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23-2) - 다섯 번째 수다모임

10월 22일 금요일 오전 10시 53분 다섯 번째 수다모임(2)

by 서화림

“오늘은 지난번 예고했던 대로 은하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분명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텐데 생각만큼 훅 낚여 오지 않는단 말이죠. 은하님?”

모두의 시선이 은하에게 향했다.


“저는 지난번 개똥이님과 나눴던 대화를 생각했어요. 개똥이님이 지금처럼 살면 내가 좋고, 사랑하며 살면 둘 다에게 좋은 건데 왜 나 좋을 대로 해주지 않는 남편이 나쁘다고 하냐고 그랬잖아요. 저 그때 말은 못 했지만 무지하게 당황했었거든요. 기분도 나빴고요.”

“그러면 그 자리에서 개똥이님께 이야기하지 그러셨어요?”

연마담이 추임새를 넣어줬다.


“아니, 그러기에는 좀 뭣했고요. 기습을 당한 기분이랄까?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이게 다 남편 탓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그렇잖아요.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데 갑자기 사랑 어쩌고 하면서 이혼하자며 속 뒤집는데 어떻게 조용히 살아요. 나도 일을 하는 입장이지만 자기가 더 바쁘니까 얼마나 많은 것을 맞춰주면서 살아왔는데 나보고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하면 황당하죠. 그런데 개똥이님은 남편 편에서 말씀을 하셨잖아요. 꼭 남편처럼요.”

“어, 어, 아니에요 은하님. 저는 은하님 남편 편을 든 게 아닌데요.”

내가 은하의 말을 끊었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은하님이 잘못한 게 있어서 남편분 편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한 게 아니었어요. 저는 정말 궁금했어요. 남편분의 바람을 왜 그렇게 싫어하시면서 얘기하는지요. 나중에 말씀하셨잖아요. 그것 때문에 가정이 휘청하고 있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냐고요. 그 말 듣고는 은하님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는 했어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궁금하긴 해요. 불화가 생기지 않았더라도 은하님이 남편의 그런 요구에 맞춰주실 수 있었을까요? 제가 봤을 땐 가정불화 때문에 남편의 사랑 요구를 싫어하시는 게 아닌 거로 보였어요. 그 요구 자체를 싫어하시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자, 은하님, 집단 상담 과정에서 어차피 나올 이슈이기 때문에 제가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이 기회이지 싶어 제가 끼어들어 말씀을 좀 하겠습니다. 지금 두 분은 상담 과정에 있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것’과 ‘왜곡하지 말고 받아들일 것’이라는 대명제를 사이에 두고 계십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은하님의 말을 들으며 은하님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자신을 평가하는 상대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개똥이님은 남편님 편에 서서 은하님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다는 인식도 없이 상대방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 일에 있어서만은 저는 개똥이님의 말이 곧 개똥이님의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하님 생각해보세요. 가족관계도 아닌 개똥이님이 왜 일면식도 없는 은하님 남편 편에 서서 은하님을 공격하겠어요? 편을 든다면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만나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은하님 편을 드는 게 맞지. 지금 은하님은 자신이 개똥이님에 의해 나쁘게 판단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개똥이님의 말을 왜곡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은하님의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지만요.”

내 입장에선 속이 시원한 말이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을 해버리니 잔인하다 싶을 정도다. 윤마담의 말을 들은 은하가 대답 없이 입을 꼭 다물었다. 좋아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판단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집단 모임 참가자의 자세로는 좋지 못합니다. 사실은 집단뿐 아니라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좋은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상대방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듣는 사람을 상처입히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우리 자신에게도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으셔야 합니다. 한편, 왜곡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왜곡 없이 잘 받아들일 방법을 한가지 조언하자면 자신이 없다면 질문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여도 될까? 의문이 생긴 순간 바로 질문해서 반드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나가세요. 타인의 마음을 확인하는데 어림짐작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윤마담의 빠른 말이 지나자 침묵이 다가왔다. 말로 하기야 쉽지만 어려운 주문이다. 치앙마이를 다니며 나는 적지 않은 여행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하지만 나를 배려하지는 않은 엄격한 잣대 앞에 자주 상처받곤 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엄격한 심판관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언컨대 내 부모조차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지는 않았다. 늘 판단 받는 것에 대비해 반쯤 긴장한 상태로 가족을 대했고 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거라는 기대 같은 건 버린 지 오래였다. 그것이 익숙해서 불편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윤마담은 인제 와서 그것을 집어치우라 말한다. 가능할까? 나는 자신이 없다.


