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18) - 10바트의 비겁

10바트의 비겁

by 서화림

지난 비 온 날 이후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은 아직도 그날, 그 이후에 대해 어떤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해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 날도, 그 일도 모두 잊고 다만 좋지 않았던 감정만 마음속에 남을 테지만 감정만 남고 잊어버리는 기억이 나쁜 기억이라면 그것 또한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이미 반 이상은 지워버린 기억의 문을 사진에 의지해 다시 열게 되었다. 모든 것이 좋았던 그 날, 단 하나의 미묘한 어긋남. 그것이 모든 좋았던 기억을 삼키기 전에.


한 시간 정도는 걸을 각오를 했기에 가벼운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나선 길. 한참 기다려도 그치지 않았지만 점점점점 가늘어져 우산을 쓰기엔 거추장스럽고, 안 쓰기엔 머리나 어깨가 가볍게 젖는 빗속을 홀로 걷는 것은 또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깨끗하지 않아도 고여있는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름답던 그때.

진행 방향으로 걷는다면 또 차에 막혀 길을 건너지 못할 처지가 될 것이 뻔하니 오늘은 미리부터 길을 건너서 시작하기로 한다. 항상 걷는 그 길에서 차 두 대 다닐만한 길을 맞은편으로 한 번 건넌 것뿐인데도, 보이는 것이 새롭다.


빗물로 웅덩이를 이룬 그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차들을 보며 차를 피하자니 웅덩이에 운동화가 젖을 것이고, 웅덩이를 피하자니 차가 튀기는 물에 옷을 젖을 것이 걱정되던 그때. 장사준비를 하던 쌀국수집 아저씨가 다가오셔선 벽돌 두 장으로 징검다리를 놔주셨다. 그는 나를 위해 몸을 움직이면서도 웃고 있었다.


이리로 지나가라고 말해주는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거푸 인사를 하고도 선뜻 그것을 밟고 지나가지 못했던 것은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이런 걸 받아도 될까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사히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을 확인한 아저씨는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심지어 그런 친절은 그에게는 아무런 기억으로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익숙하지만, 나의 것은 아닌 땅을 밟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잊지 못할 고마운 기억으로 남게 된다. 며칠이 지나 물이 빠지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는 비가 오면 언제든 밟고 지나갈 곳이 있다는 의미로 생각되었다. 허리를 굽혀 젖은 벽돌을 집어 들던 아저씨의 손이 자꾸만 떠오른다.


젖지 않은 운동화를 신은 발을 움직여 해자로 접어든다. 이 비를 맞으며 제초작업을 한 걸까? 물에 젖은 풀을 잘랐을 때 맡을 수 있는 은은한 풀 비린내가 가득하던 그 공간마저 사실은 등 뒤에선 차가 쌩쌩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도심이 아닌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다.


밟지 마시오. 들어가지 마시오. 따위의 팻말은 없다. 중간중간엔 벤치까지 마련되어 있다. 들어가도 될까?하는 고민 따위도 필요 없다. 그 작은 잎사귀 하나하나 물방울 머금은 그 길을 걸어본다. 길이, 살아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센탄 에어포트(로빈산(Robinson)이라고도 한다)로 걷는 길은 힘들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차로를 건너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각자의 방향으로 바쁜 수없이 많은 차들은 걷는 자의 안위 따위는 생각해주지 않는다. 그저 운 좋게 차가 뜸한 타이밍을 기다려 잽싸게 몸을 움직이는 것만이 걷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


도착하자마자 식당을 찾아간다. 새로 생긴 샤브샤브집이다. 대기가 길어도 혼자 밥을 먹으니 바로 입장할 수 있다. 어느 구석이건 사람 한 명 앉을 자리는 있다더니. 저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껴서도 혼자인 나는 밥을 잘 먹는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그래서 흥미로웠고, 한시간 십오분의 정해진 식사시간은 나를 전투적으로 만들었다. 열정적으로 밥을 먹는 내 모습을 사랑했다.


