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11-2) - 두번째 수다모임

10월 1일 금요일 오전 11시 01분 - 두번째 수다모임(2)

by 서화림

"가브리엘님의 마지막 연애는 언제였어요? 아줌마 된지 오래돼서 선남선녀 연애사 들으면서 대리만족 하고 싶어라."

난처한 듯 따라 웃고 있던 가브리엘에게 연마담이 물었다.


"헤어진지 6개월쯤 지났습니다. 뭐 어쩌면 이번 여행은 이별여행인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나, 로맨틱 하셔라. 나를 버리고 간 나쁜 여자, 욕도 안하고 혼자서 이별여행까지 오시다니. 얘기 좀 들려주세요."

"미국에 파견 갔다가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뭐, 그냥 그랬어요. 쥐 잡아 먹은 듯 입술도 빨갛게 칠한 젋은 여자가 꼬장꼬장하고 깐깐하고. 뭐 좀 물어볼랬는데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라면서 얼마나 쌀쌀맞던지. 오기가 생겨서 그 다음부터 그 여자 만나면 누가 보건말건 진짜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니까 사람들이 그 여자 좋아하냐 물어 보길래 대답 안하고 웃기만 했습니다. 동네가 좁으니까 금방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한날 그 여자가 불러서 나가보니까 한참을 앞장서서 걸어요. 쭐레쭐레 따라갔더니 사람들 안 보이는 데쯤 서서는 야 이 새끼야 하면서 욕을 시작하는데 어휴. 살다가 여자한테 들을 욕은 그날 다 들은 거 같습니다. 서울말을 감쪽같이 써서 몰랐는데 경상도 사람이더라고요. 욕을 얼마나 찰 지게 하는지."

"와, 드라마 같아요."

엘리가 감탄사를 뱉었다.


"그런데 웃기게 그날 그러고 나서 우리가 급격히 친해졌단 말이죠. 얌전한척 살다가 바닥을 다 보여서 그런가. 심심하면 전화 와서 어디 가자 그러고. 그런데 저는 차가 없었거든요. 미국은 땅덩이가 커서 차 없으면 못 다니잖아요. 제가 거절하면 자기가 태우러 온다 그러고. 제가 운전을 거기서 배웠어요. 그 여자한테 쌍욕 먹으면서. 장롱면허였는데 몇 번 태워주더니 남자새끼가 번번이 얻어 탄다고 욕을 해서요. 6개월쯤 지나서 제가 물어봤어요. 우리 연애하는 거냐고. 미친 새끼라고 그러더라고요. 너랑 나랑 이렇게 붙어다닌 게 반년이 다됐는데 안 사귀는 거면 뭐냐니 대답을 안 해요. 그날 털어놓는데 그 여자가 파혼 경험이 있더라고요. 그러고는 이제 다시는 누구 안 만난다고 꽁꽁 싸매고 살았대요. 저는 황당한 거죠. 지가 먼저 찔러놓고선 물어보니 펄쩍 뛰고. 그래서 그 얘기 듣고 말했어요. 너 그런 과거랑 상관없이 남자 가슴에 불 지펴 놓고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라 하면 나는 이제 더 너 볼 일 없다. 그 드센 애가 그 말을 듣자마자 얼마나 우는지......."

"그렇게 사랑을 시작하고선 왜 헤어진거예요?"

앞으로 바짝 다가앉아 묻는 엘리의 어깨가 무릎선보다 더 튀어나와 걸터앉은 의자에서 넘어질 것 같다.


"얼마 뒤에 제가 한국에 가게 됐어요. 그 여자도 저 따라서 한국에 왔고요. 한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죠. 그런데 그 여자 집에서 저를 싫어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여자 집이 어마어마하게 잘 살았더라고요. 우리가 앵커리지 있을 때 그 여자가 돈을 많이 썼어요. 집도 좋은데 살고 차도 좋았고요.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우리가 늘 호화판으로 지내지는 않았어요. 제 식대로 고생하는 여행도 곧잘 따라와서 즐기더라고요. 좀 사는 집 딸 같다 생각은 했는데 지가 벌어 논 돈도 있는가보다 했죠. 근데 가서 보니까 집이 무슨 대궐이에요. 아무리 지방이라도 보통 부자가 아니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집에서 내가 싫대요.

딱 잘라서 이미 마음고생 한번 한 애를 또 고생시킬 수는 없다 하는데 사랑밥 먹고 사랑옷 입히면서 사랑타령으로 살겠다고 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자리에서 일어서니 애가 따라 일어서요. 이미 짐을 다 싸놨더라고요. 둘이서 원룸 얻어놓고 살면서 더럽게 싸우고 더럽게 행복했어요. 이게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애가 눈이 돌아가면 보이는 게 없더라고요. 그럴 때면 속수무책이었어요. 겁도 났고요.

그러면 저는 도망갔어요. 엄마 집으로. 이틀이나 사흘쯤 지나 조용해지면 들어가고 그랬거든요. 어느 날 또 그렇게 싸웠는데 그때는 저도 화가 많이 났었어요. 서로 전화도 안하고 일주일을 버티다 집에 들어갔는데 조용하더라고요. 자기 짐을 다 빼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한 번도 얼굴 못 봤어요. 전화하고 찾아가니 신고하더라고요. 그 앞에서 밤을 샌 적도 하루 이틀이 아닌데 한번을 마주쳐지지도 않더라고요. 혹시 어디 쪽문이라도 있나 싶어서 찾아보기까지 했다니까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남자가 받았어요. 황급히 그 여자가 받더니 욕을 욕을 하면서 자기 결혼했다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더라고요.

나는 그 6개월이 지옥이었는데 지는 그 사이에 결혼을 한 거예요. 우리 마지막 싸운 날 웨딩사진도 찍었고 그 다음날 구청가서 혼인신고도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저를 두고 도망을 가요. 혼자 결혼사진 찾아 나오는데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아...... 진짜 너무했다. 그 분은 예전에 그 남자에게 돌아간 거예요?"

엘리가 탄식했다.


“모르겠어요. 그런 거 알아볼 생각도 안 해봤어요.”

"가브리엘님은 그 후 바로 떠나 치앙마이로 오신 거군요?"

연마담이 물었다.

"바로는 아니고요. 헤어졌다는건 제가 헤어진 걸 받아들인 게 그 여자 남편이랑 통화했던 날이라서 그때부터 6개월이 지났다는 거예요. 떠나려면 돈도 필요했고요."

"그럼 실제로는 1년이나 지난 일이네요."

엘리가 말했다.

"지금 마음은 어떠세요?"

은하가 물었다.

"지금은 뭐...... 잘 살겠지만 잘 살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가브리엘님이 이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가브리엘님 생각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 같으세요?"

연마담이 물었다.

"다 제가 돈이 없어 벌어진 일이지요. 내가 능력 없어 생긴 일이라 나한테 화도 나고요. 생각하면 전부 다 기분 더러워요."


"결과적으로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워 도망친 거라 볼 수도 있지만 가족들이 반대할 걸 대비해 짐까지 싸놨던 용기 있는 여자 친구가 그렇게 돌아선 것에는 그 여자 친구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여자로서도, 상담사로서도."

그럴 수 있지. 순간 여자 동지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이 그겁니다!"

연마담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브리엘이 소리를 질렀다.


"앞으로 연애를 하고 싶다 그런 거보다 사실은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돈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고 다른 문제가 있었다면 이유를 알아야겠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가브리엘의 목표가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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