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오전 열한시 십분 여덟 번째 수다 모임(2)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했었어요. 시어른들 대하는 게 마냥 편치는 않았어요. 저를 그리 예뻐하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매주 같은 시간을 골라서 전화를 걸었어요. 목요일 오후 한 시. 숙제 먼저 끝내고 TV 보듯이요. 곧 주말이 다가올 테니 데미지가 가장 적을 요일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한 번씩 노발대발 하셨어요. 왜 이제야 전화를 하냐면서요. 매번 같은 때 거는 전화인데도요. 화를 너무 불같이 내시니까 그 재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저는 대꾸도 못 했어요. 그냥 어느 장단에 맞춰 놀아야 할지 몰라 늘 반쯤 얼어 있었지. 언젠가였어요. 뜬금없이 시어머니께서 제게 그러셨죠. 너, 너무 니 남편 믿지 말아라. 상황 파악이 안 돼 어리둥절한 제게 너 하나 이혼녀 만드는 거 어려운 일도 아니다, 너 내가 너 때문에 아프다고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우면 어쩔래? 처음에는 그 아이가 콧방귀도 안 뀔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내가 나이를 먹어 진짜 아프고 여전히 그게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하면 그때도 내 아들이 여전히 니 편을 들어줄 것 같니? 설사 이혼 안 하고 산다 하더라도 절대 그 가정이 화목하게 유지가 될 수는 없을 거다.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가셨어요. 어떻게 보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주고받는 일상적인 안부 인사 전화에서 주고 받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죠.”
“재벌 아들이라도 돼요? 아님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라도 되나?”
엘리가 콧방귀를 껴대며 말했다. 그녀의 콧방귀에 따라 움직이는 어깨를 따라 수술이 화려한 귀걸이가 신경질적으로 흔들렸다.
“아뇨, 그냥 평범한 집의 회사원 아들이에요.”
“줄줄이 낳아만 놓고 니들끼리 알아서 크라고 한 우리 시부모만 이상한 줄 알았더니 여기 더 이상한 부모가 있네. 아들이 변호사인 우리 시부모도 나한테 그런 식으로는 안 대하는데.”
은하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묘하게 활기 있어 보인다. 세상 괴로움을 나만 얹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밝음 같아 보였다.
“그래서 개똥이 님이 문제 제기를 하고 남편과 갈등하게 되신 거예요?”
연 마담이 물었다.
“아뇨. 남편은 지금도 몰라요. 제가 말하지 않았거든요. 저도 가브리엘 님과 같아요. 다만 도망치려 발버둥 쳤을 뿐이에요.”
“아니 왜 말을 안 해요? 남편 사람 좋다면서요. 그 정도 말도 안 통할 사람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요?”
엘리가 외쳤다. 오늘따라 유달리 화려한 그녀의 노란 귀걸이가 그녀보다 더 화를 내고 있는 것 같다. 귀걸이가 밀어붙이는 과도한 감정에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이라면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그 말을 듣고 겁을 먹었던 거예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는 시어머니가 무서웠거든요. 그 말이 가진 악의도 무서웠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다는 것은 배 이상으로 무서웠어요. 그리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당사자 앞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실행도 할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의 결혼생활이 타인의 손에 달렸다, 그 사실이 너무도 두려웠어요. 그분이 아니더라도 우리 결혼생활은 충분히 위태로웠잖아요. 그래도 우리끼리 사니 못 사니 하는 거 하고 누가 끼어들어 갈라놓겠다고 선전포고를 받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더라고요. 저는 그만 두 손을 놓고 뒤로 나자빠졌어요. 만사가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죠. 시어머니만 문제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물이 가득 담긴 컵을 넘치게 만든 건 시어머니가 맞죠. 전 단지 시어머니가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어요. 마치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을 일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요. 꼭 시어머니만 문제인 것처럼요. 당연한 얘기지만 멀어져 있다고 해서 관계가 변하지는 않더라고요. 대신 여기가 베트남 오지라 인터넷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전화를 걸지 않는 것으로 저는 도망쳤어요.”
“시부모님은 개똥이 님이 치앙마이에 있는걸 모르시나 봐요.”
“시부모님뿐 아니라 친구 두 명과 남편을 제외하곤 제가 치앙마이에 있는걸 아무도 몰라요.”
“개똥이 님 부모님도요?”
“네.”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엘리는 그 이상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이 고마웠다.
“근데 왜요? 왜 자기 가족에게까지도 말 안 하고 온 거예요? 전 그 부분은 이해가 안 가는데요.”
복병은 다른데 숨어 있었다. 엘리 대신 말을 꺼낸 건 은하였다. 나는 말을 고르기 위해 신중해야 했다.
“어...... 처음에 엄마는 저보고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애초에 이 난리가 다 저 땜에 벌어진 일인 줄은 꿈에도 모르니까요. 신혼집 정리하고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친정으로 돌아와 있으라고 하셨죠. 그때 전 말은 못 했지만 정말 속으로 펄쩍 뛰었어요. 그 당시에 전 뭐든 절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건 다 적이라 여겼거든요. 해외 파견을 빌미로 별거를 하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애초에 갈등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계셨으니까요. 말한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으셨을 테고요.”
