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15-3) - 세 번째 수다모임

10월 8일 금요일 오전 10시 58분 세 번째 수다모임(3)

by 서화림

“남자랑 여자랑 만나 결혼을 결심하는 과정 자체가 사랑이라는 화학작용 없이는 불가능하잖아요. 그 감정을 끝까지 끌고 가고 싶다는 바람이, 그래서 행복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바람이 어째서 지겨운게 될 수 있어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뱉었지만 나는 진지했다. 불과 삽십 분 전 나는 우리 부부의 관계에 있어 타인의 시각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듣다 보니 저 부부의 관계는 꼭 우리 부부의 관계를 역전시켜 놓은 것 같지 않은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냥 살면 살아지는 것을 사랑놀음 찾다가 불화가 생기고 있잖아요. 결혼생활이 연애랑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요? 그런거 찾으니 이혼이나 들먹이게 되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제가 그걸 좋게 볼 수가 있겠어요.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애 낳고 살면서 그게 말이 되는 태도예요?”

은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러니까요. 지금 관계에 있어서 불만족이 있잖아요. 그냥 살면 은하님이 만족, 사랑하고 살면 남편분이 만족. 남편분은 지금의 삶에, 그러니까 은하님만 만족하는 삶에 만족 못 하시니까 나도 만족하고 살고 싶다고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부부가 서로 아끼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게 부부 서로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렇게 하자고 요구하고 계시는 건데 왜 자기랑 반대 의견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싫어하시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사랑하고 살면 뭐가 나빠지는 거라도 있어요? 사랑 안 하고 살면 남편분은 불행하시다잖아요. 사랑 안 하고 살면 은하님은 행복하세요?”

내가 말했다. 은하가 입을 다물었다.


“얼핏 들으면 부부가 사랑하고 사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또 평생을 그렇게 연애하듯 산다 생각하면 또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듣고만 있던 엘리가 툭 내뱉었다.


“엘리님은 부모님과 왜 다퉜다 그랬지요?”

연마담이 물었다.

“네? 저요? 저는 은하님같은 그런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이야기 하려니까 좀 그런데요.”

“괜찮아요. 들려주세요.”

은하가 거들었다 .


“치앙마이와서 거의 한국에 전화를 안 했거든요. 그러다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 저는 여기서 하루하루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은데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늘 거기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한 번씩 통화를 하면 되게 멀게 느껴지더라고요. 어제도 그래요. 그냥 듣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이야기인데 제가 못 듣고 폭발 한 거예요.”

“무슨 얘기를 했길래요?”


“제가 언니가 있어요. 연년생이라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언니는 결혼을 일찍 했어요. 아니, 결혼이 아니더라도 제 삶은 언니 뒤를 쫓아다니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희 가족들은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혼자서는 제대로 못 살 거라고 믿는 것처럼요. 맨날 그렇게 언니처럼, 언니처럼 그래요.”

“그렇군요. 어제는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요?”


“언니처럼 빨리 결혼해야하지 않겠나. 언니처럼 빨리 안정을 찾아야지 않겠나. 너는 거기서 어쩌려고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예전 같으면 그냥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대답했을지도 모르는 대목에서 불쑥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언니 얘기 좀 그만하라고 짜증냈어요.”

“평소에도 언니와의 비교를 들으며 짜증을 내기도 했나요?”

“네. 제가 말발이 달려서 말대꾸를 못 해서 그렇지 싫은 내색은 끝내주게 잘하거든요.”

어딘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엘리가 대답하는걸 보며 가볍게 웃었다.


“오늘은 생각보다 상담 시간이 길어졌어요. 모두 시간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 진행을 하다보면 이런식으로 중요한, 그래서 끊을 수 없는 지점이 나오곤 한답니다. 오늘은 3회차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생각보다 진지한 이야기가 나와서 중간에 말 돌릴 틈도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많이 느낄거예요. 이것 좀 드시면서 흥분한 머리를 좀 쉬게 해주세요.”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다과를 내오며 연마담이 말을 이어갔다.


“오늘 수다모임에 참석하신 소감은 어떠셨나요? 돌아가며 한분씩 이야기를 해볼까요?”

“오, 저는 오늘 재미있었어요.”

엘리가 냉큼 말을 받았다.

“뭐예요, 자기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우리 이야기만 듣고. 엘리님 은근 깍쟁이 아니에요?”

은하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아니에요. 제가 말을 잘 못 해서 끼질 못한 거예요. 세분이 말씀을 워낙 잘 하시잖아요.”

“다음번에는 엘리님 말씀도 듣고 싶어요. 오늘 저희만 얘기 많이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는 듣는게 더 좋아요.”

나의 말에 엘리가 대답했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오기 전 상황을 대충 아시기는 하지만 와서는 말씀을 안 드려서 잘 지내는 줄 알고 계실 텐데. 거리가 멀어지니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 수도 없었는데 오늘 와서 털어놓고 욕도 좀 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은하가 말했다.


“와서 듣는 역할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남편과의 이야기로 처음부터 주목을 받게 되고 하니 너무 나선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했다.


“은하님, 개똥이님의 말씀에 마음 상하지 않으셨지요? 개똥이님은 은하님을 공격할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에요. 당장에 듣고 아플지도 모르지만 오늘 개똥이님의 질문은 은하님께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집단 상담의 순기능이라고 저는 보고요. 질문받은 부분에 대해 잘 생각해보시고 또 앞으로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잘 모르고 있던 여러분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우리가 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결국 가브리엘님이 오지 않으셨네요. 이건 제가 나중에 따로 전화를 해보도록 할게요. 가브리엘님께도 확실히 말씀을 드리겠지만, 불참하실 경우에는 하루 전에 미리 연락을 주세요. 나를 기다리는 다른 구성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책임감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수다 모임을 마치겠습니다. 돌아가시는 발걸음 가벼우시길,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신발 젖지 않으시기를 까페 디짜이에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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