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금요일 오전 10시 55분 네 번째 수다모임(2)
나의 별거와 은하의 이혼 여행 소식, 부모님과 다툰 엘리의 소식이 간단히 추려져 가브리엘에게 전해졌다. 지난번 집단 모임에서는 분명 긴 이야기가 오간 것 같은데 이렇게 연마담의 입을 통해 전해 들으니 하나하나의 소식이 모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아예 남의 일 같기도 하다. 이토록 짧은 몇 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허탈할 지경이다. 자기가 없는 사이 이런 전개가 펼쳐지다니 충격이라며 입까지 벌리고 이야기를 듣던 가브리엘은 할 이야기가 있지 않냐는 연마담의 권유에 한동안 바닥을 쳐다보며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저는 선생님 전화 주시기 전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가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뜻밖의 시작이었다.
“저는 술을 잘 마십니다. 보편적으로 잘 마신다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술을 잘 마십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저희 아버진데 꼴랑 그거 하나 물려받았습니다. 그게 너무 싫어서 평소에는 술을 안 마시려고 합니다. 남들이 물어보면 아예 못 마신다고 대답해버립니다. 겉보기에는 덩치도 작고 생긴 것도 이래서 술 못 마실 것 같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듣고요.”
잠깐 뜸을 들이던 가브리엘이 혀로 입술을 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상담 목표 설정하던 날 상담 갔다가 집에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는 이유가 따로 있었단 말야?하는 생각과 능력 없는 남자 싫다고 떠났지 그런 게 있겠냐는 생각 두 개가 번갈아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잠을 자야 하는데 잠도 오지 않고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술을 사 왔습니다. 잠들 때까지 술을 마시고 또 깨 있을 때는 전화 한번 걸어볼까 고민을 무지하게 했습니다. 왜 나를 버렸냐고 물어보려고요. 전화번호는 왜 아직 안 바꿨냐고요. 못 걸겠더라고요. 또 술을 마셨습니다. 술김에라도 전화를 걸고 싶어서 마신 건지 걸지 않으려고 마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차에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결석한 거에 화가 단단히 나셨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니 깨고 전화 걸라며 끊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더 지나서 또 전화를 주셨습니다. 까페로 오라고요. 오토바이는 두고 오라 하셨습니다. 어찌어찌 썽태우를 잡아타고 왔습니다. 밥을 차려주시더라고요. 집밥 먹어본 게 언젠지 모르겠는데 밥 한 끼 얻어먹고 돌아왔습니다. 국 한 숟가락을 뜨는데 술이 깨는 기분이었습니다. 돌아와서 며칠 만에 샤워를 했습니다.”
시종일관 바닥을 보며 이야기하던 가브리엘이 꾸벅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결석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고, 불참하게 되면 미리 연락 달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못했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의 사과에 엘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언젠가 저도 그렇게 빠질지도 모르는데 저는 이렇게 정중하게 사과 못 할 거 같단 말이에요.”
“맞아요. 이럴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 정도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 거 같아요.”
은하가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요, 월급날이 되면 2, 3일은 집엘 안 왔어요. 어디 있는지 뻔해요. 동네 대폿집요. 그 시절에는 월급을 현금으로 줬거든요. 엄마는 아버지 월급날이 되면 나랑 누나를 거기 보냈어요. 너무 일찍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 돼요. 너무 일찍 가면 아직 시작 못 한 아버지한테 집에 가라고 쫓겨날 테고 너무 늦게 가면 술이 너무 많이 된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어느 시간에 가건 공통점은 부어라 마시는 아버지예요. 아버지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봤어요.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역할은 아버지의 월급봉투가 바닥나기 전에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진짜 역할은 시위대였어요. 어머니가 자기를 대신해 아버지 옆에 세워두는. 그런데 아버지에게 그게 먹혔을지는 모르겠어요. 어쨌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아는 척하지 않았거든요. 서 있는 우리를 보며 앉으라거나 자기 월급봉투에서 꺼낸 돈 한 푼을 꺼내 쥐여 주는 건 아버지 술친구들이었어요. 우리는 아버지가 어느 시점에서 기분이 내켜 월급봉투를 꺼내줄 때까지 옆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어요. 물론 월급봉투의 두께는 아버지가 처음 받았던 때보다 훨씬 얇아져 있었고요. 아버지는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일하러 가지 않았어요. 술을 마셨죠. 제 모습 같아요. 그게 괴롭네요.”
책임이 뒤따르는 것도 아닌 그저 한 번의 무단결석을 설명하는 말이 장황하다 싶더니 그런 속사정이 있었나 보다. 오늘따라 말끔해 보이는 그의 둥근 턱선을 바라본다. 휴가 기간 동안은 면도를 하지 않다가 출근 전날에야 면도를 하면 그 억세고 꺼슬했던 수염 같은 게 있기나 했냐는 듯 말끔해지던 남편의 턱을 보는 것 같다. 지지난번 상담 후 2주. 그는 어떤 시간을 어떤 생각으로 보냈을까. 쌍꺼풀 크게 진 그의 튀어나온 눈가가 발갛다.
