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행동 21] 조직의 집단지성
"반지의 제왕, 토이스토리, 미녀와 야수, 인터스텔라, 쥬라기 공원, 공각기동대, 분노의 질주, 수상한 그녀, 건축학개론, 나홀로 집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제목을 하나씩 돌아가며 외친다. 우선 비교적 최근 작품부터 찾아내야 승산이 있다. 그다음부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을 들추어낸다. 이때부터 게임은 젊은 세대에게 점점 불리해진다.
"쇼생크 탈출, 사랑과 영혼, 아마데우스, 시네마 천국, 터미네이터, 광복절 특사, 장군의 아들, 늑대와 춤을, 카사블랑카, 닥터 지바고, 로마의 휴일, 원초적 본능…."
코로나19로 바깥세상이 멈춰 선 듯했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 가족 넷은 식탁에 둘러앉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게임을 시작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부부 팀과 두 딸 팀으로 나누어, 미리 정한 음절 수에 맞는 영화 제목을 번갈아 대는 것이다.
아이들의 초반 기세는 당당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라면 자신들이 앞설 것이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게임의 흐름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가 <늑대와 춤을>의 여운이나 <원초적 본능>이 당시에 불러일으켰던 충격을 알 수 있을까? 세월이 촘촘히 쌓아 올린 기억의 높이를 단숨에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우리 가족 팀이 대학생 네 명으로 구성된 팀과 맞붙는다면 결과는 어떨까? 아마 거의 확실하게 우리 가족이 우세할 것이다. 스마트폰 검색창에는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이 게임에서 필요한 것은 검색 능력이 아닌 기억의 수준이다. 단순히 영화 제목의 단어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 영화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감정, 그리고 삶이 함께 느껴진다.
가족의 경험이 그러하듯, 조직의 노하우도 마찬가지다. 조직에는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집단지성은 단순히 지식을 한 곳에 모은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협력할 때 비로소 공동의 지식체계가 형성된다.
집단지성은 단순히 인원이 많다고 높아지지 않는다.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때, 특히 연령 구성의 연속성이 유지될 때 강화된다. 불경기나 구조조정 시기에 많은 기업이 효율성을 이유로 시니어 인력을 내보내고, 수년간 신규 채용을 중단하기도 한다. 당장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조직의 기억을 스스로 제거하는 일이다.
세대 구성의 공백으로 암묵적인 조직 기억에 단절이 생긴다. 이러한 단절은 축적된 현장 감각과 노하우의 손실로 이어지고, 결국 성과 저하라는 결과를 낳는다.
약 10여 년 전, 일본의 한 대도시에서 사회기반시설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이미 고령화가 깊숙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그 조직의 가장 큰 고민은 수년간 신규 채용을 하지 못해 발생한 ‘기술의 단절’이었다. 베테랑들이 가진 수십 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연결 고리가 사라진 것이다.
성공적인 조직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작동해야 한다. 조직을 지탱하는 힘은 지금의 인력 규모가 아니다.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식과 경험의 흐름이 필요하다. 세대 간의 연결이 유지될 때 경험은 노하우가 되고, 그 노하우는 다시 조직의 지혜로 축적된다.
영화 제목 게임에서 다른 세대의 기억이 모일수록 더 많은 제목을 떠올릴 수 있듯이, 조직도 다양한 세대의 지식이 연결될 때 더 넓고 깊은 지성을 갖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