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23-3) - 다섯 번째 수다모임

10월 22일 금요일 오전 10시 53분 다섯 번째 수다모임(3)

by 서화림

“가정폭력이긴 한데, 좀 웃겨요.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어느 날 저희가 가볍게 부부싸움을 했어요.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니었고 그냥 몇 마디 투덕거렸을 뿐이었어요. 남편이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더라고요. 저 찌질이 또 집 나갔다면서 저는 소파에 앉아서 욕하고 있었죠.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비밀번호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편이 들어온 거예요. 저는 며칠은 집에 안 들어올 줄 알았거든요. 그러더니 성큼성큼 와서 다짜고짜 제 머리 채로 제 목을 졸랐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 안 가시죠? 이거 듣는 사람들 다 그래요. 저 머리 길잖아요. 제 머리카락을 제 목에 둘러 가지고 목을 졸랐다고요.”

생전 처음 듣는 희한한 폭력 묘사에 할 말을 잃었다. 차라리 주먹으로 때렸다고 한들 이것보단 덜 놀랐을 텐데.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연마담이 입을 열었다.

“기세만 등등했지 아프다거나 실제로 목이 졸린 건 아니거든요. 이거 놔라. 놓고 얘기하라고 했어요. 놓긴 하더라고요. 대신 거실에 있는 애들 장난감을 발로 차고 집어 던지기 시작했어요. 입으로는 온갖 욕을 다 하면서요. 애 키우는 집이니 거실에 별별 장난감이 다 널려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중에 애들 타고 다니는 바퀴 달린 플라스틱 차 같은 거 있잖아요. 포크레인 같은 거. 그걸 번쩍 들어서 던지는데 파편이 온 사방에 다 튀고 와,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진짜 밤새도록 그걸 치웠어요. 이웃집에도 다 들렸을 건데 며칠간은 외출하면서 누구 만날까 봐 창피하기도 했고요. 아무튼, 애들도 있는데 자꾸 이러면 신고하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녹음하고 있었어요. 증거가 필요하니까요.”

어으, 엘리가 알아듣지 못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전화해서 이런 일로도 출동하냐 물어보니 온대요. 그러면 좀 와달라고 해서 결국 경찰이 왔어요. 다행히 경찰 올 때까지도 남편이 그러고 있어서 따로 증거 같은 건 필요 없었죠. 둘이 떨어트려 놓고 나한테는 자초지종을 물어보더라고요. 머리카락으로 머리 조른 것도 폭력으로 들어가서 고소할 수 있다더라고요. 그럴 생각은 없고 대신 기록은 남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그건 남는대요. 그렇게 해서 경찰은 돌아갔어요. 경찰도 어이없어하더라고요. 변호사라면서 알만한 양반이 이랬다고요. 이런 식이에요. 소심하고 찌질해요.”


“지난주에는 이런 이야기까지 다 하지 않으셔서 사정을 모르니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오늘은 은하님 마음을 더 이해하기 쉬워요.”

“저도요.”

내가 말하자 재빨리 엘리가 덧붙였다.


“부부싸움은 어쩌다 하게 된 거예요?”

연마담이 물었다.

“처음에요?”

“네.”

“그게요, 우리 둘이 말이 달라요. 싸우고 얼마 안 지나 애 생일이 있어서 만난 날 저녁에 둘이 그날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근데 서로 기억하는 게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외출하는 문제로 싸웠거든요. 그날이 주말이었는데 남편이 쉬는 날이라 오후에 애들을 봐주기로 했어요. 저는 이게 웬 횡재냐 싶었을 거 아니에요. 그날 제가 ‘그날’이라 굉장히 피곤했거든요. 남편도 알고 있었고요. 진통제 먹고 좀 자야겠다 싶었는데 둘째가 집에 있기 답답하니까 징징거린 거예요. 애들 데리고 놀이터를 간다고 해서 옷 챙겨줬는데 애 둘 데리고 혼자 갈 자신이 없었나 봐요. 같이 가자는 거예요. 처음부터 가자고 했으면 모를까 쉬라고 해놓고 가자고 하니까 김새잖아요. 게다가 그날인데. 그래서 제가 옷 갈아입으면서 나까지 꼭 가야 하냐고 한마디 했거든요. 그랬더니 팩해선 나가버린 거였어요. 그래가지고 다시 들어와선 그 사달이 났다는 게 제 기억인데 남편은 제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가기 싫다고 욕을 했대요. 그래서 본인이 그렇게 화가 났다는 거예요. 자기를 무시했다면서. 암튼 뭐만 하면 무시당했대.”