“아니 어떻게 가족끼리 그런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개똥이 님 가족도 좀 화목하지 않은 거 아니에요?”
눈치를 보던 엘리가 냉큼 질문했다.
“살면서 중요한 일이 생기죠. 특히나 자식 키우면서는 그렇지 않겠어요? 자식이 커 갈 때마다 학교라던가 진로라던가 중요한 일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과정에서 부모의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반대 받느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어요. 자연스럽게.”
“왜요, 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열 살? 열 한 살쯤? 부모님 방에 들어가려다 문 앞에서 그런 말을 들었어요. 아무리 늦되었다 해도 이쯤 되면 머리가 트일 때가 된 게 아니냐고. 절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어요. 말 뒤에 붙은 한숨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 후로 저는 늦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치 나 때문에 존재하는 말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늦된 존재란 결국 미덥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런 자식이 선택하는 길이 성에 찰리가 없잖아요. 부모님은 제가 선택한 진로를 지지해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하다못해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것조차도요. 그러면서 제가 다른 길을 찾을 때면 능력 부족으로 처음의 길을 관철하지 못했다며 속상해하셨죠.”
“아니 그게 뭐예요, 전 이해가 하나도 안 되는데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거 이상한 억지 아니에요? 애들이 크면서 꿈이 얼마나 많이 바뀌는데. 저만 그런 거예요?”
얘기를 듣던 엘리가 한숨을 푹푹 쉬며 주위의 동의를 구했다.
“개똥이 님은 뭐가 하고 싶으셨어요?”
연 마담이 물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치고 싶었어요. 대단치는 않아도 소질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는 제가 피아노를 배우는 것조차 찬성하지 않았어요. 동네 유행에 따라 온갖 종류의 학원을 다 다녔는데 피아노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일 년을 졸랐어요. 저는 좀체 뭘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아니었거든요. 그런 애가 일 년을 넘게 졸랐는데도 요지부동이었어요. 어느 날은 도저히 견디질 못하고 피아노 학원 다니는 친구를 따라가서 레슨을 들은 거예요. 선생님이 책도 줬어요. 못 보던 걸 들고 들어오니 엄마가 그게 뭐냐고 물어봤어요. 사실대로 얘기했죠. 결국 엄마에게 설득당해 저녁에 피아노 교재를 학원에 갖다 주고 왔어요. 작은 실수조차 매를 들던 그 엄하던 엄마가 긴 시간 저를 설득하며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아서 정말 기억에 남는 하루였어요. 어쨌건 피아노도 배우고 야단도 안 맞은 날이었으니까요. 그 후 몇 년이 지나 겨우 피아노 학원에 다닐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일 년도 못 채우고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엘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처음엔 더더욱 맹렬히 피아노가 치고 싶었어요. 그러다 서서히 피아노에 관심을 잃어갔어요. 아니, 포기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아요. 어린아이에게 4, 5년이란 정말 긴 시간이잖아요. 그 오랜 시간을 공을 들였는데 실패했으니 좌절했던 거죠. 엄마는 그 정도 배웠으면 됐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중학생 때 학교 갔다 오니 거실에 피아노가 있는 거예요. 저 그날 정말 어이없었거든요. 학원 한번을 속 시원히 안 보내주더니 피아노를 사준다는 게 웬 말이에요. 근데 엄마 표정이 어때, 대단하지, 어서 좋아해. 그런 표정인 거예요. 그날 저는 속마음을 숨기고 정말 좋아하는 척을 했어요. 아주 펄쩍펄쩍 뛰었어요. 그날의 제 모습을 스스로는 굴욕적이라고 평가해요. 권력에 고개 숙인? 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치고 싶지 않아도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피아노를 치기도 했어요. 엄마는 기왕 산 피아노, 뽕을 뽑고 싶어 했거든요. 하지만 전 성인이 된 후에는 피아노를 치지 않았어요. 결혼하면서 엄마가 신혼집에 그 피아노를 보내줬어요. 자기 집에 두어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싫다고 하면서요. 원치 않는 피아노를 받고선 뚜껑 한번 안 열어봤어요. 조율도 안 된 상태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가 정말 싫어요. 언젠가 꼭 갖다 버릴 거예요.”
“그 후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연 마담이 질문했다.
“그럼요. 그 피아노는 상징적인 사건이에요. 엄마가 저의 꿈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저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쭉 소설가가 꿈이었어요. 자식 꿈 반대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엄마는 당연스럽게 반대하셨죠. 휴학하고 글을 쓰고 싶다 했을 때는 니가 쓰는 게 글이냐고 하셨죠. 심지어 저 국문과생이었는데.”
“어머, 심했다. 그래서 개똥이 님은 뭐라 반응했어요? 엄마가 한번 써보라고 맞받아쳤어요?”
“아뇨, 제가 언젠가 장롱에서 엄마가 친구에게 쓴 편지를 발견했는데 글을 정말 잘 쓴 거예요.”
