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7-2) - 첫번째 수다모임

9월 24일 금요일 오전 10시 53분-첫 번째 수다모임(2)

by 서화림

"안녕하세요 여러분. 까페 디짜이의 연마담입니다. 처음 태국에 왔을때는 마담 소리를 듣는 게 참 어색했는데 이제는 제가 먼저 저를 마담이라고 소개하는 날이 오기도 하네요.

어젯밤에는 잠이 잘 안 왔어요.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고 또 오신다 하더라도 그 앞에서 제가 무슨 말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도 고민하느라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치앙마이에서의 삶을 결정한 순간부터 제 인생이 참 두근두근해졌는데 어젯밤은 두근두근의 절정이었답니다.

잠깐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 저는 까페 디짜이의 마담이고요, 앞으로 저를 연마담이라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임은 기본적으로 익명으로 운영할 생각이거든요. 전단에선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저는 한국에서 심리상담사 일을 했었습니다. 치앙마이로 이주를 결심하고 정착하면서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결심했고요. 적당한 자리를 보러 다니다가 이곳에 와서 1층 공간을 보자마자 까페 디짜이를 구상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한국인을 위한 심리상담실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저기 보이는 작은 사무실이 상담실이고요."

모두의 시선이 사무실을 향했다.


"한국에서 저는 작은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심리 상담의 개념은커녕 우울증도 개인의 의지부족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었죠.

그곳에서 나름 고군분투했지만 어떻게 해도 저는 성공한 심리상담사는 아니었습니다. 한번 와서 털어만 놓아도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상담실 문턱을 밟는 것조차 어려운 곳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치앙마이에 오면서 상담실 문턱자체를 없애기로 결심 했습니다. 커피를 배워 바리스타가 되고 이 장소를 상담소가 아닌 까페로 꾸며 문득 들어오신 분께 커피 한잔씩을 대접하고 또 마음이 내키면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고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이 모임은 집단상담이라 부르는 대신 수다모임이라 부르겠습니다. 제 별명인 연수다에서 따온 거기도 하고요. 어차피 서로 이야기하고 위로하고 같이 고민하는 과정은 모두 같은데 괜히 상담이라는 말을 붙여서 접근장벽을 높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 모든 설명을 전단에 적기가 어려워 참석하신 분들을 만나 뵙고 설명을 하고 싶었는데 충분히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생각하던 것과 너무 다르다 싶으신 분은 지금 말씀 하고 나가시면 됩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누군가 손을 들어 집단 상담에 대해 물었다. 마담이 모두를 향해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가 물었다.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흔히 TV에서 보는 심리상담은 상담사와 내담자가 막힌 공간에서 1대1로 진행하는 것이지요. 집단상담은 1대 다수의 상담이라 설명할 수 있겠고요. 하지만 여기서 1대 다수는 한명의 상담사와 다수의 내담자가 아닙니다.

수다 모임에 한해서 1은 내 자신이고 다수는 나를 제외한 모두입니다. 제 설명이 학술적인 부분으로 접근을 하면 맞는 설명이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 수다모임만큼은 그런 식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듣는 우리 모두는 그것을 듣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고민의 주체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비난 없이,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비난이나 비판 없이 짚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문 상담사가 참석한 모임이기에 이런 방식을 택할 수 있는 것이고 문제 상황 발생 시에는 제가 개입을 하겠지만 저는 최대한 자유로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설명만 들어서는 어떤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고 뭔가 어렵고 거창한 건가 싶어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는데 찻집 주인이 초대하는 다과회에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잠깐 말을 멈췄던 마담이 모두를 한번 둘러보곤 말을 이어갔다.


"앞서의 긴 수다로 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을 제외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주시면 됩니다. 형식은 없습니다. 아, 이름대신 별명을 하나씩 정해 발표하시면 앞으로 모두 그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도록 할 텐데 다른 분들이 이해하고 기억하기 쉽도록 왜 그 별명을 선택했는지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수다모임에 처음 참석한 가브리엘입니다. 나이는 서른일곱이고요. 경기도에서 왔습니다. 저는 여행 왔습니다. 치앙마이에 얼마나 머물지는 모르겠습니다. 유일한 청일점이네요. 기분 좋습니다. 아, 별명은 영어이름입니다. 치앙마이에서는 모두 저를 가브리엘이라고 부릅니다."

