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6) - 사랑하는 당신께

사랑하는 당신께

by 서화림

오랜만에 화창한 하늘을 봅니다. 어쩐지 늘어지지만, 일어나 움직여야 할 것 같군요.

특별할 것 없는 하옉 산티탐 5분의 1거리.

다섯 개의 길이 만나는 지점에 서서 나는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비에는 강하면서 더위에는 약한 걸까?

가랑비 정도는 몸으로 맞고 버텨내는 쿨한 치앙마이 참새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난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어요.

다만, 너무 골목 깊이 위치한 탓에 저녁에 오가기 위험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둘러보질 않았을 뿐이죠.

날씨도 좋고, 시간은 많고.

들어갑니다. 여행자에게 집을 보여주세요.


두 번 더 방문했어요.

첫 번째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없어서 집만 보고 돌아가고,

두 번째는 영어 잘하는 주인의 안내 하에 다시 집을 둘러보고,

세 번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빈 방들을 보고 내가 살 집을 정하고 계약.

맨 꼭대기 층 제일 구석 집이 나의 집입니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구입을 한 것도 아니지만.

'나의 집'입니다.


밤이라 좀 어둡지만, 소개합니다.

사실, 더블침대 두개면 꽉 차는 사이즈의 방이지만, 원룸이 아니라는 것에 만족, 바깥 경치가 좋은 것도 만족.

발코니와 창은 정말로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꼭대기 층이라 천장의 열기와 구석 집이라 벽면의 열기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서쪽 집이라 도이수텝이 보이는 것은 정말 환상적이지만,

역시 서쪽 집은 덥지요......

오늘은 날씨가 흐려 진정한 햇볕맛을 보지 못했지만 에어컨을 무기로 이겨내 보려 합니다.-전기세는 어쩌죠


동쪽방향에도 집이 있는데, 집 바로 뒤에 사원 때문에 발코니도 없고 창문도 작고, 그나마 있는 창문도 나무로 덧대놔서 시야가 많이 가리더군요. 태국 법에는 절이 있는 방향으로 창을 낼 때는 큰 창은 안 되고 작은 창도 가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 법들을 잘 지켜 집을 짓는다는 것이 놀라웠답니다.

대신 동쪽 집은 시원해서 선풍기만 있어도 이 계절을 날 수가 있을 정도라고 하고, 가구도 서쪽 집에 비해 좀 더 고급으로 보이더군요. 창문을 낼 수 없는 대신 그 자리를 벽장으로 채워서 수납공간도 넉넉 하구요.

햇볕이 내려쬐면 피부에 안 좋다고 창문을 꽁꽁 가릴 테지만, 그래도 전 넓은 발코니가 좋아요. 앞으로 빨래 말리는 데는 걱정 없겠어요.


비좁지만 방과 분리된 거실에는 TV와 책상도 있고, 냉장고와 전자렌지도 있습니다. 부엌은 없지만 어차피 요리는 영 소질이 없으니 아쉽지 않아요.

동쪽 집을 둘러볼 땐 집집마다 있던 신발장이 서쪽 집에는 없는걸 보고, 애교있게 부탁했습니다.

"나도 주면 안돼요?"

원하는 것을 얻었지요. 고맙습니다.


화질이 별로기는 했습니다만, 어쨌든 TV는 LG, 무려 국산입니다!

TV 받침대는 넉넉한 수납장이라 이것저것 넣기가 좋더군요.

장농이 작아서 걱정했는데 잘됐지 뭐겠어요.

수납공간이 적은 장롱은 말 그대로 석 달 미만의 여행자에게 적당할만한 사이즈네요.

하지만 나에게는 TV 받침대가 있고, 챙겨온 옷도 많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겉보기에는 깔끔하고, 실제 관리도 잘 되어 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테니 꼼꼼하게 청소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바닥도 좀 닦아야 할 것 같고, 전자렌지 안에는 라면국물이 튄 흔적과 냉장고 안에는 엄청난 냄새가.

여기도 냄새 먹는 하마가 있을까요?

오늘은 마트 탐방을 나서야겠습니다.

마트야, 내가 간다!


흥분된 마음으로 쓸고 닦고 정리하다가 지쳐서 늦게야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뭔가 쿰쿰한 냄새가 나네요.

혹시나 하고 열어본 에어컨은 우와- 평생 그렇게 더러운 에어컨은 처음 봤어요.

당장 일어나 에어컨 청소를 하는데, 말끔히 닦고 망을 씻는데 만도 30분이나 걸렸답니다.

청소를 해놓고 보니 더욱 더 애착이 생겨서 한 달 계약한 이 집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방콕에 살 때는 집에서 귀신을 봤다는 둥 소란을 부리다가 결국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해서 살면서 정을 붙였는데 이 집은 직접 발품을 팔고 며칠을 고민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만 했다는 점에서 더욱 더 애착이 가네요.

물론 지내다보면 불편한 점도 생기겠지만 그래도 처음 집을 구하고 그렇게 들떴던 마음 잊지 않고 만족하며 지낼거예요.


이사를 약속한 날 저녁 여덟시. 마침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어떻게든 게스트하우스 위치를 찾아와 이사를 도와준 친절한 사장님.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지만, 그래도 부족하게 여겨지네요.

복도에서 신을 슬리퍼를 미리 준비해놓고 내 발에 사이즈가 맞냐 아니냐를 봐주기까지 해주시고 정말 환영받는 듯 한 느낌을 받아 행복했어요. 오라는 데 없는 게 여행자의 길이지만 그래도 잘왔다, 환대받는 기분은 누구에게나 안정감을 전해주죠.

게스트하우스도 불편함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을 구해 내 공간이 생기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좋네요.


드디어 40kg에 달하는 짐을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행복하구요.

여기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게 되겠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까페 디짜이(5) - 대화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