지하의 푸드코트를 구경하고, 심지어 쌀국수 한 그릇을 포장까지 해서 돌아오는 것으로 나의 산책과 식사, 하루는 완벽히 끝나는 듯싶었다. 이미 어두워진 백화점 앞에서 썽태우를 탔다. 나의 행선지에 흔쾌히 타라고 말하던 썽태우 기사는 첫 번째 손님이 내리자 도로에 차를 세웠다.


잔뜩 인상을 쓰면서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데려다주지 않겠노라 했다. 나는 여기에 사는 사람이고 시세를 아니까 원래대로 해달라고 말했다. 못 알아 듣겠단다. 너무 무섭게 인상을 쓰는 통에 나는 마치 그가 칼이라도 든 것처럼 생각되었다. 지나가는 차는 많았지만 인적은 드문 곳. 조심스럽지만 어느새 내 말투도 덩달아 퉁명스러워진다. 당장 내리고 싶었지만 내리려고 해도 돈을 달라고 한다.


10미터건 100미터건 일단 탔으니까 요금을 내라고 하는 말은 원칙적으로는 맞다는 것을 알지만 선택지 없이 어느 쪽이건 돈만 내라는 것에 발끈 치밀어오르는걸 참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 그에게 등을 보이기도 싫었다. 썽태우도 잘 다니지 않는 길 한중간에서 그는 어둠을 이용해 나를 압박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고작 10밧인데. 그 속에는 10밧 이상의 것이 있다.


평소 나는 그런 흥정을 거절하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어두워졌으니 부르는 것이 값이라는 것도 알고있다. 처음부터 그가 가격제시를 했더라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거나 다른 차를 잡았을 것이다. 아마도 받아들였을 확률이 높다. 길을 건널 수도 없는 대로 한가운데. 썽태우가 잘 다니지 않는 곳. 어둠. 상대가 거절 할 수 없는 곳에서 우위를 선점하곤 험악한 얼굴까지 곁들여 굳이 거칠게 나오는 그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비겁한 처사다. 옳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차에서 나는 비로소 분노했다. 내가 그와 대화하며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압박감의 실체가 공포였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르지 못하다. 흥분했다. 본인 불리한 이야기는 못 알아 듣는다고 하는 그 기사가 알아듣건 말건 반드시 한마디쯤 해주겠노라 다짐했지만 막상 행선지에 도착한 나는 돈을 던져주다시피하고 뒤돌아섰다.


이미 겁을 먹어서 그랬던 걸까. 다시 마주친 어두운 운전석 그의 눈빛이 너무 번뜩이고 있었다. 차도 사람도 없는 골목길에서 내가 한 항의가 그의 심기를 거슬렀을 때 그가 뒤에서 나를 치고 지나가기라도 한다면으로 시작하는 망상도 들었다. 그런 생각에 준비했던 '한마디'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어서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잽싸게 움직여 집으로 들어와서야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사건은 명확했다. 길을 가다가 기사가 중간에 차를 세웠다. 10바트를 더 요구했다.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보통의 경우 좀 언짢아도 나는 그것을 수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왜?

공포.

분노.

억압.

웃음이 사라진 자리가 극적일 정도로 상황을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길래 그것이 정석인줄 알았다.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무너져버린 자존심을 움켜쥐며 걸었던 몇 통의 통화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잘했다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행여 성질대로 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했다면 어쩌겠냐고 앞으로도 돈을 달라고 할 땐 그냥 줘버리라고 이야기한다. '10바트(300원) 실랑이하다 봉변당한 한국여성'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는 너무 자극적이지 않겠냐며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아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렇다. 그것이 혼란스러웠다. 낭패감과 공포가 컸다. 그래서 감정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 후도 나는 외출을 계속했으며, 돌아올 때는 썽태우를 이용했지만 같은 일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분명, 자주 있는 종류의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한다. 가능하면,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는 않다.


이곳에서도 마주한 모든 사람이 웃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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