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탄닌 시장
좋아하는 국숫집에 들러 국수를 먹고 탄닌시장에 가야겠다. 오늘의 목표는 누구에게도 길을 묻지 않고 스스로 찾아가기.
단골 국숫집이 며칠 문을 일찍 닫는다 싶었더니 그동안 내부 수리를 하는 중인가보다. 한결 깨끗해진 가게에 앉아있던 총각은 난처한 듯 웃으며 열심히 나에게 설명해주었는데 어쨌든 지금은 먹을 수 없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인사하며 돌아선다.
처음 방문때는 햇볕 쨍쨍 나온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라 더 힘들게 느껴졌었던가 보다. 그때는 굉장히 멀게 느껴졌었는데 오늘은 조금 걷다보니 슈퍼주니어가 보인다. 슈퍼주니어의 얼굴이 크게 걸려있는 건물을 발견한거라면 탄닌 시장 입구를 잘 찾아온 것이다. 비가 많이 오다보니, 지나가는 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가면서 튀기는 물에 봉변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걸어야 한다.
저번 방문과 이번 방문의 공통점이라 함은 공복감.
오늘은 용기를 내어 식당가로 들어갔다.
각기 다른 종류의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굉장히 많았는데도 까막눈에다 음식에 대한 정보조차 없는 나는 멀뚱히 서서 사람들만 쳐다보고 있다.
너무나도 귀여운 아가씨가 다가와 내 손에 메뉴를 쥐어주고 사라지자 비로소 자리에 앉아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영어로 적혀 있기는 하지만 태국말 이름을 영어로 옮겨적은 것도 아니고 음식설명을 풀어 적어놓은 것에 불과해 볼수록 뭘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뭐가 맛있냐는 말이 태국어로 뭐더라? 고민하는 내게 다가온 아가씨를 붙들고 용감하고 무식하게 입을 떼려는데 그녀는 메뉴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태국어 표기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메뉴의 첫 머리에는 파카파오 무쌉(다진 돼지고기를 야채와 볶은 요리)이 적혀있었는데 태국어 이름을 들으니 비로소 머리가 좀 돌아가기 시작해서 뿌(게)나 꿍(새우)이 들어간건 없냐고 물으니 파카파오 꿍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거 달라고 이야기하고나니 주문을 해치운 나도 기쁘고 주문을 받아낸 아가씨도 기쁘다. 마주보며 씨익 웃고 아가씨는 큰 소리로 "파카파오꿍!!" 외친다.
혼자가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 휘둘러가며 그녀와 대화를 하려했을까. 아마도 일행과 머리를 맞대고 적당히 메뉴를 찾기 위해 애를 썼겠지. 혼자라는 것은, 때로 내가 아닌 다른 무엇과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는 것 같다.
바다가 없는 치앙마이인데, 의외로 해산물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길거리에도 오징어나 문어다리를 구워 파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금방 조리해온 파카파오꿍에 들어있는 새우도 생물이었던듯 씹히는 맛이 좋다.
한그릇 후딱 먹고 일어나 시장을 한바퀴 돌아본다.
탄닌 로드에 위치해 탄닌 시장인 것 같은데, 아직 와로롯 시장에 가보진 않았지만 탄닌 시장의 경우, 시장 자체 규모는 그렇게 큰 것 같지 않다. 동네 시장의 느낌이다. 옷이나 잡화를 파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눈길을 끌 정도는 아니었고 식당이나 과일가게가 마음에 든다.
그저 기분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동네 가판에서 파는 같은 꼬치도 왠지 시장 가판대에서 만나게 되면 더 맛나 보인다. 뭐든 자꾸자꾸 욕심이 생겨서 사모으고 싶다.
라임 두개 5밧, 쥐똥고추 잔뜩 놓고 10밧에 파는 것을 보면 매력적이다. 할줄 몰라도 재료를 사다 해먹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수산물 코너에는 꼬막도 있다- 우리나라 것처럼 알이 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을만하다.
삶은 것으로 추정되는 계란 무더기가 40밧. 50밧이라 적힌건 오리알일까? 어쨌건 혼자 먹기엔 너무 많다.
성격 괄괄한 주인아주머니가 계시는 반찬가게에는 도전 거리가 넘쳐난다.
오늘은 문을 연 집이 많아 저번에 비해 볼거리와 먹거리가 더 풍성했는데, 열심히 구경하던 중 훈제돼지를 발견했다. 처음에 족발인 줄 알고 산 거였는데 50밧이라고 적어놓은 건 양이 많아서 30밧어치 줄 수 있냐고 물으니 얼른 담아준다. 집에 와서 저녁으로 먹었는데 물컹한 돼지비계는 먹기가 힘들어 몽땅 다 떼어내고 먹었더니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며칠 전 백화점에서 샀던 개당 60밧이나 하는 망고 하나가 냉장고에서 죽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깎아 찹쌀밥과 함께 먹으니 소박해도 고기도 있고, 과일도 있는 한끼를 먹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하교 시간과 맞물려 길에 학생들이 아주 많이 보였는데, 걷다 보니 앞에 학교가 나왔다. 유난히 손짓발짓 대화가 많다 싶었는데 특수학교였다. 학교 앞에 포진해 있는 노점상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먹으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 손으로 대화를 한다.
나는 상인들이 비장애인이라는 것을 안다.
시장을 향해 가던 길, 하교 시간에 맞춰 나온 상인들이 장사준비를 하며 자기들끼리 웃으며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 그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사라졌다.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은가 싶을 정도로 몰려 나오는 학생들로 길이 복잡했지만-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친구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학생도 혼자 걷는 학생도 사람이 많았어도 길에는 묘한 고요가 흘렀다. 마치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음소거를 누른 것 같은.
장사를 오래 하다보니 익히게 되었을 수도 있고 장사를 위해 익히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좀 수월하고 덜 수월하고의 문제이지 굳이 수화를 익힐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며 반대편 손으로 바삐 말을 거는 상인의 손끝에서 빛이 난다.
아이쿠,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쯤 맞아도 상관 없지만 방수가 되지 않은 가방에 든 카메라가 젖으면 큰일이니 달리기 시작한다.
오늘의 시장 방문, 만족도 백퍼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