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자유를 위한 반항, 그리고 소소한 시도
내게 퇴직 후의 삶은 자유를 얻기 위한 여정이었다. 갇혀있지 않는 것, 정하지 않는 것, 이래야 한다고 규정짓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었다.
초, 중, 고, 대학에서 16년, 직장생활 33년, 총 49년을 정해진 틀에서 시간을 보냈다. 동기들은 정년까지 더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막 퇴직을 하고, 묶여있던 망아지가 고삐 풀린 것처럼 다녔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8시간을 오롯이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했다. 이래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면 선택을 과감히 포기했다. 삐뚤어질 테다! 십 대에 해보지 못한 반항을 퇴직 후에 마음껏 했다. 누구에 대한 반항도 아니었다. 대상 없이, 나를 위한 반항. 삐뚤어지지 않으면 숨이 막힐 거 같았다. 다행히 나 혼자 하는 삐뚤어짐에 아무도 건드는 이 없었다. 할 거 다 해!
50대에 들어서 두 아이들이 독립하고 비로소 나를 돌보려 할 때, 남편을 간호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퇴직 후 반항은 7년간의 남편 병간호에 대해 스스로 부여하는 면죄부였다고 생각해 본다.
몸이 일어나고 싶을 때 기상하기, 하고 싶은 거 하기, 먹고 싶은 거 먹기, 떠나고 싶을 때 떠나기,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기, 가고 싶은 곳 가기, 단순하게 살기, 최대한 무질서하기...
자유롭고 삐뚤어지고 싶어 퇴직했다. 그래도 세상은 퇴직 전이나 변함없이 그대로다.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저문다. 그 사이 내 몸을 움직여 지속적으로 행하는 습관만이 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행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 것도 퇴직 전과 다름없다.
이 생활이 지루해지면 뭔가를 배우거나 새로운 일을 찾게 되겠지. 다행히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일이 생겼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더니 그게 사실이다.
함께 퇴직한 우리 부부는 설악산 등반 이후, 1년 전부터 몽블랑 트레킹을 꿈꾸었다. 이 날을 위해 매일 걷고 걸었는데 출국일이 다가오니 불안하다. 가 보지 않은 곳에 대해 누구나 갖는 불안이라 스스로 토닥여본다.
물가 비싼 곳에, 돈 주고, 힘들게 거기까지 가서, 사서 고생을 왜 하느냐고 친구가 우스개 말을 던진다. 그러게... 대답 대신 슬쩍 웃어넘기며, 내 속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어오리라, 속으로 답했다.
남편과 한라산 정상을 오른 후에 작은 자신감이 생겼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 설악산도 올랐다. 설악산 등반을 성공하고 난 뒤, 몽블랑 트레킹을 꿈꾸었다. 몽블랑 트레킹에 성공하면 남편 마음속에 새로운 도전을 꿈꾸어 볼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8년 전, 남편의 뇌경색으로 함께 무너졌던 우리의 일상은 어느 정도 회복 되었고, 잃었던 자신감은 성공하는 등반과 하루 분량의 걷는 길 위에서 조금씩 찾고 있다.
남편에게 뇌경색 후유증이 없다면 날개를 단 듯 그가 원하는 일도 제약 없이 해볼 텐데. 손재주 많은 그가 한쪽 손이 불편해서 내 도움을 받아 어떤 일을 해결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린다.
8년 전 남편에게 뇌경색이 오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 따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생의 모든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 운명에 순응하듯 묵묵히 길을 걷고,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며 위안을 얻는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산에 오르고, 또 그만큼의 자신감을 찾아갈 뿐이다.
퇴직 후에는 퇴직 전과 다른 일상을 보내지만, 삶이 멈춘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일상, 새로운 막이 열리는 설레는 출발이다. 우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강하고 단단한 일상을 보낼 것이고 자신감을 찾는 일에 조금씩 도전할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시간에 나는 여전히 설렘을 안고 하루를 맞이한다. 오롯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함을 느끼며, 스스로 주인이 된 오늘에 건강한 몸과 마음을 챙기며, 새롭게 채워질 나를 들여다보며.
그동안 '이러려고 퇴직했지!' 브런치북을 읽어주신 벗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벗님들의 동행 덕분이었습니다. 퇴직 후 일상은 계속되지만, 브런치북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