“지금은 아버님과의 사이가 어때요?”
침묵을 뚫고 연마담이 들어왔다.
“사이요? 사이랄 거 없어요. 돌아가셨거든요. 꽤 됐어요.”
“아직 이른 나이에 가셨네요. 병으로?”
“네. 술을 하도 마셔서 간에 병이 생겼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요. 애 많이 먹였어요.”
“어떻게 애먹이던가요?”
“원래 그렇게 오래 사는 집안도 아니에요. 그런데다 술을 그렇게 마셔대니 어떻게 병이 안 생겨요. 집안에서 폭군 노릇 하다 보니 누구도 아버지를 걱정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영원히 술을 마시고 영원히 엄마를 두드려 패고 아무튼 평생 그렇게 영원히 살 거라 생각했어요. 간이 완전히 망가진 후에야 병원에 갔어요. 병원에서는 그나마 이식이 답이라 했는데 그나마도 100퍼센트 확률은 아닌 거잖아요? 어쨌든 그 말 듣고 저는 장남인 제가 이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날 이때껏 아버지 말에 찍소리도 못하던 엄마가 안 된다는 거예요. 새끼들은 안된다고. 절대 안 된다고. 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치료하고 안 되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가라고요.”
“가브리엘님은 아버지에게 이식하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엘리가 물었다.
“아니오. 모르겠어요. 아버지니까. 아니, 간 이식을 해야 한다니까 해야 하는가 보다 했던 거지 자식이랍시고 당연히 아버지를 살려야지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살아오면서 아버지에게 쌓인 감정이 얼만데요. 인간적인 감정을 가질 정도로 좋았던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막상 엄마가 나서서 막으니까 싫더라고요. 그래도 사람이 죽는다는데,하는 생각도 들고.”
“아버지 건에 대해 어머니와 다른 가족 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눴었나요?”
연마담이 입을 뗐다.
“대화라기보다는 엄마가 저희 삼 남매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했어요. 애비라고 해준 것도 없는데 막판에 뱃속에 든 간까지 빼먹으려 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살려둬도 자식 둘 더 남았다고 술 퍼먹고 또 남은 자식 간도 빼먹으려 들 인간인 거 너희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아니냐. 누구라도 이식한다는 말 나오는 순간 엄마가 확 혀를 물고 죽어 버릴 테니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러더라고요.”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브리엘님은 순순히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나요?”
“동생은 그때 중3인가 그랬어요. 하고 싶어도 너무 어렸죠. 철없던 시절이기도 하고 본인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하지도 않았어요. 동생 입으로 어쩐다는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아요. 누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시켜도 안 한다고 할 만큼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컸어요. 저는 해야 하면 하고 안 해도 된다 하면 안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어땠어요? 막 살려달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인상을 찌푸린 엘리가 물었다.
“병에 걸린 순간부터 입을 닫았어요. 원래도 별로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죠. 살림살이 부수고 엄마나 우리를 때리는 와중에도 말은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고모가 나서서 살려내라고 엄마를 붙들고 난리를 쳤어요. 그래도 엄마는 눈썹 하나 까딱 안 했어요. 아빠가 우리 때릴 때도 변변히 말리지 못했던 엄만데 그 순간엔 얼마나 독하게 굴던지 고모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형제니까 고모 간 주면 되겠네요, 하더라고요. 술주정뱅이 애비한테 간 빼주고 내 새끼들 나중에 자기 몸 아파져서 죽을둥 살둥 하면 누가 책임져줄 건데 겁 없이 남의 자식 간을 빼라 말라 하는 거냐고요. 그걸 다 보면서도 아버지는 엄마에게 한 마디를 안 했어요. 모르죠. 둘이선 뭔가 말을 했는지도.”
“아버지는 그 후 얼마나 계시다 돌아가셨나요?”
연마담이 물었다.
“3개월? 6개월? 모르겠어요. 급격히 나빠진 건 영양이 나빠서였어요. 술 찾을 때만 입을 열었어요. 주는 약은 먹었지만 밥은 거의 먹질 않았어요. 별로 살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죠. 가난 탓인지 장례식장엔 손님도 거의 없었어요. 우리 네 식구는 울지도 않았어요.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이식 문제로 심란했던 걸 빼면 기억이라곤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였어요. 술, 때려 부수기, 때리기. 그게 통으로 하나예요. 단 한 번도 아빠라 불러본 기억도 없어요. 자식이라고 예쁨받아 본 기억도 없어요. 슬프지도 않았어요.”
“그랬군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어요, 가족들과?”
연마담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