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3) - 마법의 산티탐

마법의 산티탐

by 서화림

단단히 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른쪽으로 두 블록 가서 왼쪽으로 꺾어라'라는 말에는 항상 '왼쪽으로 두 블록 가서 오른편으로 꺾어' 길을 찾는다. 가끔 큰 개의 덩치에 압도당해 줄행랑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잘 못 드는 길은 나에게 유쾌한 산책을 선사하곤 한다.


오늘은 산티탐 플라자에 가려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길가에 서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산티탐 플라자를 물으니 잘 못 알아듣는다.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아저씨는 드디어 내 말을 알아들었고, 몇 번을 반복해서 길 설명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난감하기만 하던 태국말 설명이 몇 번 반복되자 신기하게도 그 말의 뜻을 마음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을 또다시 겪게 되었다. 내가 확실히 알아들었음을 확인한 아저씨가 웃으며 지나가고 낯선 길을 좀 더 걸어 들어갔다.


짧은 소통에서 받았던 환희에서 벗어나 내가 알아들은 말이 맞았던 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을 때 정확히 아저씨가 말한 그 장소쯤에서 산티탐 플라자 이정표를 발견했다. 탄성을 지르며 접어든 길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산티탐 플라자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떡하니 눈앞에 이정표가 있고 분명 근처라는 느낌도 드는데 찾질 못하겠는 거다. 인적이 드문 그 길을 몇 번쯤 왔다 갔다 하고 나니까 에이, 다음번에 가지 뭐.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랑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어 다시 내려온 길. 이번에는 탄닌 시장에 가보기로 한다. 나는 워낙에 방향치고 기분파라 크게 아쉽지 않다.


산티탐 플라자는 근방이나마 찾아갈 수 있을 정도는 알고 찾아갔는데 탄닌 시장은 전날 게스트하우스 여행객들이 다녀왔다는 말을 주워듣고 충동적으로 결정한 길이라 찾아가는 길이 여간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시장길에 접어든 것 같은데, 내가 원하던 먹거리를 파는 곳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지나가는 두 소녀를 붙잡고 여기가 탄닌 시장이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왜 과일이 없냐고 물으니 바로 여기 있단다. 어쨌든 조금만 더 가면 나오겠거니 싶어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선 길. 10m도 채 걷지 않았는데 마법같이 내가 바라던 그 모습대로의 시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단 화장품 가게에 들러 선크림을 하나 사고, 먹거리 장터를 헤매기 시작한다. 치앙마이에 온 이래 이렇게 많은 음식들은 처음 보는지라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하고 다니니 눈 마주치는 상인들이 나에게 웃어준다. 설마하니 시장에서 파는 쏨땀은 맛있겠지 하며 줄을 서 있는데 쏨땀 파는 아주머니가 자꾸 나를 쳐다보며 웃으신다.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는 다섯 봉지의 쏨땀을 만드셨는데, 나는 매번 쏨땀을 만드는 그 능숙한 손놀림을 감탄하며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한눈에도 정성 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신경 써서 만들어 주신다. 즐거운 마음으로 계산을 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돌아서는 길. 이제 시작인데 발이 아프기 시작한다. 나는 치앙마이에 오는 전날까지도 병원에 들러 족저근막염 치료를 받았다. 이럴까봐 아침에 미리 마사지도 한 시간 받고 나선 길이었는데. 발이 아프면 모든 계획이 허사다. 부랴부랴 망고스틴 1kg과 볶음밥 한 덩이를 사서 다음을 기약하며 시장을 빠져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썽태우를 찾을 수가 없다.


시장 깊숙한 곳에 있어서 썽태우가 오지 않는 걸까 생각하며 대로로 나가보지만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결국 뜨거운 오후 햇살을 맞아가며 걸어 돌아가는 길. 발이 아프다는 것이 계속 신경이 쓰이지만 여전히 골목길을 걷는 것은 즐겁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나는 유명한 게으름뱅이라서 일 없이는 집 밖에 나오는 일이 전혀 없었는데, 그런 내가 산책을 즐거워하며 길을 걷는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노점상도 대부분 문을 닫은 것이,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면 휴일이 끝난다니 내일부터는 다시 번잡한 노점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밥을 먹는다. 쏨땀은 맛있고, 볶음밥은 맛이 없다. 오늘 아침 사람들이 맛있다고 추천해준 집에서 쌀국수를 먹으며 깨달았다. 치앙마이에서 먹었던 음식이 맛있지 않다고 여겼던 건 간이 짜기 때문이라는 것을. 음식을 싱겁게 먹는 편이기 때문에 짠맛에 민감한 터라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 맛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맛이 있지가 않더라 싶더니. 치앙마이에 온 지 6일 만에 그 이유를 깨닫는다.


흔히 남도 음식이 짜다고 하고, 수도권 음식은 싱겁다고들 하는데, 태국에서도 적용되는 걸까? 수도 방콕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간이 짜다고 느끼지 않았었는데, 치앙마이가 바다에 면해 있는 동네는 아니지만 어쨌든 음식이 짠 걸 알고 나니 괜스레 한국과 비교를 하게 된다. 날씨가 더우니 좀 짜게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음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런 거라고 하는데 뭐-하고 생각하니 못 받아들일 게 없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오늘은 방 청소를 해주지 않았다. 다른 건 상관없는데 물이 없는 건 아쉬워서 물 뜨러 내려갔다가 학교 선생님 3인방과 배낭여행 아주머니께서 고기파티를 준비하시는 걸 봤다. 잘됐다며 먹고 가라고 하셔서 앉아서 몇 점 얻어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싼캄펭 온천에 다녀오셨다고 하는데, 일행 중 한 분이 땀띠가 심해서 고생 중이셨는데 오늘 온천에 다녀오고 반 정도는 가라앉았다며 신기해하시는 걸 보며 날씨가 덥기는 하지만 나도 꼭 한번은 온천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과연, 이 더운 날씨에 온천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오늘도 하루가 지났다. 치앙마이에 와서 처음으로 뭔가에 공격을 받았는데, 아직도 그것이 모기인지 개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간지럽다. 아직도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숙박을 할 것인지 집을 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고, 얼마 전 생긴 메일 친구에게 룸메이트 제안을 했는데 그 대답 여하에 따라 거취가 결정될 것 같기도 하다.


길을 걷다가 스스로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늘고 있다. 죽겠다, 못 살겠다 입에 달고 살았던 지난 2년여의 세월이 떠오르며 새삼 여기에서의 1주일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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