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생일인데, 병원에 있어서 어떡하냐면서 아침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온다.
생일은 물론 소중하다. 그러나, 정여사가 곁에 있어서 챙겨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갑자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거 같다.
다행히 정여사가 회복을 잘하고 있어서, 저녁 시간에 잠깐 나가서 아이들과 병원 근처에서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정여사는 밤새 혼자 있을 수 있으니, 집에 가서 자고 오라고 했만,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저녁을 챙겨주고 잠깐 외출을 했다. 사실 병원에서 알면 기암 할 노릇이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끌어안았다.
큰아이가 엄마가 없으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수고했는지 알 것 같다는 기특한 말을 한다.
식당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각자 쓴 편지를 건네준다.
그동안 생일 축하 카드를 많이 받았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날뻔했다.
특히, 남편의 고운 글씨체를 보자마자 울컥했다.
우리 집의 중심이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항상 밝게 있어줘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남편과 부인의 사이라기보다는, 전우에 가깝다.
그러니까, 생사고락을 함께 지나온 전우 말이다.
삶의 풍파를 여러 번 겪어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들에 의연하다.
겪어온 만큼 서로를 의지하고 견고해졌으니, 전우가 맞다.
둘 다 늦둥이로 태어나서, 어릴 때는 집안의 이쁨만 받고 세상모르고 살았는데,
정작 나이가 드니, 부모님들의 연로하셔서 아프기 시작하셨고, 병간호도 꽤 오랜 시간 했다.
신랑은 자조 섞인 말로 너와 나의 직업은 노인전문요양보호사 라고 했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에는 항상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간호를 하거나, 부모님 생일과 겹쳐서 같이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이 없을때는 여행도 갔지만,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부터는 챙길것이 너무 많아 여력이 없었다.
이번 생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전과는 전혀 다른 끈끈함이 느껴진다.
아이들도 엄마의 수고를 알아주고, 할머니를 걱정해 주니, 대견하고 고맙다.
무엇보다, 내 짝지가 제일 그 마음을 잘아준다. 그것만으로 충만하다.
아들이 편지에 고사축이라고 써주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고마워! 사랑해! 축복해!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의 방식대로 즐거운 생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