“그래서 아무 말 못 했어요? 실제로 엄마가 글을 잘 쓰니까 인정, 이 정도 쓰면 남한테 뭐라 할 수 있겠다 하면서 가만있었어요?”
“네.”
“왜요?”
당황스러웠다. 나보다 더 감성있게 잘 쓴 엄마의 글을 봤고 그걸 쓴 장본인이 내 글이 별로라고 말했기에 나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사실로 느껴졌다. 여기서 왜요가 왜 필요한 것일까?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여덟 개의 눈빛은 나에게 동조하지 않는다.
“개똥이 님, 사실적시에 의한 모욕도 몰라요, 사실적시에 의한 모욕?”
엘리가 포문을 열었다.
“모욕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엄마가 딸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은하가 거든다.
“개똥이 님, 개똥이 님은 살찐 사람에게 돼지라고 부르는 게 옳다고 생각하세요? 공부 못 하는 사람에게 바보라고 부르는 건 어때요? 당연하다 생각해요? 지금 보니 개똥이 님이라면 당연하다 생각하겠네.”
마침내 연 마담이 가세했다. 나는 기세가 기우는 것을 느낀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싫어요.”
“어째서요? 지금 개똥이 님 반응은 전교 일등 하는 애가 꼴등한테 똥멍청이라고 하니까 꼴등이 쟤는 나보다 공부 잘하니까 나한테 그런 말 할 수 있지, 하면서 넘어가는 것과 하나 다를 것 없는데.”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짠가? 이거랑 그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순간 맞받아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다른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개똥이 님, 엄마의 글 어느 부분이 그렇게 좋던가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문장이라던가 구절 있어요? 개똥이 님이라면 틀림없이 기억할 거예요.”
연 마담의 말에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뇨,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어요. 단지 글의 이미지가......”
“이미지가?”
연 마담이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는 기분이다. 그녀의 응원에 조금 더 힘을 얻는다.
“글의 이미지가 다정했어요. 굉장히 감성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연 마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개똥이 님이 엄마보다 글 더 잘 쓰는 거 맞죠? 그렇죠?”
엘리가 몸이 달아 연 마담을 채근했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쓴 글 한 조각을 읽어본 적도 없는 그녀가 어찌 내 편이 되어 저리 소매를 걷고 나설 수 있단 말인가. 고마운 말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개똥이 님. 우리는 개똥이 님이 쓴 글을 읽어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개똥이 님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말이 곧 글인데 개똥이 님은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니까요.”
맞아요, 맞아요 하며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에 괜스레 멋쩍다.
“물론 개똥이 님의 재능을 엄마에게서 물려받았을 수도 있어요. 자식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에게 니가 쓰는 게 글이냐? 이런 막말을 해서는 안 되죠. 오히려 내 자식의 재능이 나에게서 왔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부모 마음 아니겠어요?”
우리 중 유일한 부모인 은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개똥이 님 어머니는 남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자식에게 했어요. 그런데 자식인 개똥이 님은 그 말을 듣고는 그게 사실이라면서 제대로 된 자기방어조차 하지 못하네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대답을 원하는 이는 없으나 뭐든 말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답을 내놓고 싶은 욕심에 입안이 마른다.
“다정함이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엄마의 편지 속에 담긴 다정함은 제가 늘 엄마에게서 받고 싶었던 것이거든요. 언감생심 질투조차 나지 않았어요. 그걸 받을 엄마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런 다정한 글을 쓰는 엄마는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고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왜곡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말하기 전까지는 뭐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입을 벌리자 말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가브리엘도 이런 심정으로 많은 고백을 했었을까. 내가 내놓은 답이 나의 진실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그도 그랬을까. 그리고 그 진실에 상처받았을까. 갑자기 옆자리에 앉은 가브리엘이 나의 전우처럼 느껴진다.
“이런 말을 하는 순간조차도 저는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했나요? 제 동생이라면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엄마가 뭘 아냐고, 엄만 늘 그런 식이라고 화를 냈을 거예요. 저도 그랬어야 할까요? 아니면 선생님 말씀처럼 엄마가 직접 써보지 그러냐고 무안을 줬어야 했을까요? 저는 말대꾸조차 별로 해본 적이 없는 자식이에요. 제 머릿속에는 그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 어떤 대응을 한다는 반응 자체가 들어있지 않아요.”
“개똥이 님,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는 개똥이 님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개똥이 님의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거지. 아시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말한 걸까, 연 마담이 타이르듯 말했다. 탓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건 안다. 단지 무언가 답이 정해져 있고 그걸 세상 사람 전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에 답답했다.
“좋아요. 이 질문은 우리가 집단 모임을 가지며 세웠던 개똥이 님의 상담 목표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알겠죠?”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말했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든다.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내 대답이 끝나자 은하가 또 손을 든다. 은하는 오늘 자기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쉬는 동안 은하에게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예전에 가브리엘 님이 그런 말씀 하셨잖아요. 사랑이 중요하고 사랑을 못 받으면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그 말이 계속 귀게 남아서요. 저 남자가 자꾸만 사랑 타령을 하는데 저러다 진짜 회까닥 돌아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대번에 가브리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은하는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