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23-1) - 다섯 번째 수다모임

10월 22일 금요일 오전 10시 53분 다섯 번째 수다모임(1)

by 서화림

“오늘 기분이 어때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연마담의 질문에 각자의 답을 꺼냈다. 우리의 답을 찬찬히 듣던 연마담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질문을 하나 더 꺼낸다.


“기분이 어때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어때요?”

뭐 이런 질문이 다 있지? 끝없이 왜요, 왜요 묻는 다섯 살짜리의 질문에 골탕먹는 기분이다. 그나마 아이의 질문은 천진한 구석이라도 있지 연마담의 질문에는 나는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답이 있을 테고 질문 그 자체에도 명백한 의도가 있지 아니하겠는가. 이런 건 재미없다. 멀뚱히 그녀를 쳐다본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하루잖아요. 특별할 것 없는. 그런데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좀 긴장하게 돼요. 뭔가 콕 찍어서 말해야 할 기분이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불편한 말을 불편하지 않게 말할 줄 아는 은하. 부럽다. 꼭 배우고 싶은 기술이다. 오늘따라 그녀의 하얀 얼굴이 생기있어 보인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을까?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둘씩 짝을 지어보죠. 앉은 순서대로 은하님은 오른쪽에 앉은 개똥이님과, 가브리엘님도 오른쪽에 앉은 엘리님과 짝이에요. 마주 보고 앉으세요. 앉아서,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합니다.”


은하와 나는 마주 보지 않았다. 각자 바깥쪽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비스듬한 몸을 상대 쪽으로 기울였을 뿐이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가락을 쳐다본다. 지난주에 신체 반응을 이야기하며 작지도 않은 반지를 자꾸 만지고 싶다고 했을 때도 끼고 있던 그 반지다. 큐빅이 촘촘히 박혀 있어 화려한가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의외로 심플한 디자인이다. 유명한 명품 디자인을 흉내 낸 것 같기도 하다. 활짝 핀 꽃무늬가 마음에 든다. 그녀는 오늘도 검지에 낀 그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내가 불편한 걸까.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은하가 윤마담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을 만났어요. 원래 알던 사람은 아니고 여행 사이트 통해 만나게 되었어요. 경계심이 많아서 그렇게 선뜻 사람을 못 만나는데 마음이 동해서 제가 먼저 만나자고 했어요. 그 사람이 쓴 글을 읽었는데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어졌었어요. 지난주 상담 끝나고는 거의 내내 그분을 만나 같이 다녔어요. 제가 오고 싶어 온 치앙마이니까 외롭다고 생각 안 했었는데 누군가 같이 있으니 확실히 다르긴 하더라고요. 신나기도 하고. 음식 2인분 시킬 수 있던 것도 참 좋았어요. 늘 동네만 돌아다니다가 덕분에 도이수텝도 가보고 왓 째디 루앙도 가봤어요. 웃기죠? 치앙마이에 짐 푼 게 언젠데 정작 남들 다 가본다는 덴 가보지도 않고 늘 집 근처만 뱅뱅 돌고 지냈어요. 막상 가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더라고요. 은하님은 다 둘러보셨어요?”


기시감이 든다. 결석한 가브리엘에게 지난 상담 내용을 들려주던 연마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다른 건 나의 입을 통해 나의 근황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이리 그때와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인가. 도무지 내 일 같지가 않다. 그녀를 만나고 보내며 느꼈던 감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느껴질 만큼 건조한 단어를 선택해 말한다. 그러면서도 어색한 만큼 더 수다스럽다.


“서울사람 63빌딩 안 가본 거랑 같은 거 아니겠어요? 저는 째디 루앙은 안 가봤고 도이수텝은 가봤어요. 애들 데리고요. 운전해서 올라가는데 길이 상당히 꼬불꼬불하더라고요. 운전대 반대인 것도 적응 안 된 때였는데 고생했어요. 경치는 좋던데 개도 너무 많고 저는 별로였어요.”

“그러셨구나. 저는 좋게 보고 왔어요. 개는 진짜 무섭죠? 덩치가 어린애만 한 개들이 어슬렁거리면 진짜 어디에 있건 도망치고 싶어요. 저 갔을 땐 자기들끼리 싸움도 해서 그거 피하느라 계단 300개를 진짜 후다닥 올라갔다니까요. 저는 주로 걸어 다니는데 길거리에서 제일 무서운 게 개예요. 은하님은 한주 어떻게 보내고 오셨어요?”

