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20) - 도이수텝에 오르다

도이수텝이 오르다

by 서화림

여행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그 유명한 사이트에는 여행 동반자를 찾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치앙마이'라는 제목 자체에 혹하고, 가끔은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매우 드물게 쪽지를 보내 보기도 하지만 만남이 성사된 경우는 없다.


'다시 생각해보자던 그와'의 이별 이야기를 서두로 아직 떠나지 않은 여행의 프롤로그를 적고는 여행 동반자를 찾는다는 사람의 글을 보았다. 이 사람이라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출발한다는 그녀가 이미 비행기를 타고 있을 시간에 전화번호까지 적은 쪽지를 보낸 것은 설명이 어려운 일이었다.


다음날 오후. 아침 비행기로 치앙마이에 도착했다며 걸려온 낯선 이의 전화. 우유와 씨리얼로 대표되는 하루의 시작에 던져진 그 전화 한 통은 지난 두 달간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큰 사건이었다.


다신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사는 곳을 가르쳐주고. 함께 밥을 먹고 마사지를 받으며 주로 나는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낯설 정도로 정돈된 여자였다. 유하다고 표현해도 될만한 사람이라 느껴졌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겠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단정한 감정 앞에 글 속 열정으로 타오르던 그녀와 내 앞의 그녀가 같은 사람 인가에 대해 판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도이수텝에 오르자는 이야기는 누가 먼저 꺼냈을까. 바라만 보던 곳에 가게 되었다는 설렘. 일몰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데 대한 만족. 갖가지 기분 좋은 감정으로 가득 찬 마음은 시간이 두 배쯤 느리게 흐른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산을 두 개나 챙겨 들고 길을 나서 그녀를 만났다. 준비성 있는 여행자인 그녀도 우산을 가지고 나와 우리는 세 개의 우산을 가지고 출발하게 되었다. 근처에서 썽태우 잡기를 실패하고 매일 앞을 지나다녔지만 무엇을 파는지도 몰랐던 그 집에서 산 망고주스를 들고는 세 마리 개에 두 번이나 쫓기며 겨우 대로로 나왔다. 동물원 앞에서 탈 수 있다는 40밧짜리 썽태우는 오후 다섯 시에는 있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있다고 해도 사람이 모이지 않아 결국 비싼 값을 주고 가게 될 터였다. 차라리 근처에 다니는 썽태우를 잡아 기사와 흥정하라는 팁을 듣고 전투태세에 돌입했건만 잘게 내리기 시작한 비와 짙어지는 어둠, 빨라진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차량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마음먹은 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 것. 누군가의 무엇에 빗대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여우비가 비가 내렸다 그치길 반복하는 해 질 녘의 산길을 달리며 고생하며 여행하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며 모든 것이 마침한 날이니 분명 멋진 치앙마이를 볼 수 있겠다 기대한다. 기대는 충족되었다.


그 유명한 도이수텝의 300계단을 오르기 전. 불현듯 돌아본 절 밖의 세상. 하늘이 가깝다. 흙을 묻히며 올라온 산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묘한 성취감을 준다. 위도 아래도 아닌. 같은 눈높이가 주는 동등함-자연과 내가 같다는 확신. 나도 자연의 일부 혹은 전체-라는 믿음.


거실에 앉아 풍경으로만 보던 장소에 두 발을 디디고 있는 건 특별한 기분이었다. 마치 그 일부가 된 것 같은 감격이 밀려오길 수차례. 풍경으로 보아 왔다는 것은 착각이고 사실은 그 세세한 부분까지도 본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착각까지 자연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도이수텝에 걸린 종 모두를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가 컸는데 종을 치지 말라는 팻말 앞에서 차마 어쩌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종 하나에 손을 얹고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다. 이루어질 것이다. 부디 이루어 주세요. 마음을 담았다.


저녁 예불 시간이라 그랬을까. 열린 곳 하나 없이 굳게 닫힌 문에 가로막혀 본당 근처는 구경도 못 하고 돌아본 도이수텝이었지만 그곳이 한눈에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 자신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 소리를 벗 삼아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털어놓으면서도 망설일 이야기들이 쉽게도 튀어나왔다. 그녀는 이따금 맞장구를 쳐가며 훌륭한 청자가 되어주었다. 화자는 나였지만 이야기는 그녀의 것이라 여겨졌으니 어쩌면 그날의 대화는 나의 입을 빌어 나온 그녀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 '현실'이나 '입장'의 이유로 결코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되는 말들을 여상스레 꺼내는 나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 채 맞장구를 치는 사람과의 대화. 그것이 그녀와 나를 '우리'로 만들었다. 우리는 꽤 괜찮았다. 저 아래 두고 온 세상에 불이 밝혀져서야 비로소 어둠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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