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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May 22. 2022

스스로의 한계를 넓혀가는 힘

두려움을 넘어 지속하기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릴 적 나는 늘 내일이 궁금했고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그 대화나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아내로 아이 엄마로 강사로 내 일과 공부를 하고 있는  요즘, 다른 건 모르겠고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낀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한동안 사람에 대한 호기심 잃어버린 채 지내왔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내일이 두려운 걸까? 오늘 이 순간을 살겠다고 수 없이 다짐해 놓고선 흔들리는 날들이 더 많다.



기대가 두려움으로 변해버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잘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데, 욕심 내서 더 잘하려하니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두렵기 시작하면 점점 아무 행동도 하지 않게 되고 생각의 방 안에 갇히게 된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모든 잎을 떨구고 고요히 안으로 자라며 또다시 봄을 준비한다. 성찰과 자기반성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묘약이지만 지나치면 독약이 된다. 봄을 맞이하기 두려워하는 나무는 끝내 잎을 틔워내지 못하고 죽은 나무가 된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순천 선암사에 찾아가 머물렀던 밤에도 나는 내 안에 갇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산사의 그 고요 속에 귀뚜라미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곧 깊은 겨울이 오는 걸 알고 마지막 발악을 하듯 처절했다. 문밖에 나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그저 듣고만 있었다. 생각해보면 적어도 그들은 나보다 두려움에 맞서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만가지의 생각을 짊어지고 왔던 나는 결국 기대했던 깊은 잠에 들지 못한 채 아침을 맞았다.



선암사의 등명 스님과 아침 산책을 나섰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여덞아홉 명 남짓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스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들도 각자의 두려움을 짊어지고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스님은 선암사의 오래된 매화나무 곁에 서서 풍매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암술에 옮겨져 수정하는 것을 풍매라고 하는데, 이때 나무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까지다. 열매를 맺는 일은 불어오는 바람이나 벌과 나비의 역할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지 애초에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만 지혜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하고 깨닫기를 반복하며 쌓이는 거다. 어떻게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마음 가는 이 있다면 일단 해보라고 하고 싶다. 잘하려는 마음은 살짝 치워두고, 계속해보는 거다. 오래도록 품고 지속다면 탁월해지는 순간이 온다. 만일 기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땐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한 해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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