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15-2) - 세 번째 수다모임

10월 8일 금요일 오전 10시 58분 세 번째 수다모임(2)

by 서화림

“근황 토크는 아까 대충 했으니 오늘은 명상에 관한 얘기를 나눠볼까 해요. 명상하는 거 어떠세요?” 짧은 명상이 끝나고 연마담이 입을 열었다.


“저는 아까 개똥이님 얘기가 마저 듣고 싶어서 집중이 잘 안 됐어요.”

엘리가 말했다.

“저는 눈 감고 있는 시간이 참 편하다 싶었어요. 주부가 어딜 가서 눈을 감고 이렇게 멍하게 있을 공간이 있겠어요?”

은하가 말했다.

“저는 지난번부터도 명상 시간이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든달까요? 게다가 오늘은 말실수는 아닌데 뭔가 시작부터 이목을 끌게 되어서 부담감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내가 말했다.


“그저 눈을 감는 행위에 불과한데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누군가에게는 조급함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요? 오늘은 시작 전에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고 나니 거기에 관심이 많이 쏠려서 다소 산만한 분위기였어요. 그럴 수 있어요. 그 와중에 은하님은 마음의 평화를 찾으셨다니 저는 기쁜 마음도 드네요. 들으셨다시피 은하님과 엘리님은 가족과 다투고 시무룩하게 오셨대요. 개똥이님은 한주 어떻게 지내고 오셨어요?”

“저는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구경도 하고 또 마음 안 내킬 때는 며칠씩 집에 콕 박혀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좀 충동적인지 정해진 패턴이라곤 밤낮이 바뀐 거 정도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나마도 오늘같이 일찍 나와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또 내 맘대로 바꿔버리니 패턴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개똥이님, 남편분하고 얘기 계속해주시면 안 돼요?”

엘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왜인지 그녀는 부쩍 몸이 달아 보였다.

“그래요. 저도 개똥이님 이야기 듣고 싶어요.”

은하도 한마디를 보탠다. 나는 은하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막 거창해야 할 것 같고 좀 부담스럽네요. 음, 결혼생활이 제 생각과 달랐어요. 힘들었어요. 아니, 어쩌면 결혼을 하게 된 것부터 제 생각과 달랐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막 사랑이 샘솟듯 솟아나는 그런 만남과 결혼, 결혼생활의 유지를 꿈꿨었거든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그게, 그게 아니더라고요.

남편이 사랑보다는 희생과 책임감으로 저를 선택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들었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고부간의 갈등도 버라이어티하게 있었어요. 늘 내 편일 줄 알았던 남편도 그 순간엔 남의 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요.

신혼 땐 두 사람의 개성을 조율하는 일만도 힘든 일이잖아요. 그런데 옆에서 막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하니 도저히 버티질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잘 쓰던 말인데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양 사방도 다 막혀 길이 없다고요. 툭하면 싸우고 이혼하자고 그랬어요. 남편은 절대 안 된다며 그런 저를 붙잡았고요.

그러다가 해외발령 날 기회가 생겼는데 너무 가고 싶어 하는 저 때문에 남편이 자원하다시피 해서 베트남의 오지로 해외발령을 받아냈어요. 한국 아니면 어디라도 같이 갈 수 있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거기가 너무 오지라서 사람 사는 동네까지 꽤 멀더라고요. 베트남 치안은 믿기도 어렵다 그러면서 남편은 저의 베트남행을 반대했어요. 그래서 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어찌 됐건 한국에 있는 건 싫었거든요. 저 때문에 발령을 냈는데 제가 한국에 남는다는 것도 말 안되는 소리고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애매한 분위기였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잘 알아차리게 됐다. 많이 삭제하고 들려주긴 했지만 치앙마이에 와서 스치며 만난 사람 몇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때 봤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이다.

