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도 날벼락은 친다

독감이 아니라 암이었다.

by 리마인더



올해 유행하는 독감은 정말 지독하구나 생각했다. 독감에 걸린 아빠가 영 맥을 못 추고 2주 가까이 앓아누웠다. 며칠 동안 일터에도 나가지 못하는 아빠를 보며 이제 아빠도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싶었다. 속으론 걱정이 되면서도 꾀병 부리지 말라며 괜히 핀잔을 준다. 아빠는 엄살이 심한 편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건강 때문에 크게 고생한 적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독감 증상이 거의 호전되었을 때쯤 아빠는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위내시경 등 검사를 마치고 건강상 크게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나오려던 순간, 아빠는 의사에게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렇게 다시 복부초음파를 받게 되면서 아빠 몸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검은 존재가 얼굴을 드러냈다. 의사는 대학병원으로 가서 조직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한 결과, 간에 있는 혹은 역시나 암세포로 밝혀졌다. 하지만 절제 수술을 통해 간의 3/2 정도를 떼어내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PET CT 등 정밀검사에서도 전이 소견이 없단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엄마와 우리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뻐했다.



간 절제 수술 당일 날. 수술은 오전에 들어가서 오후 두 시 이후까지 진행될 거라고 들었다. 그런데 오전 11시 30분쯤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뭔가 애매한 시간이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별일 아니겠지 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순간부터 정신이 아찔해졌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혼비백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의사로부터 들은 말을 전하자면 개복을 하고 난 뒤에서야 암세포가 많은 부위로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간과 폐 아래쪽, 횡격막, 담도까지. 아빠의 주요 장기들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암세포를 절제한다면 환자의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고, 이대로 개복한 배를 덮는다면 임상 경험으로 봐서 1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단다.

“엄마, 우리는 잘 모르잖아. 전문가 말 대로 하자. 내가 빨리 갈게”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겨우 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익숙한 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만 울음을 터뜨려 렸다. 정말 마른하늘에도 벼락이 치는구나! 그 말의 뜻을 온전히 경험했던 순간이었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놀라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당시에 한 시간 가까이 무슨 생각을 하며 병원까지 갔는지 기억이 없다. 아빠는 예정된 수술 시간보다 훨씬 일찍 회복실로 옮겨져 이미 마취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난 줄만 알고 있을 아빠가 나를 알아보았고, 우리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제야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급하게 내 손을 잡아 이끄는 엄마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아빠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발견된 종양의 위치를 표시해 주셨던 종이



keyword
이전 09화가족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