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19-1) - 네 번째 수다모임

10월 15일 금요일 오전 10시 55분 네 번째 수다모임(1)

by 서화림

“오늘은 명상 대신 신체 반응을 말로 표현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지금부터 자신의 신체가 보내오는 신호를 읽어보고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연마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체의 신호? 누구도 선뜻 입을 열려 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 어색해요.”

엘리가 어렵사리 입을 열자 뒤를 이어 은하가 말했다.

“저도요. 말로 표현을 하라고 하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불편하다?”


“어색하다, 불편하다. 이런 것들은 느낌이지요. 느낌은 추상적인 것이고요. 지금 제가 원하는 것은 명확한 표현입니다. 명상을 위해 눈을 감고 있으면서 느껴지는 내 신체의 직접적인 반응을 설명하는 말을 뱉어 보란 말씀입니다. 시간이 필요하신 분들은 좀 더 시간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연마담의 말을 끝으로 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이런걸 원하시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명상 하려고 눈을 감으면 코끝이 간질간질해요. 손을 들어서 긁고 싶은데 그러면 명상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까 봐 꾹 참거든요.”

내가 말했다.


“좋아요. 개똥이님은 코끝이 간지럽다 하네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연마담이 부드럽게 반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저는 발가락이 간지러워요. 신발 속에서 꼼지락거렸어요.”

“저는 반지 낀 손가락을 자꾸 만지게 돼요. 반지가 불편하지도 않은데.”

“저는 머리카락 때문에 목이 간지러워요.”

엘리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하자 은하와 가브리엘이 뒤이어 말했다.


“여러분의 반응은 주로 간지럽다 군요? 이 간지럽다는 감각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빈 공간에 놓은 의자에 앉아만 있는데 간지러울 이유가 있을까요? 달리 주어진 바깥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이 감각이 나의 내면에서 오는 감각이라 보는 건 억측일까요? 혹은 다수가 느끼는 간지럽다는 공통적인 감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 있을까요? 자, 이제 눈을 떠도 좋습니다. 감아도 좋아요.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해보세요. 눕는 게 편하다면 바닥에 드러누워도 좋아요. 어떤 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어떤 것이 나를 편하게 만드는지 느껴봅니다. 우리 신체는 마음보다 훨씬 더 솔직합니다. 신체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여 보세요.”


편하다는 게 뭘까. 불편하다는 건 또 뭐지. 이 자리, 이 공간, 명상 자체가 불편하다는 것을 지난주에 공개적으로 시인했던 터였다. 그렇다면 이 자리는 마냥 불편하기만 한 것일까? 나는 불편한 곳을 한 달이나 찾아들고 있단 말인가? 마음속 어딘가 숨어있던 모순이라는 녀석을 발견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거기에 집중할 시간이 아니다.


일단은 연마담의 지시대로 내 몸의 편안함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리를 꼬았다. 오른쪽 다리를 왼 무릎에 올렸다가 불편해서 반대로 바꿨다. 그리고는 팔짱을 꼈다. 어쩐지 승모근이 당기는 느낌이 들어 팔을 풀었다. 그러나 테이블도 없는 상태에서 팔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양옆으로 늘어뜨렸다가 다시 팔짱을 꼈다가 마지막으로 왼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천덕꾸러기 같던 양팔이 드디어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지나치게 꼿꼿하게 세웠던 등허리에 슬며시 힘을 빼보았다. 너무 굽어도, 너무 꼿꼿해도 불편하다. 그 중간 어디쯤을 찾아 숨쉬기 수월한 위치쯤에서 움직임을 멈춰본다. 눈을 감는 것은 불편하다. 감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싶지는 않다. 절충해서 절반만 떠보기로 한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손끝을 쳐다본다. 이제 나는 적어도 이 공간에서 취할 수 있는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았다. 비로소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손바닥에서 땀이 많이 나네요. 원래도 손에 땀이 나는 편인데 손끝이 찌릿찌릿한 걸 보면 긴장해서 나는 땀인가 봐요. 발바닥도 그래요. 눈을 감으니 마음이 불안해져서 눈을 뜨기로 했어요. 다리를 꼬는 게 편한데 왼쪽을 꼬느냐 오른쪽을 꼬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요. 지금은 왼 다리를 위로 두는 게 편하네요. 팔짱을 끼고 싶었는데 오히려 불편해졌어요. 그래서 손 둘 곳을 찾아 여러 번 위치를 옮긴 끝에 무릎 위에 얹었어요. 허리 꼿꼿하게 세우고 앉았다가 엉덩이를 살짝 앞으로 내밀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앉았어요. 지금 제가 앉은 자세는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자세 중에서는 가장 편한 자세예요.”

내가 말했다.


“개똥이님은 지난주에도 명상이 불편하다고 하셨잖아요. 눈을 감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보세요?”