“저는...... 다를 거 없는 일상을 보냈어요. 아침에 눈 떠서 식사 준비하고 애들 먹여서 유치원 보내고 아, 둘째는 집에 있지만요. 남편하고는 한 번씩 싸우고 나면 한동안은 또 데면데면하거든요. 지난주 그랬으니 이번 주는 조용했죠. 제가 한국에선 워킹맘이었어요. 애는 어린이집하고 친정엄마가 키워주다시피 했는데 여기 오면서 저도 처음으로 전업주부 역할을 해보는 거예요. 생각보다 바쁘더라고요. 시간도 빨리 가고. 매반이 있으니까 육체적으로 부치는 건 아니라도 안 해본 일이라 늘 좀 긴장 상태예요. 하루가 후딱 가요. 금방 저녁 먹을 때가 되더라고요.”


은하가 대답했다. 특별할 것 없던 우리의 대화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생활에 접점이 없어서일까. 말을 걸면 대답도 척척 하고 반응도 나쁘지 않은데 어쩐지 대화가 쉽지 않은 기분이다. 그녀도 나와의 대화가 이렇게 재미없을까? 그때 윤마담이 대화 종료 사인을 보냈다.


“한주 잘 보내고 오셨지요? 파트너도 그렇다고 하던가요? 지금부터 돌아가며 일주일 보내고 온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순서를 바꿔서요. 짝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대신 저희에게 들려주시는 거예요.”

어이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이걸 시킬 거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이러려고 짝을 지어 줬구나. 성의 없이 대화에 임한 걸 이제서야 후회한다. 그녀가 뭐라고 했더라?


“개똥이님은 여행카페에서 한국 여행자를 만나 한주 내내 여행하셨다고 합니다. 째디 루앙이랑 도이수텝에 다녀오셨대요. 그분이 가고 나서 외로웠는데 지금은 나름대로 정리를 하셨다고 하네요.”

“은하님은 전업주부로서의 생활을 하느라 여유가 없으시대요. 남편분과는 지난번 다툰 이후 소강상태라 하셨고요.”

은하의 간결한 설명에 이어 그것보다 더 짧은 내 말이 이어졌다. 분명 짧지 않은 말을 나눈 것 같은데 막상 발표하려니 말할 내용이 없다.


“가브리엘님은 일주일 만에 바퀴에 바람이 빠질 정도로 오토바이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셨대요. 보통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바람을 넣는대요. 그리고 이야기가 새서 오토바이 타는 거 안 무섭냐는 이야기 한참 했고요, 타이어에 바람 넣는 거 이야기도 했어요. 은하님, 주유소에 타이어에 바람 넣는 기계 있는 거 아셨어요? 저는 까맣게 몰랐어요. 기름 넣으러 다니면서 어떻게 그걸 못 봤죠? 가브리엘님이랑 얘기하면서 모르던 치앙마이 생활을 많이 알게 됐어요. 전 너무 방구석 집순이예요. 저 오토바이도 한 번도 안 타봤는데 다음에 한 번 태워주기로 했어요. 근데 무서울 거 같아요. 그래도 한번 타보고 싶어요. 어, 그리고 나가 다니신 건 술 안 마시려고 다니신 거래요. 그리고 술 안 마셨다고요. 엄청 먹고 싶었지만 참으셨대요. 그래서 제가 칭찬해드렸어요. 저랑 완전 반대네요.”

중간중간 히히,하는 웃음과 함께 엘리가 말을 마치자 뒤를 이어 가브리엘이 얼른 입을 열었다.


“저와 반대로 엘리님은 집에 틀어박혀서 술을 많이 드셨다고 합니다. 원래도 술 마시는 거 좋아하신대요. 밤에 혼자 술 마시고 늦게 일어나서 쓰린 속을 안고 후회하면서도 저녁 되면 또 술 마시고 그렇게 일주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가 마셨던 것처럼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엘리님은 요즘 외출도 안 하고 집에만 계신답니다. 만사가 귀찮아서요. 후회되는 것과 짜증 나는 것들이 자꾸 떠올라서 우울하답니다. 뭐가 그러냐 물어보니 지난번 부모님하고 전화로 다툰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부터도 그게 자주 트러블이었는데 여기 와서도 달라진 게 없어서 답답했대요.”


“늘 집단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러분들은 아직 일대일로는 대화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패턴이 계속되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개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어땠나요, 직접 대면하고 대화를 해보니? 조금 어색하셨나요? 그럴 수도 있어요. 어쩌면 이 사람, 생각보다 나랑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오늘은 집단을 개인으로, 조금 더 가깝게 느끼는 경험을 해보며 장을 열어보았습니다. 은하님, 개똥이님, 가브리엘님, 엘리님. 잘 오셨습니다. 기다렸어요.”

연마담이 우리 하나하나의 이름을 짚어 부르며 새삼스러운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니 엘리가 네,하고 천진하게 대답하며 웃어 분위기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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