“모두 알아들으셨을 거라 믿고 이야기를 계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은하님, 개똥이님 하셨던 말씀 기억하세요? 남편이 이혼 요구를 하지 않았더라도 남편의 요구를 수용했을 것인가에 대한.”

오해를 산 것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은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은하의 입장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더불어 멀쩡해 보이던 그녀가 속으로는 얼마나 구석에 몰려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문득 그녀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목받은 은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나를 쳐다봤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그랬어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요. 결혼 전에 저는 그 말이 엄청 든든했어요. 이 사람이다 싶었거든요. 결혼하고 얼마간 남편은 성실한 남편이었어요. 좋은 아빠였고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남편은 불성실해지기 시작했어요. 언제부턴 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입으로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말을 더욱 자주 했고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거죠. 말로만 잘하고 싶다 하면 뭐해요. 행동은 아닌데.”

더듬더듬 은하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에게는 나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남편이 화목한 가정이 안 되는 건 다 저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제가 무뚝뚝해서요. 목석같아서요. 그런 여자에게 동할 남자가 어디 있냐는 거예요. 그런 여자랑 어떻게 화목한 가정을 꾸리냬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생판 모르는 여자 데려다가 결혼한 것도 아니고 성격 알 만큼 알고 결혼했으면서 이제 와 성격 탓하면 뭐 어쩌자는 거예요. 나는 뭐 그런 말 못 해요? 이런 찌질이랑 나는 어떻게 화목한 가정을 꾸려요?”

은하의 말끝에 분노가 맺혔다. 그러나 기세가 부족한 분노였다. 상냥하다는 말을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우리 사회에서 목석같은 여자라는 말을 듣는 것은 충분히 마음 상할 여지가 있는 말일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남편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욱더 그럴 테지. 그 남편, 해도 될 말과 안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닐까. 은하는 분노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기가 죽은 듯하다.


“남편, 화목한 가정에서 못 자랐죠?”

가브리엘이 불쑥 말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그러거든요. 화목한 가정 이루는 게 꿈이에요.”

앗하하하 신경질적인 웃음이 은하의 벌린 입을 통해 쏟아졌다. 하나 우습지 않은 시점에 쏟아진 긴 웃음이 마치 욕이라도 대신 하고 있는 것 같이 들렸다. 자신의 말에 그런 반응을 보이니 혹시 기분 상하지 않았을까 가브리엘의 기색을 살핀다. 다행히 마음 상한 얼굴은 아니다.


“지난주에 말했다시피 우리 집은 그랬어요.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에다가 엄마는 자식새끼 먹여 살리기 바빴고요, 자기 살기도 바빴어요. 사실 내 부모가 어떤 인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3남매인데 연년생인 누나하고는 친했는데 네 살 차이 나는 동생하고는 같은 남잔데도 별로 안 친해요. 나이 차이가 나서 그런가? 동생은 곁을 잘 주지 않아요. 집에선 장남이라고 짐을 지우지는 않았지만 혜택이 더 있지도 않았고요. 식구가 다섯이라도 늘 외톨이 같은 기분이었어요. 말로는 본 게 그런 거밖에 없으니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될 게 뻔하다고 나는 절대로 결혼 안 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랬어요. 세상없어도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내가 그 여자하고 동거하면서 알게 된 거 하나는 나는 어떻게 해도 화목한 가정은 안 되겠더라는 거거든요.”

