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17) - 양잿물보다 맛있는 쏨땀

양잿물보다 맛있는 쏨땀

by 서화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한다. 오늘만큼은 꼭 선데이마켓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는데 너무 늦게 돌아오려니 차편이 없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밤길도 걱정되고. 그렇다고 일찍 나가려니 햇볕을 피해 다닐 자신이 없고. 마침 하늘을 보니 구름이 알맞게 낀 것이, 조금 일찍 나가도 될 것 같기도 하다.


많이 걸어야 하니 미리 마사지를 좀 받고 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막상 어딘가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니 괜스레 바빠진다. 부지런히 걸어가 밥을 먹고 센탄 맞은편에서 탄 썽태우.

"빠이 워킹 스트리트(워킹 스트리트 갑니다).“

"알라이나캅?(뭐라고요?)"

"선데이 마켓"

"알라이나?"

못알아듣는다.


"까이까이 타패, 딸랏(타패 근처. 시장.)"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서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태국어를 그래도 그는 알아들어 주는 것 같다.

"오, 빠뚜 타패(타패 문)......"

나는 그의 말을 딱 거기까지만 알아들었다.

설사 잘못 내려도 타패 근처에서 내려주면 어떻게든 찾아가지겠지 막연하게 생각한다.


집에서 나설 때의 하늘은 이 정도라면 만만하게 돌아다니겠다 싶은 정도였는데 밥을 먹고 나와서 보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날 정도로 높다. 문제는, 이 맑은 하늘의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괜스레 어색해 맞은편에 앉은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고 신호가 걸리자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스쿠터를 탄 아가씨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면 언제나 웃으며 받아주니 참으로 인사할 맛이 나는구나.


새로운 탑승객은 어린 학생이었는데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눈빛이 반짝반짝. 혐한이 걱정된다고들 해도 내가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드라마나 가수 이름 한둘쯤은 알고 있고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인 듯싶다.


어딜 가냐고 묻길래 선데이마켓에 간다고 하니 모른다. 아무래도 선데이마켓의 태국이름을 알아둬야 할 것 같다.

"일요일마다 장이 선다는데 타패 근처에 있고, 2km정도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서......"

장황한 설명이 여기까지 다다랐을 때 여학생이 외쳤다. "앗, 거기 여긴데!!!"

부랴부랴 벨을 눌러 썽태우를 세웠다. 좀 더 이야길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땡큐 땡큐, 씨유(see you) 인사하고 들어서는 선데이 마켓의 입구.


네 시를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장사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날이 뜨거워 관광객보다는 장사치들이 더 많이 보이는 시장의 입구에서 땡모반(수박 주스)을 산다. 두 사람이 나눠 먹어도 많을 것 같은 양의 땡모반이 20밧(600원)이라니 축복받을 곳이다. 정말 축복이 넘치는 곳인지 몇 미터 걷지 않아 가장 좋아하는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만났는데 이제 한 모금 마신 수박 주스를 쳐다보며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다. 한 손에 하나씩 들고 걸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욕심꾸러기의 말로는 배탈밖에 없을거라 생각하며 나중에 꼭 먹겠다 다짐한다.


톰 아저씨에게 전해 듣기로는 2km 정도 거리를 시장으로 만든 거라고 했는데 직선거리로만 2km가 아니었던가 보다. 메인도로를 사이에 두고 뻗은 골목골목마다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가판들. 너무 좋은데, 너무 덥다. 차가운 수박 주스를 연달아 들이켜도 화장실 생각만 간절할 뿐이지 해갈이 되질 않는다. 도착한 지 30분 만에 이미 지쳐버렸다. 해가 질 때까지 마사지라도 받을까 생각하는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도 않고 불과 며칠 전 근처에서 마사지 받았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질 않아 망설여진다. 나는 뒤끝 있고 소심한 여자니까. 그런 상태로 또 골목을 누비고 구경을 한다.


아로마 오일과 초를 사러 간 거였는데 예쁜 나무 비녀를 보니 꼭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게 되고, 누룽지처럼 밥을 구워서 파는 걸 보니 이것도 꼭 사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해가 지질 않는다. 급할 것 없는 상인들은 느긋한 손놀림으로 가판을 준비하고 하늘은 여전히 지글지글.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중심가를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걷게 된다. 저리로 가면 썽태우가 있을까?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장을 연다는 것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몇 킬로미터 이내에서 차를 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되니 그게 또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장 구경을 했던 것만큼을 걸으며 몇 번의 실패 끝에 가까스로 썽태우를 타고 싼티탐으로 돌아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허겁지겁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일곱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딱 시장 구경 가기 좋은데 지금이라도 가볼까 하던 고민은 순식간에 집으로 가야겠다고 기울어버린다.


늘 쳐다만 보고 지나다니던 해산물 가게에 들러 문어 다리를 사고, 구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쏨땀을 사러 간다. 말없이 자리를 뜨면 당황할 것 같은데 뭐라고 말해야 하나?

“요거(그릴에서 구워지고 있는 문어를 손가락으로 찍는다) 익는 동안 저기(쏨땀 가게를 가리킨다) 갔다 올게요.”

알아듣지 못할 나라의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아가씨는 마침내 내 말을 알아듣고 그러라며 웃는다.


쏟아지는 비를 작은 우산으로 막으며 쏨땀집으로 향한다. 힐끗 쳐다보던 쏨땀 아줌마는 고개를 휙 돌려 다시 한번 나를 보더니 "유(you)!!!"하고 외친다. 정말로 느낌표가 세 개 정도는 들어간 외침이라 손님들이 놀라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구요.


지난번 쏨땀을 사러 들렀을 때 짐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쏨땀은 내버려 두고 5밧짜리 찹쌀밥만 들고 간 걸 기억하나 보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아 차이, 차이(맞아요, 맞아) 맞장구를 쳐주니 잔소리가 한참 이어진다. 목소리 크고 터프한 아줌마인데, 그녀를 똑 닮은 딸에게는 얼마나 자상한 엄마인지 모른다.


스물 서넛살만 되어도 애가 하나씩은 있다는 얘길 들은 후라서일까? 불현듯 그녀의 나이가 생각만큼 많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보다 덩치가 큰 그녀의 아이는 생각보다 나이가 적을 테지. 그녀가 스물다섯에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나보다는 나이가 어리다는 말인데 그녀는 언제나 나를 동생 대하듯 하고 나는 언제나 그녀를 언니 대하듯 한다. 어쨌든 그녀는 산티탐 로드 쏨땀의 여왕이다. 나는 쏨땀의 여왕에게 잘 보이고 싶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 않는가? 하물며 공짜 쏨땀에 인심까지 담겨있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쏨땀에 고추를 세 개만 넣는다는 것과 게를 넣으면 질색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그녀는 묻지도 않고 나의 취향대로 쏨땀을 후루룩 만들어 포장해서 내민다. 준비해놓은 이십오밧을 꺼내니 한사코 필요 없다고 한다. 그녀는 그녀의 말로, 나는 나의 말로 "아니, 내가 두고 간 건데. 내 잘못인데. 받으세요" "아니야, 신경 쓸 거 없어 가서 맛있게 먹어" 나는 그녀의 말을 대충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녀는 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텐데. 그래도 마음이 오가면 대화는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오며 왠지 기쁜 마음이다.

창밖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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