연마담이 물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눈을 감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때도 지금도요.”

“팔짱도 끼고 싶었고요?”

연마담이 물었다.

“네. 그런데 다리도 꼬고 팔짱도 끼니까 뭔가 생각만큼 썩 편하지는 않더라고요. 마음은 편한데 몸이 편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저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놨더니 편해졌어요. 태국은 습하니까 한국에서 가져온 가죽 가방이 다 흐물흐물해지려고 하잖아요. 이거 비싼 가방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요즘 어디 가서 가방 내려놓기가 싫어요. 쩍쩍 달라붙는 것 같아서. 여기 모임은 의자만 두니까 가방 둘 데가 없어서 무릎 위에 얹고 있었거든요. 불편한지 몰랐는데 편하게 하래서 내려놓으니까 속이 시원한데요? 가방 때문에 다리도 모으고 앉아있어야 하고 알게 모르게 불편했나 봐요. 그리고 저, 신발도 슬쩍 벗었어요. 완전 벗기는 뭐해서 구두에서 발끝만 빼놓긴 했지만 훨씬 편해요.”


“와, 엘리님 제대로네요!”

은하가 감탄했다.

“확 벗어 던져버려요. 우리끼린데 뭐 어때요.”

“그럴까요?”

연마담의 부추김에 아예 구두를 벗어 옆으로 밀어둔 엘리의 발톱에는 갈색 매니큐어가 얌전히 칠해져 있었다.


“저는 다리를 좀 더 벌리고 앉았습니다. 요즘 쩍벌남이라고 남자들 다리 벌리고 앉는 거 질색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다리를 붙이고 앉으려고 애를 쓰게 되더라고요. 사실 신체 구조상 진짜 어쩔 수 없이 벌리고 앉는 게 편하거든요? 그리고 다리 떨고 있습니다. 버릇인데 자리가 자리니만큼 조심을 하게 되더라고요. 편하게 있으라 하셔서 눈치 안 보고 해봤습니다.”

가브리엘이 말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다소 당혹감 어린 표정으로 은하가 말을 꺼냈다. 그녀는 다리를 모으고 앉아있었다. 양 무릎 끝이 살짝 벌어진 걸 보니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은 양옆으로 늘어뜨렸고 등이 구부정이 굽은 자세라 배가 약간 나와 보이는 자세였다. 편해 보이는데.

“엘리님은 신발까지 벗는데 저는 그런 건 생각조차 못 했거든요. 지금 되게 편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자세를 바꿀 만큼 불편하지도 않아요. 불편하다고 한들, 이 상태에서 뭘 얼만큼 바꿀 수 있을 것이며 그게 제집 안방만큼 편해질 것도 아니다 싶어요. 저 어떡해요?”


“자연스럽게 주어졌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공기, 물 같은 자연이에요. 하나라도 없으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죽어버릴 거면서도 사람들은 굳이 그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가지 않지요. 명상은 공기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공기가 사실은 나의 외부를, 그리고 내부 또한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나의 외부와 내부가 공기라는 매개로 서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숨을 크게 쉬고 들이마시라는 명상 메시지는 공기가 우리 정신에도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연마담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쳐다보았다.


“명상이 불편하다 하신 개똥이님도 계셨고 편하다고 하신 은하님도 계십니다. 명상은 개인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우리 구성원이 같은 경험을 해보기 위한 창구이기도 합니다. 물론 명상을 통해 얻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수다 모임의 특성상 어느 만큼의 결속력 혹은 친밀감은 꼭 필요하다고 봤고 저는 그것을 명상을 통해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같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만납니다. 서로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접촉해봅니다. 그렇게 교감과 친밀감이 형성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건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의 흐름이지요. 억지로 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그리될 것이라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하님. 은하님의 속도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을 수 있어요. 마음의 문을 여는 속도건 몸의 문을 여는 속도건 타인을 쫓아가려 할 필요 없으니 천천히 다가오세요. 우리 모두 은하님을 응원하고 있을게요. 다른 분들은 오늘 신체의 반응을 느꼈던 자신을 잘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분명 전체를 위한 말인데 은하님,하고 이름을 부른 탓인지 은하를 위한 긴 위로의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어딘지 감동한 표정의 가브리엘과 엘리의 표정과는 달리 정작 당사자인 은하는 덤덤한 표정이다.


“자, 오늘은 장 들어가기 앞서 할 말이 많은 날이네요. 지난주에 가브리엘님이 빠지셨기 때문에 장에서 나눴던 일도 가브리엘님께 전달을 해드려야 하고, 가브리엘님도 소식 없이 불참하신 것에 대해 가브리엘님을 걱정하며 기다렸던 다른 분들에게 사과를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연마담의 말에 가브리엘이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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