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장해 둔 시간을 꺼내다.
사람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니 화양연화였구나 싶은 날들이 있다. 물론 이 순간도 지나고 보면 ‘화양연화’ 일 거라는 걸 안다. 벚꽃 피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내 20대는 부족한 게 많다고 느껴져서 그걸 채우느라 좋은 줄도 모르고 지났다. 30, 40대도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키우던 아이들이 집을 떠나가고 정신 차려보니 나이 50이었다.
50대가 웬 말인가? 젊은 날 50대를 바라볼 때는 다 산 세월 같았다. 50대이면 가슴이 설레지 않을 것 같았고, 50대인 시부모님들이 주무실 때 스킨십을 하는 지도 궁금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야 할 50대를 내가 맞이한 것이 몹시 당황스러웠고, 그쯤에서야 다른 사람을 향해 있던 내 시선이 내게로 향해지는 걸 알아차렸다.
두 아들을 대학 보내고 집에서 독립한 후 남편과 둘이 남게 된 시절부터 ‘나의 화양연화’라고 이름 짓는다. ‘화양연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을 만큼 그 시간들이 아름다웠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더 멋진 날들을 보낼 수 있었을까? 어설프고 유치하긴 했어도 그 시절을 보낸 날들이 지금 생각하니 아름답게 보인다.
어떤 일이 멋지게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 이 순간이 '화양연화'라는 걸 아는 지금은 멋진 일이 일어나는 날보다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 더없이 아름다운 날로 여겨진다.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실 지난날들도 아름다웠지만 이 시간도 좋다. 많은 순간들이 ‘감사’라는 단어와 연관 지어 떠오르고, 마음먹고 선택하기만 하면 이 시간을 내가 ‘행복’으로 채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감사’와 ‘내가 선택한 행복’이 오기 전에 많이도 움켜쥐고 집착하며 살았다. 움켜잡고 내려놓지 못하는 걸 ‘집착’이라며 집착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사회 안에 살기 위해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겠던가. 집착하지 않으면 경쟁하지 못하고 경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인간 세상 아닌가.
지금은 집착하고, 애쓰고, 경쟁하던 시절도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 시간을 보내야만 선물처럼 평온한 일상이 주어지니까. 집착한 것이 있어야 내려놓을 수 있고 내려놓으면 평온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내려놓음’이 ‘패배’가 아니라는 게 멈추니까 보인다.
경쟁하고 애쓰고 살면서 내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었던 지난 시간을 꺼내 다시 바라보려고 한다. 유치하기도 하고 때론 안쓰러워서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나를 토닥이고,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흐르는 물처럼 과거의 나를 보내고 두 팔 벌려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장해 둔 시간을 꺼내고 가장 아름답고 젊은 날일 오늘을 모아 ‘화양연화’라 이름 짓고,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다. 또, 비슷한 세대를 지나는 분들과도 서로의 화양연화를 공유하고 싶다.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