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14) - 구시가에 진입하다

알아야 흥정을 하지 - 구시가에 진입하다

by 서화림

모두들 맛있다고 추천을 해줬는데 한번 가서 실패했다고 다신 가지 않겠다 다짐한 일식집.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는데 한 일본인 아저씨가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있는걸 봤다.

벼르고. 잊어버리고. 또 벼르다 드디어 방문했던 날.

도시락은 120밧과 150밧이 있는데 차이가 뭐냐 물어봐도 못 알아듣고, 대답을 해준다 해도 못 알아들으니 깨끗하게 포기, 조금이라도 싼 걸 먹자 싶어 120밧짜리를 먹었는데 꽤 입에 맞았다.


보통, 뭔가 먹으러 가서 그런 식으로 가격 차가 있는 경우는 음식양의 적고 많음의 차이만 아니라면 비싼 걸 시키는 편인데 한 번의 실패 후 재도전인지라 소심하게 120밧짜리를 시켰다 성공을 하고 나니 150밧짜린 대체 얼마나 잘 나올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여, 가랑비가 내리는 오늘 출동!


분명 아무거나 갖다 놓은 것 같은데 묘하게 구색이 맞는 제각각의 테이블 모두 마음에 들지만, 그중에서 재봉틀을 개조해서 만든 테이블이 가장 마음에 들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손님 없는 오후 세시의 음식점에 앉아 먹는 도시락. 야심차게 불러버린 '벤또 150밧!'은 다만 구워 나오는 생선의 종류와 연어회 한점 더(120밧은 두점, 150밧은 세점), 단무지 세 개 추가. 연어구이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시도 발라져 있지 않고, 육질도 입에 잘 맞지 않아 다음부터는 차라리 싼 걸 먹기로 결심한다.

오늘만큼은 센탄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만큼, 밥 먹는 동안 다소 굵어진 빗방울도 무시하고 용감하게 걷기 시작한다. 해자의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인상적인 것이, 발아래 나즈막한 곳에 자리한 물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편케 할 수가 없다는 것. 해자는 성을 만들면서 그 벽을 따라 도랑을 파 적이 침입하기 어렵게 하려는 역할을 하던 것이라 말하자면 전쟁 도구인데. 그런 것을 보며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들건만 볼수록 마음이 편한 걸 어쩌면 좋으랴. 혹자는 똥물이라고 부르는 해자의 탁한 흙탕물도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걷는 평화로운 시간.


이미 사라져버린 성벽 덕에 구시가로 접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따라 걷기만 하면 되던 해자를 벗어나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마침 시선을 잡아챈 런던하우스의 팻말. 영어학원을 찾던 나에게 잉글리쉬 스쿨이라고 적힌 런던하우스의 팻말은 자연스레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그 거리는 원래부터 구시가-old city라고 불려졌을 거라 믿어질 정도로 구시가의 느낌이 물씬 났고 그래서 부담 없이 두리번거릴 수도 있었다. 학생들이 잔뜩 오가는 학원 앞에 서서 여기서 뭘 배우는지도 물어보고, 수줍음이 많은 그 남학생의 얘기로 미루어 보면 공무원 학원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군인이 되기 위한 입시학원 정도로 보면 되겠다. 경찰이나 군인이 되는 것이 출세하는 것이라고 얘기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입시학원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 다니면서 제법 큰 규모의 학원을 서너군데는 더 봤으니 정말 군인이 되길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기는 한가 보다.


이렇게 많은 학교에 학생이 줄지 않고 유지가 될까 싶을 정도로 학교가 많이 늘어서 있던 그 골목에서 발견한 런던하우스는 아쉽게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의 개념은 아닌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의 키에 맞는 아담한 수영장과 놀이터를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 길. 어쩌면 나에게 맞는 영어학원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시가의 그 많은 골목골목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길.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지만 때로는 바삐 길을 가는 서양인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걷고 또 때로는 차가 많은 길을 걷는다. 그렇게 걷다 운 좋게 발견한 타패문으로의 이정표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걷다가 너무 열심히 걸어 그만 이정표가 제시한 것보다 더 멀리 걸어서 또 길을 잃고. 그래도 또 걷고 사람을 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을 때, 모두들 한가한 거리에서 홀로 바삐 걷던 아주머니의 뒤를 쫓아가 보았다. 그녀는 시암은행 ATM에서 돈을 뽑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돈을 쓰러 바삐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학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비에 젖어 한눈에도 미끄러워 보이는 운동장을 맨발로 달리는 학생들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열심히 뛰면 뛸수록 넘어지는 횟수가 잦았다. 누군가 넘어질 때마다 큰 웃음소리, 놀리는 말소리, 넘어진 친구를 향해 뻗는 손을 보았다. 큰 나무 아래 벤치에서는 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책을 읽고 있는 소녀를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녀가 그토록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옆에 앉아 무슨 책을 읽는 중인지 물어봤을 것이다.


가는 길이 같았던지 한참을 같은 방향으로 걸었던 외국인도 있었다. 끈이 떨어진 조리를 한손에 들고 한 발은 맨발인 채로 걷던 그 청년이 결코 서두르지 않던 걸음으로 우아하게 걸어 도착한 곳은 신발가게였다. 멀찍이서부터 그의 모습을 쳐다보던 직원들이 웃음으로 그를 맞아주었다. 비를 맞으면 안될 텐데 아주 비싸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찍고 있던 관광객이 담고 싶었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그 근처를 바라보며 서성여보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순간이었다.


우연히 지나치던 카페에서 한국말로 된 치앙마이 브로셔를 발견하고 하나를 집어왔다. 목적 없이 걷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궁금할 때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지도 한 장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리는 비에 한 손에 카메라를,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그것을 펼쳐본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대충 가방에 찔러넣고 또다시 걷는 길.


해자를 다시 만나자 어쨌든 출발지의 반대쪽 면까지는 도착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씨에 이 정도면 괜찮았다 생각하며 썽태우를 잡는데 아무도 세워주질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썽태우 운이 좀 없는가 보다.

비가 온다고 샌들을 신고 나왔더니 발이 아프다. 그저 적당한 곳이 있으면 발마사지나 30분 받고 다시 일어서 걷고 싶은데 이 동네 발마사지는 한 시간 200밧이 기본인가보다. 50밧이면 1500원인데 그 차이가 그렇게 크고 아깝게 느껴진다. 좀 더 가면 나오겠지, 좀 더 가면 나오겠지 하다 보니 아예 마사지가게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여러대를 보낸 끝에 만난 다른 기사는 40밧에 가자고 한다. 30밧에 가자고 하니 거리가 멀다고 안된다고 한다. 차가 막힐 시간이 됐는데 여기서 놓치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알았다 말하고 올라타는데 너무 가깝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거다.


몰라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좀 쓰리지만, 덕분에 나는 내가 서 있던 위치도 알게 됐고, 무엇보다 그 많은 썽태우 기사 모두 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가겠다는 사람을 만나 다행한 일이었다 싶었다.


다음에는 구역을 나눠서 좀 더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비가 오더라도 운동화를 신고 걸어야지.

지도가 생겨서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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