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행동 6] Quiet Quitting
나는 쿠마에에서 실제로 내 눈으로 시빌라(Sibyl)를 보았다.
그녀는 항아리 안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이 “시빌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고 싶어."
“Nam Sibyllam quidem Cumis ego ipse oculis meis vidi in ampulla pendere,
et cum illi pueri dicerent:
Σίβυλλα, τί θέλεις;
respondebat illa:
ἀποθανεῖν θέλω.”
T. S. Eliot이 『황무지(The Waste Land)』(1922) 서두에 인용한 '쿠마에의 시빌라' 이야기다. 이 인용문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씌어 있어서 한글 해석을 볼 수밖에 없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유명한 문구에 이끌려 이 시를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한 작품이다.
왜 그녀는 항아리 안에 매달려 있을까? 죽고 싶다면서도 왜 그 안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것일까? 항아리는 우물처럼 크고 깊은 것 같다. 그 바닥에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기다리고 있어 끝까지 매달려 있는가?
배경지식이 없을 때는 이렇게 상상할 수밖에 없다.
시빌라(Sibyl)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예언을 전달하는 여사제들이다. 그 중 쿠마에라는 곳의 시빌라는 아폴론의 신탁을 주재하는 예언자로 아폴론에게 영생을 구하여 얻었다. 그러나 젊음도 함께 달라는 것은 요청하지 않아 무한히 늙고 쇠약해졌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녀의 몸은 결국 작은 항아리(ampulla)에 들어갈 정도로 점점 작아졌다는 전설이다.
시빌라는 육체는 살아 있으나, 정신과 내면은 이미 소진된 상태다. 무한히 쇠퇴하는 영생은 오히려 비극이다.
직장에서 일에 의미나 성취감을 못 느끼고, 거리를 두는 것을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고 한다. 몸은 일터에 있지만 마음은 떠난 상태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로 열정을 잃고 소진되는 것은 쿠마에의 시빌라를 떠오르게 한다. 삶 또는 일은 계속되지만 거기에서 활력이나 목적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 시빌라는 항아리에 갇혀 있고, 조용한 사직을 선택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갇혀 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실제로 이직하는 사람은 오히려 낫다.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도전적인 과정이다.
2024년 한 연구에서 국내 공무원 32%는 주어진 일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사직 상태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노동인구의 50%가 직무기술서에 정한 일 외에는 하지 않기로 선택한 조용한 사직자(Quiet Quitters)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조용한 사직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새로운 풍조라고 한다. 직장생활이 곧 개인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MZ 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새삼스럽게 최근 젊은 세대에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기성세대에게도 이미 있던 현상이다. 특히, 일에 소극적인 사람도 쉽게 조직에서 내보내지 못하는 안정된 직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조용한 사직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는 승진 중심의 인사제도다.
요즘은 수시채용이 많이 확대되고 있다. 예전에는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사기업도 대규모 공개 채용 중심으로 사람을 뽑았다. 출발선이 똑같은 입사동기라는 집단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열정과 능력이 변한다. 조직에서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피라미드 구조의 조직 계층에서 승진이라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원래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입사동기나 후배가 승진해서 상사가 되는 시점이 있다. 계급적인 질서를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자신은 같은 지위에 체류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심리적인 좌절과 갈등, 그리고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승진에서 제외되더라도 여전히 열정을 가지고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조용한 사직이다. 주어진 일만 적정한 선에서 또는 최소한 수준에서 한다. 대략 50%의 사람들이 원하는 직급까지 승진하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그중 상당수는 조용한 사직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조용한 사직을 선택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인사관리 철학과 리더십의 부족이 원인이다. 조용한 사직을 젊은 세대의 특성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다. 사실 ‘조용한 사직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용한 사직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일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발전과 성취감이 없는 단순한 ‘버팀’은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진정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는 누구나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세대 구분을 넘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조용한 사직을 줄이는 해결책이다.
(참고자료)
조선일보(2024.7.23.), 서울경제신문 (2024.9.30.)
Ellera, L., et al. (2023). “Quiet Quitting” and “Quiet Thriving” – Flourishing in the Modern Organization. The Journal of Values-Based Leadership. Vol.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