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DNA가 싫었지만, 뼛속까지 오지라퍼인 나
공휴일 오후, 마트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휴일에는 장을 보지 않는 나는 살짝 당황스럽다.
간단한 물건만 사는데도 계산줄이 길다.
키오스크를 간절히 바라던 나는, 길게 줄 선 카트들을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짧은 줄을 찾기 위함이다. 그때, 내 앞에 할머니 한분이 토마토 한팩을 계산하기 위해 서 계시는 게 보였다.
'저기로 가는 게 좋겠군…'
나는 눈치작전에 성공한 뿌듯한 얼굴로 줄을 선다.
할머니 옆에는 아들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말끔한 스타일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는 무심한 듯한 자세로 어머니를 챙겼다.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챙기는 모습에서느껴지는 츤데레 같은 익숙한 동작을 보니, 평소의 유대가 느껴진다.
이윽고, 할머니의 차례가 되었다.
계산원이 마트 멤버십이 있으시냐고 물었고, 아들은 없으니, 그냥 계산해달라고 했다.
계산원은 멤버십이 있어야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은 괜찮다고 했다. 그사이 옆에 있는 우리 언니가 나의 멤버십을 내어주라 한다. 때마침 나는 포인트 적립을 위해 마트 앱 켜고 바코트를 열고 있었다. 계산원분에게 내 거를 써도 되는 거면, 이걸로 처리해달라면서 내 핸드폰을 드리 밀었다. 아들은 고맙다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계산화면에 토마토가 9,900원에서
7,900원으로 찍힌다. 다시 한번 고맙다고 한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백화점 방향으로 나갔다.
언니와 나는 2천 원 할인이라는 어마어마한 디스카운트에 뿌듯해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말했다.
“근데, 저 사람 굳이 할인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고맙긴 해도,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 저 사람 옷차림이랑 들고 있는 백화점 쇼핑백을 보면 2천 원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을지도 몰라.”
“아~~ 오지라퍼! 그럴지도 몰라! 할머니랑 같이 오신 모습이 좋아 보여서 우리가 오지랖 부린걸 수도 ㅠㅠ
이거 다 엄마 때문이야 “
맞다! 이건 우리 집 정여사 때문이다.
우리 어릴 적부터 정여사의 오지랖을 보고 자랐다.
한동네에 오래 살고 있는 정여사는 친척들, 지인들 ,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친척조카들 서울로 올라와 자리 잡는거 도와주고, 취직시켜 주고, 돈 빌려주고, 지인들 송사 문제가 생기면 아는 사람들 연결해 주고, 지인들과 지인들의 자녀들 취직까지 알아봐 주고, 쌀 챙겨주고, 먹을 거 챙겨주는 사람들이었다. 정작 우리들은 알아서 살길 찾아야 했다. 그때는 정여사의 그런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인 거 같았다. 어떨 때는 도와준 엄마에게 뭐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우리들은 왜 그렇게 까지 하는지 속상할 뿐이었다. 자신도 잘 사는 거 아니면서 실속도 하나도 못 챙기는 정여사를 이해하는날이 오기는 할까?
근데, 오늘 보니, 언니와 나도 오지랖의 DNA가 뼛속까지 있었다. 도와줄 수 있는데, 도와주지 않으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 같다. 그래도 꼭 실속을 챙겨야겠다 다짐한다.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