“은하님, 진짜 욕하셨어요?”

엘리가 말했다.

“저는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런데 그랬다고 우기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죠. 그러고 나와서 담배를 피는 데 그래도 주말인데 집에만 있는 애들 생각이 나더래요. 어떻게 해볼까 하고 집에 다시 들어오는데 신발 벗는 자기한테 제가 그랬다는 거예요. 눈깔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그때 완전 눈이 뒤집혔다고 그러더라고요.”


“은하님은 기억에 없는데 남편분은 은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고요? 그런 일이 자주 있었어요?”

“자주는 아니고 부부싸움하고 화해할 때면 한 번씩 남편이 그런 소리를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다들 흥분해서 싸움이 벌어진 상황에서 상대가 뭐라는지, 내가 뭐라는지 어떻게 다 정확히 기억하겠어요?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왜곡도 해서 받아들일 테고 자기 유리한 대로 각색도 할 테고 그렇지 않아요?”


“아니, 그렇긴 한데 만약 진짜라면 나라도 눈깔 바로 뜨라는 말 들으면 화가 날 거 같기는 해요. 물론 남편 행동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요.”

은하의 눈치를 보며 엘리가 말했다. 옆자리 가브리엘도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했다면 그럴만한데 나는 안 그랬다니까요?”

억울하다는 투로 은하가 말했다.


“그럼 은하님, 우리 상식선에서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볼까요. 제가 하나씩 짚어볼게요. 다퉜어요. 이유는 몰라요. 상관없어요. 어쨌건 다퉜는데 남편이 평소 같으면 나가서 다시 안 들어왔을 텐데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들어왔어요. 그건 그 전의 다툼은 설사 은하님이 옷을 갈아입으며 욕을 했다 하더라도 남편분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갈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다투면 나가서 잘 안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날은 마음을 돌릴 여지가 있었다는 거죠. 남편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면 남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그렇게 돌아왔는데 갑자기 사람이 돌변해서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어때요, 은하님이 제일 잘 아시겠지요.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요? 분노 앞에서 이성을 잃기도 하겠지만 평소 남편의 화를 내는 패턴은 어떤가요?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그럼 남편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느새 은하가 윤마담을 부르는 호칭이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가브리엘도 그러더니.


“제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은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요. 한 번에 다가오는 게 없을지도 몰라요. 단지 제 말을 기억하고 그 순서를 따라가면서 은하님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예약했던 대로 은하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흐르지요? 몇 마디 나눈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오늘 모임에 참석한 소감을 한마디씩 해볼까요?”

모두를 향해 윤마담이 말했다.


“저는 좋았어요. 맨날 좋았다고 대답하는데 진짜 좋았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또 어디 가서 들어보고 또 하기도 하겠어요?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얘기 들으면서 역시 결혼은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점점 더 결혼은 남의 얘기같이 느껴져요. 어쩌지?”

가장 먼저 엘리가 말했다.


“저도 좋았습니다. 남의 남편에게서 내 모습을 찾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봤네요. 은하님 마음 상할까 봐 말은 못 했지만 자란 배경이 비슷해서 감정이입이 확 되더라고요. 그, 남편분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도 알겠고요. 낯선 남자에게서 아는 남자의 향기를 맡았달까요. 남편한테 잘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으로 가브리엘도 말했다.