강마담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남자가 말을 꺼냈다. 유명 블로거 가브리엘. 나도 그를 안다. 치앙마이뿐 아니라 태국 전역의 여행기를 올리는 블로거로 나도 치앙마이에 오기 전에 그의 블로그를 읽었다. 사진을 걸어놓고 활동을 하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숱이 많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타고난 걸까 파마를 한 걸까.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테. 살집 있는 얼굴과 달리 몸은 말랐다. 키도 크지 않다. 툭 튀어나온 눈과 뭉툭한 손끝을 보니 개구리 왕눈이가 떠오른다. 튀어나온 덧니가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게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하라고 불러주세요. 학교 때 심은하 닮았다는 말을 몇 번 들었는데 별명 지으라는 말을 들으니까 은하라고 불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은하는 무슨 심은하냐고 다른 분들 돌아가시면서 욕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지만 잠깐 창피하고 심은하라 불릴 테니 제 입장에선 이득입니다. 남편 있고 딸도 있고 아들도 있습니다. 없는 것은...... 남편 사랑? 치앙마이 온지는 1년쯤 됐고요. 남편 때문에 와있습니다. 끝나면 돌아갈 예정이고요. 나이는 앞에 설명했던 가브리엘님하고 같네요. 이상입니다."

나였다면 얼굴이 빨개졌을 텐데 자기 입으로 심은하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피부색이 멀쩡하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여자다. 웨이브를 넣은 긴 검은머리의 옆 가르마를 보니 심은하 생각이 난다. 닮았냐고 하면 부정적이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예쁘냐고 물으면 긍정할 수 없지만 우아한 분위기는 있는 사람이다. 말의 내용은 유쾌하지만 말투는 차분하다. 묘하다. 다시 봐도 묘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치앙마이 온지 얼마 안 되었고요. 장기 여행 예정자입니다. 저는 개똥이라 불러주세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오래 살라고 남편이 못난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있습니다. 남편 있습니다."

다음은 나였다. 마지막 말은 불필요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자기소개 시간은 늘 곤혹스럽다. 이름은 말 안 해도 되고, 나이는 말하고 싶지 않고, 누구와 사는지도 왜 이곳에 오게 된 건지도 말하고 싶지 않다. 어디에서 왔는지, 지금은 어디에 사는가도 알리고 싶지 않다. 말 할 수 없는 것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의 틈바구니에서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말을 건져내려니 할 말이 없다. 차라리 누가 질문을 해주면 대답을 해주는 방식이 더 좋을 것 같다.


"아 뭐야. 처음하고 마지막은 하기 싫었는데 별명 고민하는 사이에 내가 마지막이잖아. 저는 엘리라고 불러주세요. 엘리는 제 세례명이고요. 음. 저는 나이는 말 안하고 싶은데. 서른이에요. 제가 제일 어린 거예요? 그리고 저는 한남동에서 살았고요. 원래는 하던 일 그만두고 치앙마이 와서 이제 돌아가면 그만두고 다른 일 준비하려고요. 전 육개월? 일년? 정도 있을 거예요.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뭐가 왔다갔나 싶을 정도로 높은 톤으로 우다다다 쏟아내는 통에 되새김질을 한번 하고서야 들은 말이 귀에서 머리로 들어온다. 제멋대로 보여도 사랑을 듬뿍 주고 키운 꽃처럼 생기로 가득해서 눈을 떼기 어렵다. 혼잣말과 소개말을 섞은 거창한 소개를 마치고는 붉어진 얼굴로 혀를 날름대는 그녀. 멋진 차에서 내려 예쁜 모습으로 까페 디짜이에 들어왔을 때부터 눈이 가는 사람이었다.


"좋아요. 가브리엘님, 은하님, 개똥이님, 엘리님. 저 연마담까지.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참 개성 있는 이름의 조합이네요. 첫 만남이니만큼 조금 불편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수도 있어요. 이 자리는 무엇이건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자리입니다. 혹시 뭔가 얘기하고 싶은게 있는 분 있으신가요?"

조용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 오늘은 치앙마이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 여행이 주는 피로감이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도 정보에 관한 이야기는 자제하도록 하죠. 정보나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모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도 할 수 있으니까요. 누구 첫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으신 분 있으신가요?"

연마담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가브리엘이 손을 들었다. 굳이 손들고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주의를 듣고 그가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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