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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Mar 05. 2023

우리는 각자 8000m 산에 오른다

“삶과 죽음이 이와 같으니”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산을 오른다.      




인간은 정말 자신만의 카르마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먹고사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어떤 직업은 누군가의 선망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극한직업’으로 불리며 기회를 줘도 이건 못하겠다 싶은 일도 많다. 히말라야 영화를 보며 눈 덮인 산을 로프 하나에 의지한 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삶이 경이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 한편으로 그들이 어떤 이유로 그토록 극한의 도전에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자기 안에 있는 어떠한 끌림에 의해서일까. 대자연 속에 자신을 내던져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일까. 이런저런 상상만 해 볼 뿐 솔직히 심정을 헤아리기란 불가능하다.  


인생에서 목표로 하는 어떤 일은 간절히 원했음에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붙잡을 수가 없다. 반면 기대하지 않았지만 삶을 바꾸는 인연, 혹은 커다란 행운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한 김재수 대장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삶으로 걸어 들어온 한 여성에 의해 8000m 높이의 14좌 등반에 성공하게 된다. 그것은 애초에 자신이 목표로 한 일은 아니었다. 2007년 히말라야 등반을 할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로 이미 은퇴를 생각하기에도 이르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원정 등반을 준비하던 중 후원사의 갑작스러운 합류 부탁을 받게 되었다. 당시 국내 여성클라이머 고미영선수와 함께 등반을 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실력을 갖춘 클라이밍 선수라고는 하나 등반 경험이 부족한 사람과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것은 마치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승산 없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고심 끝에 수락했다고 한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고미영은 히말라야 8000m 등반을 무난히 성공했고, 먼저 혼자서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던 선수는 김재수대장에게 등반 매니저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대장님, 8000m 14좌 완등이 제 꿈이에요.”



고미영은 당시 세계 어느 여성 등반가도 완등하지 못한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김재수대장이 단번에 거절하자 그녀는  한발 뒤로 물러섰고 두 번째 등반까지라도 함께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도전한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등정에 연이어 성공하며 더욱 두터운 신뢰를 쌓았고 그 이후에 김재수대장은 등반 매니저가 되어 주기로 한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품고 히말라야 등반을 계속해 나가게 된다. 2009년에 제5위 마칼루 산(8463m)과 세계 3위 칸첸중가산(8586m) 세계 7위 다울라기리 산(8167m)에 차례로 올랐다. 무섭게 목표를 향해 가는 그들을 세상도 주목했다. 드디어 11번째 등반이 시작되었고, 이번엔 킬러마운틴이라 불리는 낭가파르바트(K2)를 오르게 되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순조롭게 등반을 했지만 하산 지점부터 급변한 악천후로 난조를 겪으며 팀원들의 체력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등반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던 김재수대장은 먼저 하산하며 안전을 위해 설치해 둔 고정 로프를 확인했다. 캠프에 도착해 지친 대원들을 위해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을 때 세르파 한 명이 이상한 말을 한다.


“당신네 대원이 아래로 추락했어요.”


무슨 소린가 싶어 다시 한번 물었더니 고미영이 추락했다고 알려 준다. 지형이 좁아 로프를 설치할 수 없는 10m~20m 구간에서 실족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캠프를 불과 100m 앞둔 구간이었다.  


 

헬기를 동원해 세 번이나 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고, 헬기 연료가 다 떨어져 가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김재수대장이 직접 헬기에 올라타 수색해 기적처럼 추락한 고미영을 발견하게 된다. 발견된 지점은 추락 지점으로부터 1000m가량 아래에 있는 지점이었고 생존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김재수대장과 팀원들은 동료를 데려가기 위해 추락지점으로 접근해 시신을 서로 번갈아 짊어지며 이송했고 그 일은 열세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자신 만의 꿈을 품고, 자기 한계에 발을 내디뎌 걸어가던 한 사람이 영면에 들었다.       


산악인 고미영의 도전은 11번째 봉우리에서 멈추었고, 김재수대장은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야 했다. 장례를 마친 두 달 뒤에 김재수 대장은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고미영을 보내며 새로운 약속을 했다.


“혼자 살아남았으니까, 그 어떤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세 개 봉우리에 대해서는 정말 안전하고 완벽한 등반을 하면서 당신에게 8000m 14개 봉우리는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있다면 지켜봐 주십시오.”



김재수대장은 왼팔 주머니에 고미영 선수의 사진을 넣고 안나푸르나에 오르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시속 200km의 눈사태를 만난 대원들은 죽음의 순간과 또다시 직면하게 되고 문철한대원이 머리에 쓴 헬멧이 깨지는 사고를 당했음에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중에 그 헬멧에다 김재수 대장은 이렇게 썼다.


 “삶과 죽음이 이와 같으니”      



김재수대장은 2010년 여름에 또 다른 8000m 가셔브룸 1봉과 2봉 정상에 서게 된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고미영의 사진을 묻는다. 이제 남은 산은 단 하나, 뼈아픈 실패를 맛보게 했던 안나푸르나가 바로 그곳이다. 2011년 봄, 그녀의 못다 한 꿈을 김재수 대장이 이어받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삶과 죽음은 끝도 없이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토록 가까이 있다. 이어령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표현한다면 손등과 손바닥처럼 한 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꽤 안전하고 문명화된 생활에 둘러 쌓인 우리는 이것을 잊은 채 살아갈 뿐, 자연과 가까운 사람들은 조금 더 진리에 살갗을 가까이 맞대고 있으리라.     

한 발자국 잘 못 내딛으면 생사가 뒤바뀌는 8000m의 눈 덮인 산 히말라야. 살아가는 동안 내가 그곳에 갈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도 우리는 각자 앞에 펼쳐진 8000m 산에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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