소에 들어와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오색코스는 이름만 오색처럼 예뻤지 '무릎아작코스'였다.
여름휴가철엔 덥기도 하고 사람들이 몰려서 설악산엔 가지 못했을 것이다. 단풍철엔 그 아름다운 설악자태에 또 사람들이 몰려서 우린 가 보지 못할 거다. 평일 비수기에 우리만의 속도인 거북걸음으로 대청봉을 오른 것은 퇴직이 준 선물이었다.
무릎이 아작 나긴 했지만 대청봉에 올랐던 그 순간과 기억은 또 하나의 성공경험을 비축한 우리 부부의 보물이 되었다. 이 성공경험으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고 또 하나의 목표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