“별거(別居)라고 이야기하면 거창하지만 또 별거가 아닌 건 아니고요. 이 기간 동안 저는 그 남자와의 결혼을 유지할지 말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려고 하고 있어요. 일단 가장 큰 고민은 남편 외적인 부분에서 들어오는, 그러니까 시부모님과의 갈등을 남편과 떼놓고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남편은 본인이 선택해서 태어난 부모가 아닌데 자기 부모 때문에 본인을 버리고 가면 자기가 너무 가엾다는 입장이거든요. 저도 어느 만큼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요.”

설명을 잘 해야 한다, 혹은 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을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굳이 필요 없다 싶은 말을 자세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 큰 고민을 안고 계시면서 개똥이님은 왜 그 부분을 상담 목표로 정하지 않으신 거예요?”

은하가 물어왔다.

“글쎄요. 이건 제가 답을 알겠거든요. 아니, 제가 판단하고 답을 내려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요. 게다가 누구하고 나누고 싶지도 않고 나눈다고 가벼워지지도 않더라고요. 아까 은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잘 사는 친구 앞에서 내 힘든 얘기 해봐야 더 비참해지는 기분...... 저도 그 기분 알아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 타인의 시선이나 공감을 끼워 넣고 싶지 않아요. 오롯이 저의 시선과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묵묵히 밀고 나가고 싶어요. 만약 제가 시부모님의 패악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심을 한다면 그때부터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부모님 문제로는 남편을 들들 볶고 싶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힘들다 하소연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네 못 사네 나를 놔달라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고요.

그런 판단은 스스로 내려야 앞으로를 살아가는데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반면 제가 상담 목표로 잡은 제 부모님과의 문제는 타인의 시선이나 공감이 필요해요. 더 넓은 시야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은하님은 남편분과 왜 싸우셨어요? 은하님의 목표는 남편분과 관련이 있나 보네요?”


“아우, 나 또 생각하니 빡치네. 앗, 죄송합니다. 제가 보기보다 입이 험해요. 윤마담님과 엘리님에게는 잠깐 얘기를 해드렸는데 저희 여기, 이혼 여행 왔거든요. 무슨 말이냐면, 어느 날 갑자기 저희 남편이 저에게 이혼을 요구했어요. 도저히 저 같은 목석이랑은 못 살겠다는 거죠. 처음에는 이 남자가 미쳤나 싶어가지고 같이 싸우기도 하고 난리 아니었거든요. 집안 조용할 날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 또 집에 안 들어와요. 어떤 년이라도 생겼나 싶었는데 회사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고 있더라고요. 집보단 차라리 거기가 낫다면서.

내 드러워서 안 산다고 진짜 딱 이혼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러고 보니 애가 둘이잖아요. 둘째는 이렇게 이혼하면 아빠 얼굴 기억도 못 할 나이인데 누구 좋자고 이혼을 해줘요? 그래서 이혼 못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회사를 때려치고 자기 혼자 떠나겠대요. 안식년이 필요하대요. 그래서 좋다, 그렇게 다니기 싫으면 때려치워라. 대신에 너 혼자는 못 간다. 우리 다 데리고 가라.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이 치앙마이에 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실 따라오겠다던 건 너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건 못 봐준다는 오기였고 돌아가면 이혼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혼 여행이라고 불러요.”

별거. 이혼. 단지 수다 모임이었는데 어쩐지 이 모임, 심상치가 않다.


“그렇게 와서 그래도 처음에는 조용했어요. 서로 정신없었으니까요. 저도 치앙마이로 간다는 통보만 받았지 머리 맞대고 핑크빛 미래를 같이 설계할 사이도 아니잖아요?

집은 어떻게 해야할지 차는 애들 있으니까 꼭 필요한데 사야 하는지 렌트 할 수 있을지. 차 보험도 어떻게 가입하는지도 알아둬야하고요. 큰애 유치원도 알아봐야 하는데 여긴 뭐 워낙 외국인이 많으니까 선택지도 엄청 다양하더라고요. 좋은데 보내면 좋은데 가격도 천차만별이니까 이거 저것 다 따지고 상담도 다 가봐야 하고요. 생판 모르는 데 와서 발 동동 구르고 뛰어다니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도움이 안 돼요. 애 아빠 맞는가 싶을 정도예요. 그나마 싼 값에 매반(가정부)을 쓸 수 있으니 망정이니 안 그랬으면 진짜 돌았을지도 몰라요. 매반 만세예요. 여태 없이 어찌 살았는지 몰라 진짜.”