“왜요?”

엘리가 물어봤다.


“아버지처럼 안 살 거야 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아버지 같은 여자를 만났죠. 성 안낼 땐 천사 같지만 성낼 때는 내 아버지랑 똑같았던. 그러면 나는 도망갔어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슬그머니 도망을 갔죠. 자식이 있었더라면 내팽개치고 아니, 자식에게로 화가 갈 게 뻔한데도 놔두고 혼자 도망갔을지도 몰라요. 내 엄마처럼요. 그 여자의 눈을 피해 하루고 이틀이고 있다가 불벼락이 꺼질 때쯤이면 슬그머니 다시 기어들어 갔어요. 그게 얼마나 비참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패턴이 너무 당연했거든요. 평생을 그렇게 살다 보니 익숙하기만 했지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밖에 못 할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럴수록 화목한 가정에 대한 열망은 더 커져서 더 더 아버지같이 안 하려고 애썼어요. 말하면서 든 생각인데 아버지처럼 안 한다면서 엄마같이 되어 간 건지도 모르겠네요. 형제들도 그래요. 누나는 아버지 같은 인간이 또 있겠냐며 도망가는 심정으로 결혼 엄청 일찍 했는데 아버지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인간 만나 정신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나는 그런 누나에게서도 도망쳤어요. 게다가 절 보세요. 혼인신고만 안 했다뿐이지 사실상 이혼남이죠. 누나 꼴에 저까지 보더니 동생은 절대 결혼 안 할거래요. 시작이 아닌 건 끝도 아니라는 게 동생이 내린 결론이래요. 나도 지금은 동생 의견에 동의해요. 은하님 남편의 집착이 꼭 나 같아서 알아챘어요. 사람은 못 가진 건 그렇게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건가 봐요.”


“엘리님, 남편 얘기 좀 더 해봐요.”

연마담이 말했다.

“남편은 6남매의 막내예요. 시댁은 시골이고요. 제가 개룡남 할 때 눈치채셨겠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요. 특별히 화목한 것도 아니고 직업이 좋은 것도 아니에요. 평범하게 사는 집도 있기는 해요. 형제가 많다 보니 나이 터울이 많이 지잖아요. 남편 태어났을 때 시부모님은 이미 나이가 많았대요. 시골 사람들이다 보니 자식 많이 낳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또 그렇게 낳은 자식이 되게 귀하지도 않은 그런 집이었어요. 계절 작물로 고사리 농사짓고 배도 있어서 고기도 잡고 했다는데 돈이 제법 됐대요. 딸린 입이 워낙 많고 야무지지 못한 시어머니와 술 좋아하는 시아버지 때문에 돈이 모이질 않아 그렇지. 자식들은 고사리 농사에 동원됐고 아들들은 새벽 조업에 따라나서기도 했대요. 남편은 어려서 육체노동에선 많이 피해갔는데 대신 관심을 많이 못 받았나 보더라고요. 그러면서 잘 된 지금은 또 기대하는 게 은근 많거든요. 결혼 초에는 기본적인 양치습관 같은 것도 되어있지 않아서 치과 진료비만도 엄청 깨 먹었어요. 씻는 것도 습관이 안 들어있었고요. 대체 자식을 어떻게 키워온 건가 싶었어요. 신혼 때는 이 사람이 남편인지 데려와 키우는 애인지 싶었다니까요. 가브리엘님 아버지처럼 시아버지는 술 마시거나 수틀리면 난동부리는 캐릭터였고 막말도 심했대요. 다른 자식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남편에게는 그게 자라면서 큰 상처였나 봐요. 그래 놓고서 정작 지는 할 짓이 없어서 그 짓을 따라 하더라고요.”


“어머 은하님. 가정폭력?”

눈을 동그랗게 뜬 엘리가 말을 다 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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