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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어도 고!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직진

by 예몽

대학시절, 자취방에 모여 앉아 친구들과 고스톱을 자주 쳤다. 수업이 없는 날이나 빨리 마친 날, 지금처럼 다양하게 즐길 문화가 없던 시절이라 고스톱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었다. 진 사람은 그날 설거지를 하든가, 라면을 끓이든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든가. 크게 잃어봐야 그 정도여서 그랬을까? 친구들에게 쪼잔하게 보이고 싶지 않고 좀 더 멋지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못 먹어도 고! 를 자주 외쳤다. 바가지를 쓰거나 져서 그날 설거지를 하더라도, 약간의 위험을 갖고 스릴을 즐기는 성향이었다.


그런 점은 나보다 남편이 더 심하다. 해저드에 빠질 위험이 있어도 투온을 노려 아이언 대신 우드를 잡아 온그린을 시도해 보는 편이다. 물론, 아프기 전의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청봉에 오른 이후로 남편은 ‘1일 1산 도전’이라는, 위험이 따르는 목표를 가졌다. 매일 주변의 산을 아침운동 삼아 오르면서 다리의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대청봉이라는 큰 봉우리를 정복한 뒤에는 대청봉보다 아래의 산은 남편의 목표가 되지 못했다. 좀 더 멀리, 조금 더 강도를 높이는 오름길을 선택했다.


집 근처의 작은 산을 비롯해서 단풍지는 계절에는 전라도의 조계산, 두륜산, 백운산, 강천산, 우두산도 1일 1산으로 찾아갔다.

지난 가을에 올랐던 우두산과 백운산

더 발전적인 것은 내가 뒤따르지 않아도 혼자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물론, 낙상우려가 있는 사람이라 당연히 보호자가 함께 해야 할 산행이지만, 나도 남편도 살짝 리스크를 안고 '홀로 산행'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퇴직한 내게 큰 의미를 갖는 일이다. 남편을 두고 혼자만의 일정을 계획해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 내겐 큰 선물이 되었다.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퇴직부부에게 중요하고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프기 전 남편은 사진 찍는 일에 관심을 갖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적이 있다. 왼손으로 카메라를 받쳐들지 못하는 남편이 렌즈를 닦고 본체에 렌즈를 끼우며 가방에 넣고 빼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마음이 쓰렸다. 1일 1 산을 꾸준히 오르던 남편은 카메라를 메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위험천만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 올 줄 예상하지 못했다. 왼손으로 받쳐 들고 흔들리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의 도전을 응원하게 된다. 찍은 결과물이 흐릿해서 그의 마음마저 탁해지긴 하지만 언젠가는 선명하고 원하는 피사체를 표현하는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

홀로 산행이 가능한 오늘이 온 것처럼. 걷기를 시작해서 하나씩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남편을 응원한다.


1일 1 산을 한창 시도하던 지난해 가을, 바위가 많은 우두산을 내려오면서 오른쪽 스틱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온몸의 체중이 구부린 검지에 실려 오른쪽 검지를 삔 적이 있다. 손가락 관절이 퉁퉁 부어올라 살짝 손만 대도 통증이 심한 정도였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할 상황에서 남편은 가지 않고 버텼다.


병원에 가면 손가락에 깁스를 장착할 것이고 깁스를 댄 손가락으로는 아무 운동도 할 수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관절이 두배로 부어올라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은 손가락으로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볼 땐 강하다 못해 미련하거나 독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대청봉을 내려올 때 만신창이었던 몸이 하룻밤 자고 났더니 다시 회복되는 것을 보고 남편은 우리 몸의 항상성과 회복탄력성을 믿었다. 면역력만 잘 관리하고 유지한다면 조금 더 높은 자극으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몸을 강화시켰다.


남편의 손가락은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손톱이 떨어져 나간 흔적 위에 멍까지 들어 있다. 군데군데 상처투성이인 손가락을 보면 발레리나 강수진 발가락을 보는 느낌이다.



왼발을 짚고 힘을 기르기 위한 자신만의 재활법으로 매일 쉬지 않고 골프채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6개월이 넘도록 부어올라 통증이 있었던 채로 골프채 잡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손가락 통증은 무뎌지고 지금은 통증이 사라졌다.



두 번째 삶에서 원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남편은 끊임없이 자신을 연단하고 하루라도 재활을 멈추지 않는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한 단계 높은 도전을 시도한다.


발병 후 빨리 퇴직하여 운동에 전념하지 않고 6년 동안 여덟 시간을 근무했던 그 시간을 가끔 아쉬워한다. 좀 더 빨리 재활에 전념했더라면 빠른 회복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 정도 말이다. 하지만, 그 또한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선택을 했으므로 후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6년 전에는 지금과 다른 상황이었고, 우리는 두 아이를 경제적으로 독립시켜야 할 부모였지 않았나.

자신의 재활이 더 급한 상황인데도 아버지의 역할을 끝내기 위해 두 아이가 사회에 나갈 때까지 경제적 지원에 최선을 다한 남편을 존경한다.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심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고, 건강한 내면을 유지하고 있는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우리에게 퇴직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회복의 시간이 되고 있다.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면 퇴직 후의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잃었지만, 건강을 회복하기만 한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회복하는 과정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보물을 얻었다. 전보다 단단한 건강, 전보다 돈독해진 부부애, 무엇보다도 남은 인생을 함께 할 거라고 서로 믿는 최고의 동반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면 따라오는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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