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아저씨와의 모험
이사할 때 1층에 정수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빈 물통을 가지고 물을 뜨러 갔는데 정수기는 대체 어딨나?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다가오더니 한명은 문을 열어주고, 한명은 창밖에서 뭐가 필요하냐 묻는다.
물통을 들어 보이니 정수기는 바깥에 있다고 한다.
신발을 가져오지 않아 잠깐 올라갔다 오겠다고 하니, 톰 아저씨가 물통을 달라고 한다.
다른 한 아저씨는 신발 없어도 괜찮으니 슬리퍼 신고 나오라고 한다.
야호! 며칠 전 한국인 골퍼들이 담배 피다가 걸려서 퇴실 당했다고 하던데 나는 슬리퍼 신고 밖에 나왔다!
주말이라고 집에 있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톰아저씨가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을 아냐고 물어본다.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저번주는 몸살 나서 종일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있었고 이번주는 몸살기와 싸우면서 이사 후 끝나지 않은 집 정리를 마저 하느라 종일 집에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올 때 썽태우 잡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는 지레 겁먹어서......
그래도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으니 다음주쯤에는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톰아저씨가 다음주에 같이 가주겠다고 한다. 고맙다고 했더니 시간을 확인한 후 지금도 괜찮으면 가자고 해서 계획에 없던 선데이 마켓 나들이가 시작됐다.
종일 세수도 안하고 청소하느라 땀까지 흘렸는데 그냥 옷만 갈아입고 냅다 뛰어 내려갔다.
사람 좋은 톰아저씨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갈색의 가죽 가방을 짧게 메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참, 톰아저씨는 이 맨션의 주인 되시는 분이다.
산티탐에서 걸어서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의 타패 게이트 근처에 있다기에 엄청나게 멀 줄 알았는데 차를 타니 10분도 달리지 않는다.
늘 갈래 길에서 오른쪽을 선택해 센탄과 님만해민 쪽으로만 다녔었는데 덕분에 오늘은 왼쪽, 올드시티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차를 타고!
올드시티를 둘러싸고 있는 해자를 보고 태국말로 뭐라고 하냐 물으니 '못'이라고 한다. 'mot'라고 발음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못'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둘 다 물을 말하는 거니 우연치고 신기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해도 한국말 '못'을 설명할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다음에 꼭 말해줘야지 잘 기억해둔다.
산티탐 동네는 마사지 배우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그렇게 외국인을 볼 기회가 없는데 타패에는 정말로 외국인이 많았다.
우리는 차에 앉아 열심히 수다를 떨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는데 아들이 호주에서 유학중이라서 호주에 대해 많이 알고 싶다고 말하는 톰아저씨에게 정보를 줄 수 없어 미안했다. 어쩌랴, 나는 동남아가 좋은걸.
맨션에 한국 사람이 오는 횟수가 늘어나자, 톰의 가족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톰아저씨의 부인과 아들은 한국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은 너무나도 좋은 나라였지만, 그들이 쓴 돈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에 다녀온 톰아저씨의 부인은 한국은 정말 추운 나라라며 겨울이 10개월이나 된다고 말하더란다.
우리가 가장 쾌적하게 여기는 봄과 가을까지 몽땅 다 겨울의 범주로 넣는 더운 나라에서 온 이방인.
교육으로는 메울 수 없는 오로지 '다름'에서 오는 그런 차이를 느끼게 되는 계기가 간혹 있는데, 그런 시야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좋다. 너무나도 흥미롭다.
부인에게 얻은 정보로 한국이 겨울의 나라라고 알고 있는 톰아저씨에게 콘타이(태국사람)의 기준에서는 그럴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더불어, 나도 처음 방콕에 갔을 때는 1월이라 한국이 가장 추운 계절인데 태국에 오니 햇볕이 쨍쨍해서 너무 행복했는데 다음해 겨울에는 방콕에 있었는데도 밤에 잘때 너무 추웠다고 이야기를 해서 톰아저씨를 웃게 만들었다.
우리의 유쾌한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졌지만, 문제는, 주차에 있었다. 믿기 어렵지만 톰아저씨는 불법주차는 하지 않나보다.
불법주차(갓길주차)가 곧 주차라고 알고 있는 나에게 타패의 거리는 온통 주차장이었는데, 톰아저씨에게는 주차장이 없는 거리로 보이나보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도로가 휑한데도 주차된 차가 없다. 그 많은 차들은 대체 어디에 주차를 하는 걸까? 결국 주차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우리는 탑스 마켓으로 가서 장을 봤다. 아직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감이 없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길이 나왔다 싶었을 때 즈음엔 이미 집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음주에는 썽태우를 타고 가서 구경하자고 말하는 톰아저씨.
대체 선데이 마켓을 눈으로만 훑고 돌아나온 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도 해주지 않고 웃는 얼굴로 잘자라고 이야기하는 톰아저씨.
잔뜩 기대하고 떠난 길을 한시간만에-그것도 주차장 때문에 돌아오게 된 것은 퍽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져있는 차에 앉아 가보고 싶었던 길을 드라이브 하며 내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내 영어가 조금만 더 능숙했더라면 좋으련만!
다음주에는 톰아저씨와 같이건 혼자건, 꼭 그 유명한 선데이 마켓 구경을 해야겠다.
2km나 되는 거리를 막아놓고 마켓이 열리는 거라는데, 코앞에서 그 설레는 시장의 향기만 맡고 돌아온 건 크나큰 자극이 되었다.
다음주 일요일아,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