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호핑 전문가인 여자
해양 액티비티(activity)의 천국 보라카이에서 제일 특색 있는 활동을 꼽으라면, 단연코 호핑이라고 말하고 싶다. 호핑은 한 발로 껑충껑충 뛴다는 hop이라는 단어에 ing를 붙여 명사화 한 말이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서 물결이 좋은 포인트에 내려 스노클링을 하고, 근처에 다른 섬(크리스털 코브 섬)으로 가서 현지식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섬을 둘러보고 바다낚시를 하고 다시 돌아오는 일정으로 오전에 출발하여 오후 늦게 돌아오는 일정이다. 말 그대로 여기서 껑충 저기서 껑충하면서 돌아다니는 투어인 셈이다.
우리 부부는 호핑을 정말 좋아하는데, 깊은 바다로 나가 스노클링을 하면, 고요한 바닷속 세상이 보인다. 떼 지어가는 작은 물고기들, 산호들, 이름 모를 생물들이 바삐 움직이는 게 보인다. 바닷속에 어찌 이리 귀한 생물들이 숨어있어나 싶고,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가 절로 생각나기도 한다. 또, 점심으로 만들어 주는 칠리 크랩, 칠리 새우, 포크바비큐는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이다. 한국이라면 맵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매콤함과 달콤함에 해산물 특유의 짭조름함이 어울려, 해체해서 먹는 귀찮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맛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호핑을 이번에는 친정 식구들에게 경험하게 해 줄 차례였다. 세부와 보홀에서도 호핑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한 달 동안 세부 특파원- 한 겨울에 만나는 아일랜드 호핑 참조) 보라카이 호핑이 바닷속 자연과 깊게 교감하는 게 훨씬 좋았다. 보라카이 한국 여행사의 호핑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약간의 디테일이 달랐다. 어떤 여행사는 보트에 대형 미끄럼틀을 달아서 뛰어내리는 재미가 있는 호핑이 있고, 어떤 여행사는 2층 보트를 가지고, 직원들이 함께 흥을 돋우는 안무와 함께 신나는 선상파티처럼 즐기는 호핑이 있고, 어떤 호핑은 섬투어와 점심에 집중한 호핑이 있었다. 우리는 점심이 맛있고, 중간에 제트스키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호핑투어를 선택했다.
아침부터 12명의 식구가 준비를 해서, 블라복비치(우기에는 보라카이 화이트비치 앞바다에 파도가 높아서 섬 뒤편 블라복 비치에서 출발한다고 한다)로 모였다. 작은 보트를 타고, 조금 나갔더니, 큰 보트(빅방카-큰 보트를 빅방카라고 하는데 보트 옆에 나무를 덧대어 그물막을 친 구조가 특징이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다. 가는 동안 보트에서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맥주와 음료수를 나눠주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사람들의 어깨가 너 나 할 것 없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가판대로 나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언니가 내 옆에 와서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 춤 좀 보여요~~ 아빠 심심해!"
나는 '구순의 어머니를 위해 칠순의 아들이 재롱을 부렸다'라는 설화처럼 엉덩이를 흔들어 재꼈다.
요즘 유행한다는 삐끼 삐끼 댄스를 음악에 맞추어 흔들었다. 여기저기서 민망한 듯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반장님과 정여사 님은 신나게 박수를 쳐주셨고, 언니들은 부끄러운 듯 크게 웃었다. 제일 놀란 건 우리 아이들이었다. 한숨을 쉬듯 엄마가 저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부모님께서 즐거우실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흔들어 재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스노클링 포인트에 내렸다. 각자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다들 무서워했지만, 바닷속 니모들의 세상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파도가 높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고요한 바닷가를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다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즐겁게 웃으며 한없이 수영했다.
이제 우리는 크리스털 코브섬으로 갔다. 우리가 크리스털 코브 섬으로 간 이유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 위함도 있지만, 동굴에서 스노클링을 하기 위함이었다. (우기에는 파도가 높아 동굴에서 스노클링을 하지 못한다.) 좁고 깊은 계단을 내려가면 바다와 이어지는 동굴이 나온다. 바위에 앉아 채비를 하고, 바다로 나아갔다. 남편은 정여사를 모셨고, 나는 이 반장님을 모시고 함께 바다로 나아갔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 처음 나가 본 이 반장님은 몹시도 긴장하셨고, 바위 사이에 걸어진 밧줄을 꼬옥 잡으셨다. 나는 괜찮다고 달래며, 안전요원을 불렀다. 안전요원은 이 반장님께 튜브를 씌어주었다. 우리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놀란 듯했지만, 이 반장님은 금세 적응하셨다. 조금씩 앞으로 나오니, 남편과 함께 있는 정여사가 보였다. 이 반장님은 자신도 모르게 정여사를 손을 잡아 앞으로 끌어주었다. 본인도 무서울 텐데 중심을 잘 못 잡는 아내를 보고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정여사를 사랑하네~ 사랑해!" 하며 이 반장님을 놀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 순간이 너무 기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놀이를 제대로 즐길 수도 없었던 우리가 이 먼 곳까지 부모님과 함께 와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부모님이 우리와 함께 한 발짝 바다로 나아갔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두고두고 이 일을 꺼내어 이야기할 것 같았다.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진심으로 이 순간에 몰입했다.
신나는 물놀이 후에, 우리를 기다린 건 한국화 된 현지식의 점심이었다. 이 호핑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닭다리 바비큐, 포크립, 칠리 크랩과 새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낌함을 잡아줄 사발면까지 식구들 모두 만족하는 점심이었다. 사발면을 주시며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포크립하고 칠리크랩 만드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려서 고생하는데, 다들 사발면을 좋아하신다고 참 아이러니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느끼함을 사발면 국물이 달래주어 요리가 완성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나게 먹고, 기념사진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른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한 5분 이상을 달렸을 무렵 직원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한 명이 배에 타지 못 해 작은 배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호핑을 많이 다녀 봤지만, 배를 못 타는 사람도 있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아까 떠나기 전 섬에서 저 멀리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는데, 그게 그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잠시 뒤에 언니가 오더니, 나에게 말했다.
"혹시 우리 신랑 못 봤어?"
"형부? 언니 쪽에 계신 거 아니었어?"
아이 설마 그러면 지금 오고 있는 그 사람이 형부란 말인가? 우리는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한국 가이드분이 우리에게 와서 말씀하셨다.
"지금 남편이 없어진 것도 몰랐죠? 우리 직원들이 인원수를 세는데, 한 명이 없어서 무전 쳤어요~"
"어머머머~~~ 세상에~~~ 몰랐어요 정말!"
이윽고, 형부가 급박한 얼굴로 배 위에 올라섰다. 놀란 듯한 얼굴의 형부를 보자마자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조난자의 구사일생을 축하하듯 모두가 한마음으로 박수를 쳤고, 우리는 빅 이벤트를 선물한 형부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니, 화장실 갔다 온다고 했는데, 배가 이미 출발했더라고... 도착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들 손뼉 쳐줘서 잘 넘어갔네~~ "
"형부! 덕분에 너무 즐거웠어요~~ 오늘의 빅 이벤트예요~~"
우리는 연신 어머 어머를 외쳤다. 그리고는 우리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벽을 잡고 신나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 12명은 잊을 수 없던 호핑을 끝내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형부의 빅 이벤트로 우리에게 최고의 액티비티는 호핑이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보라카이 최고 액티비티는 호핑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