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주말을 보낸 정여사는 월요일에 일반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의료노조 총파업으로 의료인력이 없어서 조기 퇴원을 하라는 것이다.
지난 주말 생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온 정여사에게 바로 퇴원이라니.....
"제대로 걷지 못하시는데 어떻게 나가나요?"
나도 모르게 간호사님께 쏘아붙였다.
의료노조 나름의 고충은 충분히 알겠지만, 환자와 환자가족이 이문제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퇴원이나, 전원을 하라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암센터는 정말 위중한 암 환자들만 오는 곳이다.
갑자기 병원을 환자가 알아서 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 상황에 헛웃음만 났다.
며칠 전 응급실에서 병원이 파업한다고 나가야 한다던 어느 부녀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일단, 상황은 벌어졌으니, 근처에 병원을 구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실밥과 주렁주렁 달렸던 주머니들을 제거할 수 있었고,
나머지 치료는 외래에서 하기로 하고, 근처에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상황이 급박해서 근처 병원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렸다.
몇몇 병원은 장루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고, 몇몇 병원은 1인실이 없었다.
여러 번의 전화 끝에 1인실이 있는 병원을 찾았다.
잠시 병실에서 나와 1층 로비에서 전화를 하는데, 기자들과 카메라가 보였다.
의료파업에 관한 취재를 하는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가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노와 사의 문제는 반드시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환자의 가족으로서 병원에서 쫓겨나 각자도생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말이 되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카메라 옆으로 사설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환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환자복이 아닌 본인이 입고 온 등산복을 입고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할아버지였다.
거동조차 힘들어 구급차에 실려 나가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옆에서 전화하는 어느 중년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병원을 못 구했다고 어쩌면 좋냐고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다.
뉴스에 나오는 의료파업소식을 내가 직접 겪으니, 우리만의 섬에 따로 사는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소외된 기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다.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무엇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태말이다.
순간 의료노조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볼모로 하는 행위라고 비난을 받았을 텐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여사의 안위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겨를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정여사는 쫓겨나듯 이른 퇴원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갔다.
다급하고 혼란했던, 생사의 갈림길에서 강인한 정신의 정여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