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며 왓 째디 루앙의 에스님
지난 이틀 쇼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가방.
치앙라이로 떠나며 맡기고 간 그녀의 가방을 힐끔거리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또다시 엉켜버린 밤낮의 경계에서 헤매다 돌아오는 버스를 탄다는 전화를 받고 그제야 정신이 든다. 밝은 목소리로 그때 얘기했던 무까타를 먹으러 가자고 하니 기쁜 마음이다. 그녀의 치앙라이는 괜찮았나 보다. 괜찮은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괜찮아졌다. ‘우리’는 괜찮다.
스쿠터를 타고 다녔더니 손만 까맣게 탔다고 말하는 그녀가 평온하다. 식당까지 걷는 길, 그녀는 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사람, 사람, 또 사람. 어쩌면 그렇게 인간적인 광경을 담아왔을까 기특하다. 다시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의구심에 치앙라이는 답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센탄과 님만해민을 잇는 훼이깨우 로드 대한민국 명예 영사관이 있는 건물 옆, 저기 보이는 노란 간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쑤콘타 무까타가 나온다. 식당은 북적거렸다. 음식은 자꾸자꾸 채워지지만 채워지는 속도보다는 채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에 밴드의 소리가 묻힌다. 노래를 잘 못 불러도 호응이 좋은 걸 보니 내가 모르는 매력이 숨어있는 게 틀림없다.
정말, 태국사람들 적게 먹는다는 말은 누가 한 건지. 주위에 우리보다 적게 먹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이 와서도 새우를 100마리쯤은 구워 먹는 사람들, 꼬막을 300개쯤은 까먹는 사람들. 주력 종목은 달라도 모두 신나게 먹는다. 신나게 떠든다. 모두 행복해 보인다. 떠들썩한 분위기, 푸짐한 음식. 잔칫집이 따로 없다.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따라 대화를 나누기 위한 목소리가 자꾸자꾸 높아진다.
그 틈에 앉아 얌전하게 앉아 고기를 구우면서도 치앙라이는 계속된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는 손님이 많이 없다. 조금, 술을 권하자 친구의 친구가 그러지 말라고 나무란다. 맛있는 쏨땀집을 추천해달란 얘기를 하니 어디선가 짠하고 쏨땀이 나타났다. 그 시끄러운 식당에 앉아 소박한 동화를 한 편 읽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그녀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의 말이 아름답다.
이튿날은 그녀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해 질 녘 만나 저녁을 먹고 토요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쉽게 썽태우를 잡고 '왓 째디 루앙'이라고 말한다. 과연 잘 알아들어 줄 것인가 두근두근했는데 기사는 되묻지도 않고 출발한다. 올드시티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며 과연 이 길이 맞는 걸까 고민하는데 저기 보이는 낯익은 모습, 그녀다. 벨을 눌러 썽태우를 세우고 손을 흔든다.
먼저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며 길을 내려가는데 누군가 우릴 부른다. 6인실 도미토리에 혼자 묵고 있던 그녀를 따라 방 구경을 하러 갔다가 그날 오후 치앙마이로 왔다는 한 여행자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다 나왔는데 바로 그녀였다. 다음날 미리 봐둔 타패 근처의 숙소로 옮긴다더니 이렇게도 만나게 된다.
“치앙마이가 좁긴 하네요.”
며칠만 더 다녀보면 알 수 있을 테지. 좁은 구역 안에 최대한 많은 골목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인연이 따라준 것인지를. 저녁 식사 약속을 하고 일어선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던지라 점심은 건너뛰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혼자 올드시티 안쪽을 헤맬 때 절은 큰 구경거리가 되지 못했다. 몇 군데쯤은 관심 있게 둘러도 봤지만 달리 제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명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 대충 훑어본 것으로는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생각보다 많은 사원들을 지나다니다 보니 그게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가 않더라는 게 다음 문제였다. 관심을 딱 끊고 나니 그 많은 사찰 어느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얼마 걷지 않아 째디 루앙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붕에 걸린 태양이 환상적이다. 날씨 덕인지 사람을 홀리게 하는 불탑의 모습이 눈을 잡아끈다. 두어 번쯤 인터넷 여행 후기에서 봤던 멋진 건물이 있던 사찰. 그곳이 바로 왓 째디 루앙이었다. 반쯤 허물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습조차도 경건해 보이던 불탑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왠지 마음이 급해져 본당도 둘러보지 않고 불탑을 향해 가는 길. 안녕하세요,하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다른 스님들과 떨어져 홀로 앉아 계시던 스님이 인사말의 주인공이었다. 태국 불교는 여성과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한다고 들었기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기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먼저 말을 걸어주시니 반갑다. 이리오라는 손짓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캄보디아인이지만 열 살에 불가에 귀의한 이래 태국에서 생활하게 되셨다는 에 스님은 태국어가 어렵다고 푸념하는 나에게 본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고작 열 살에 남의 나라에 와서 단체면서도 독립된 생활을 하며 외국어를 배운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시 텃세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니 그것을 이겨낸 그가 참으로 강해 보였다.
태국에서 12년. 베트남, 말레이시아, 미국 등지에서도 몇 년을 지냈다는 그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나이를 읽을 수가 없다. 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에 한국어까지. 공부를 하기 위해 스님이 되었다는 그는 이제는 공부만 하는 것에 지친다고 말했지만 내가 국어를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눈을 반짝이며 'ㅐ'와 'ㅔ'의 발음 차이에 대해 물어 왔다. 다시 물어본다면 좀 더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불의의 일격에 당황, 그만 어물거리고 말았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 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스님의 한마디가 귀했고 좀 더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신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른 곳을 둘러보고 싶다면 각자 시간을 보내고 시간 맞춰 만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심스레 물어보니 그녀에게도 지금이 괜찮은 시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 괜찮았다.
쨍쨍한 햇볕 아래 우리가 앉아있는 그늘은 시공을 초월한 것도 같았다. 옆으로는 관광객들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호들갑을 떨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같은 현실에서의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음 속에서도 음성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 대화를 소음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지 않은 스님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우리가 행하지는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지려고 하지 마라. 버려라.'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스님은 그것이 '사람들'이 힘든 이유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에게 그것은 마치 '네'가 힘든 이유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
- 당신은 왜 힘듭니까. 당신은 왜 스스로를 미워합니까.
질문을 하기는 했으되 대답에 연연해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듣지도 않은 내 대답에 그는 잘도 답을 해주었다. 나는 그것이 고맙고 또 감동적이라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 화장한 하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관광객의 소음 바로 옆에서 나는 자꾸만 아득해졌다.
"Anything, nothting" 몇 번을 되풀이하던 그의 말을 나도 몇 번이나 따라 했다. 좀 더 버리고. 좀 더 없애는 것으로 삶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면 잊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활자로 정리해서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해가 진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스님과의 대화로 저녁 식사 약속 시간이 촉박해졌다. 규모가 큰 사원이라 둘러볼 것도 많이 있었지만 스님과의 대화로 이미 얻을 것을 얻은 기분이다. 본당에서 불경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저녁예불 시간인 듯한데 바깥에 앉아있는 스님들은 아직 한가롭다. 몇 번, 다른 스님의 부름이 들려오고, 시간에 쫓기는 우리가 일어나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 그리고 짧은 쪽지를 적어주었다.
너무 유명하거나 너무 화려한 것은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날의 왓 째디 루앙이 그토록 강렬하게 남는 것은 '사람' 때문은 아닐까. 저녁을 먹으며 합류했던 다른 절에 갔던 여행자가 스님들이 말을 걸어오자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고 하는 말이, 어쩌면 그가 놓친 기회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