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9) - 안하던 짓은 하는게 아냐

안하던 짓은 하는게 아냐

by 서화림



집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이제 이사 들어 온지 10일 남짓 되었는데, 그간 한 번도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처음에는 한 봉지 되면 어디다 버리는지 물어봐야지 했었는데, 지금은 커다란 한 봉지가 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일 유리창 청소하러 온다고 하던데 분명 그때 치워주겠지만 민망하다.


새벽에는 빨래를 했다.

1층에 내려가면 한번 돌리는데 30밧인 세탁기도 있고, 골목 근처에 한 벌당 세탁은 3밧 다림질포함 5밧인 집도 있다고 들었는데 예전 방콕에서 흰색 옷은 몇 번만 빨고 나면 누래져서 입지 못하던 것이 생각나 생수를 동원해가며 유난을 떨었다.

얇은 남방이 두벌, 면원피스가 한벌, 반바지가 한벌.


정말 보잘 것 없는 구성의 빨래이건만, 필사적으로 헹궈내야 했다.

끝없이 나오는 거품과 한 시간 여의 사투 끝에 빨래를 널었는데 꽉 짠다고 짰건만 물이 주르르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일바닥 위로 떨어진다. 베란다 빨래 걸이는 티셔츠 정도 걸어야 맞는 높이인지라 결국 모두 방안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방안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오늘 처음 입고 나갔던 흰색 반바지는 빨래를 마치고보니 너덜너덜 한쪽 바지의 단이 뜯어 졌다. 오히려 일을 키운 형국이다.


무거웠으되, 막상 열고 보니 정말 든 것이 없었던 나의 짐가방. 그 큰 가방을 무엇으로 채웠던 걸까 싶을 정도로 짐이 없다. 치앙마이는 방콕과는 달라 연중 세일을 하지도 않고 물건이 다양한 것도 아니라 집에서 입을 잠옷이라도 한벌 살라치면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살 수가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너무 비싸다. 쇼핑을 이유로 방콕엘 갔다와야할까 하는 고민까지 진지하게 해봤다. 어지간한 것들은 여기서 사면되니 필요 없다며 과감하게 옷을 다 빼버린 거였는데, 이제는 나갈 때마다 빈약한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여야한다. 후회합니다.


오늘도 비가 온다.

평소처럼 우르르 쏟아지고 모른 체하는 그런 비가 아니라 한국의 장마처럼 좀 많이 쏟아지다 좀 적게 쏟아지다 꽤 오래 시간을 끌고 있다. 비가 그치면 나가야지 했었던 것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비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좀 재미없다.


아직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카메라를 들고 왜 빗방울이 찍히지 않는 거냐며 툴툴거리다가 창문에 붙은 달팽이를 봤다. 이 녀석들 분명 처음 내가 이 집에 올 때는 없었는데 비가 많이 왔던 어느날엔가 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달팽이라고는 해도 등에 얹고 다니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달팽이들처럼 열심히 움직이지도 않는다. 느려도 꾸준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달팽이의 최대 매력인데 이 녀석들은 배도 고프지 않은 건지 먹을 것도 없는 창문에 달라붙어 일주일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일 유리창 청소를 하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맞은편 무반(단독주택)의 넓은 정원으로 던져주면 좋을 텐데.

독실한 불교신자인 이네들은 어지간해선 작은 생물도 해하기를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차마 내 손으로 옮겨줄 용기는 나지가 않아 도움도 되지 않을 걱정만 한다.


종일 비가 올 것만 같더니.

아, 비가 그쳤다.

늦은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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