차분할 줄 알았던 은하가 두서없는 말을 쏟아냈다. 아마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던 말이겠지.


“그래서, 어제는 왜 싸웠어요?”

동네 아줌마 같은 수더분한 태도로 연마담이 말을 걸어왔다.

“그러니까요. 조용하다 싶더니 어제 또 이혼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것도 나는 기억 하나도 안 나는 옛날얘기를 들춰가면서.”

“옛날이야기 뭐요?”


“결혼할 때 집 구하면서 돈 없어서 서러웠던 이야기, 가뜩이나 서러운 자기를 내가 구박했다는 이야기. 결혼 초에 집들이 많이 한다고 싫은 내색 했다는 이야기 그런 거요. 아니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나는 기억도 안 나는구만. 이 인간이 치앙마이로 오면서 옛날 기억 떠올려서 잘살아야지가 아니라 옛날 서운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서 저를 볶아댔다니까요.”

“결혼할 때 돈이 없었어요? 자기 남편 변호사라며. 근데 돈이 없어?”

여전히 친근한 태도로 연마담이 말했다.


“그러니까 완전 빛 좋은 개살구였다니까요. 법대 아니고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 됐다는 얘긴 만나기 전에 들었죠. 나름 대형로펌 다니니 벌이도 좋다고 생각하고 선이 들어왔을거 아녜요? 저희 선봐서 결혼했거든요. 근데 결혼하고 보니 자기 집은 순 개털이에요. 개룡남이에요, 개룡남. 요즘 여자들 제일 피해야 한다는 개천에 난 용말이에요.

빚을 질 정도는 아니지만 자기들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인 거죠. 아들 결혼한다고 뭘 보태 줄 능력은 안 되는. 대학 졸업하고 자기 번 돈에다가 부모가 아들에 대한 마지막 투자라고 조금 보태 준걸로 로스쿨 나오니 이미 서른도 훌쩍 넘었잖아요. 그러고 결혼을 하는데 목돈이 어디 있어요. 저도 나이 들어서 늦게 결혼한 편인데 남자 직업은 또 변호사라 하니 주위에선 다들 되게 시집 잘 가는 줄 알았죠.

사실은 내가 번 돈까지 다 꼬라박아서 허름한 집 한 채 대출까지 끼고 사서 결혼하는 거였는데. 그러니 화가 안 나요? 속상해서 이말 저말 했죠. 근데 싸우면서 저보고 조건보고 결혼했다고 조건녀라는거예요. 지는 뭐 조건 안 보고 선 보겠다고 그랬겠어요? 애초에 선이 다 그런건데 왜 나보고만 조건녀라는거예요.”

“남편님이 조건녀라면서 사랑 타령을 하면 은하님은 뭐라고 반응을 하나요?”

연마담이 물었다.


“선이 다 그런 거 아니냐. 조건보고 맞는 사람들끼리 만났지만 그 조건이 다라면 아무 하고나 결혼했을 텐데 그건 아니지 않냐.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렇게 얘기하죠. 근데 수만 틀렸다 하면 그놈의 조건녀 이야기를 꺼내요. 그럼 또 싸움이 나고요. 그러면서 그놈의 사랑 타령을 해요.”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 타령하신다는 부분은 저하고 비슷하게 느껴지네요.”

내가 말했다.

“아이고 지겨워 이놈의 사랑 타령! 나이 사십이 다 되어서 결혼한지 몇 년이 됐는데 아직도 사랑 타령이야!”

장난스러운 태도로 은하가 소리쳤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까페 디짜이(15-1) - 세 번째 수다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