“저는 자란 환경도 다른데 사랑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은하님의 남편분께 동질감을 느꼈었어요. 그리고 은하님 말씀하시는 거 들으면서는 은하님이 정말 제 남편하고 똑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를 남자로 바꾸면 은하님의 남편이, 제 남편을 여자로 바꾸면 은하님이 되지 않을까 듣는 내내 생각했거든요.”

“개똥이님, 남편 이야기 좀 해주지 그러셨어요. 제가 얘기를 너무 많이 하느라 틈이 없었죠. 다음 주에는 꼭 개똥이님 남편 이야기 좀 해주세요.”

내 얘기가 끝나자 은하가 사정하듯 말했다.


“이거,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오늘 모임의 소회가 아닌 은하님에게 하고 싶은 말하기가 되었네요. 좋아요. 이런 것도 좋지요. 그럼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은하님도 한 말씀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윤마담이 슬쩍 운을 떼자 벽에 붙은 엽서를 한동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은하가 말을 이어받았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다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남 탓이라고, 그때는 저는 나는 다 잘하는데 남편 잘못으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당당했겠어요. 얼마나 당당했는지 내가 이러고 산다고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까요. 듣는 사람들도 제 입장에서만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다들 너 고생 많다고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하니까 진짜 저는 제가 다 당한 건 줄만 알고 떳떳했거든요. 오늘 처음으로 내가 알던 게 틀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확실하게 그렇게 결론 내린 건 아닌데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막 벌렁거리네요. 지금 좀 복잡해서 생각이 잘 안 되긴 하는데 아까 개똥이님 질문하신 거에 대답 못 한 건 지금 하려고요. 솔직하게 말하는데, 맞아요. 저 이혼 이슈가 없었으면 남편이 하는 사랑 소리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지나갔을 거예요. 물먹고 체했어? 웬 헛소리야 하면서요. 이혼하자 하니까 그 소리가 싫다는 말도 핑계고요, 강하게 얘기 안 했으면 기억도 못 했을 거예요. 그리고 싫어하기도 했을 거예요. 가지가지 한다면서. 둘 중 한 명만 편할 수 있다면 전 제가 편한 걸 선택했을 거 같아요. 이미 안정되게 살고 있는데 이제와서 변화도 싫었을 거고요. 아이, 이렇게 말하니 저 진짜 나쁜 년 같네요. 저 여기 처음 왔을 때만도 진짜 이혼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흔들리려고 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엘리가 달래듯 말했다.


“은하님,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요. 나쁜 년 되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요? 본인을 너무 과대평가하는데, 진짜 나쁜 년인지 아닌지 우리 좀 더 알아내 봅시다. 기운 내서, 은하님이 왜 사랑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도 알아보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거 낫는지도 좀 들여다보고요. 여기 실력 있는 의사가 넷이나 은하님을 주시하고 있잖아요. 여력 있으면 자기도 청진기 들고 나서서 엘리님 가슴도 들여다 보고 가브리엘님 마음도 열어보고 개똥이님 속도 뚫어보게 같이 붙어요. 함께 가봅시다!”

연마담의 말에 엘리와 가브리엘 두 미혼남녀가 와아 소리를 내며 손뼉을 쳤다.


“모두 옆 사람들 손을 잡아볼까요? 개똥이님, 유부녀라도 손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요? 남편분에겐 우리가 비밀로 해줄게요. 모두 손 한번 잡아봅시다. 따뜻한 손도 있고, 차가운 손도 있고. 땀이 났을 수도 있어요. 모두 살아있는 손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어서 이렇게 만나고 살아온 이야기도 하고 손도 잡을 수 있습니다. 그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서로 한마디씩 해주죠. 수고했어요. 사랑합니다. 오늘 잘 왔어요. 듣기 좋은 한마디를 건네봅니다. 좋은 말을 하면서 내 영혼도 정화되고 듣는 사람의 마음도 치유해 봅니다. 말에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답니다. 여러분 모두는 큰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도 파란 하늘 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가 보세요. 가시는 걸음 저기 멀리서 먹구름이 드리진 않을지 제가 우산 챙겨 들고 까페 디짜이에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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