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도통 이해 할 수 없었던 여자
고전 독서 모임에서 지난주까지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재형 옮김 문예출판사>
읽고 나서 바로 내용을 정리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쓸게 많았다.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이 소설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또한, 역사적인 배경과 작가인 카잔차키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베르그송,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기독교로부터 반 기독교인으로 매도되어 탄압을 받았다 함
조르바의 삶은 니체의 실존주의 그 자체인듯하다. )
그리스와 튀르키예와 국가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초반에 더 빨리 책에 몰입할 수 있었을 거 같긴 했다.)
그러나, 차츰 읽어 갈수록 조르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주인공인 나는 책상머리 지식인이고, 조르바는 진정한 자유인이며, 휴머니스트이다.
나(주인공)는 책에 빠져있고, 글을 쓰고, 생각이 많으며,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조르바는 현재, 즉 지금 여기에 충실한 본능적인 인물이다.
조르바는 배고프면 먹고, 즐기려 술을 마시고,
여자들을 너무도 사랑하며(그렇지만 여자를 사랑할 땐 진심으로 한 여자만 사랑한다),
무아지경으로 산투리를 연주하고, 신나게 춤을 추며, 현재를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이치와 자신만의 염치를 아는 인물이다.
아래의 내용은 조르바의 이런 성향을 나타내는 구절들이다.
p23> 내가 마음이 내키면 칠게죠 알았죠? 일이야 당신이 원하는 만큼 당신을 위해 해주겠소
하지만 산투리를 켜는 건 달라요. 그건 자유를 필요로 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요
기분만 내키면 산투리를 치는 건 물론이고 노래도 부를 거요
p52> 전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산답니다.
p82> 난 조르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 믿어요. 조르바가 다른 인간들보다 나아서가 아닙니다.
조르바가 내가 유일하게 아는 인간이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모든 인간은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게 죽는 겁니다.
조르바의 세계는 완전히 붕괴하는 거예요
p92> 보스,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둬요. 눈뜨게 해 줄 필요 없어요. 그 사람들이 눈을 떴다고 칩시다, 뭐가 눈에 들어오겠어요? 자기들의 비참한 처지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그냥 두 눈 꼭 감고 꿈이나 꾸게 내버려 둬요
만일 그들이 눈을 떴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어요?
p288> 뭐든지 다 볼 수 있어서 우는 겁니다. 만일 내가 성상을 그리는 화가라면, 눈도, 귀도, 코도 없는
성모 마리아를 그릴 겁니다. 성모 마리아가 너무 불쌍해서 말이에요
p330> 예전에는 부활절이 되면, 내 영혼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었는데... 다 끝났어요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먹게 되지요 그중 일부는 남아 날 자극해서 춤을 추게 하고,
노래를 하게 하고, 말다툼을 하게 하는 거지요. 나는 이 일부를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p352> 보스, 이 세상은 불의 그 자체예요! 정말 이지, 불의 그 자체라고요!
나 조르바는 비록 벌레처럼 하찮은 놈이지만, 이놈의 세상을 받아들이걸 거부하겠습니다.
늙다리들은 여전히 살아있는데, 왜 젊은것들은 죽어야 하는 겁니까?
p372> 우는 건 부끄럽지가 않아요 남자들 앞에서 우는 건요 남자들끼리야 뭐 부끄러운 게 있나요? 하지만 여자들 앞에서는 언제나 용감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울기 시작하면 그 불쌍한 것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다 끝나는 거지요
p386>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오로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일나는 일뿐입니다.
p440> 혹시 신부 나부랭이가 찾아와서 내 참회를 듣고 고해성사를 하려고 하면 차라리 내게 저주
내리고 얼른 꺼지라고 해요! 나는 살아생전에 안 해본 일이 없이 다 해봤지만,
그래도 아직 못 한 일이 있소. 나 같은 사람은 한 천년은 살아야 하는데... 편히 주무시오!
아래는 내가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장면들이다.
첫째는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던 주인공이 완전히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는 장면이다.
p355> 저게 진짜 사내의 모습이지. 나는 조르바의 고통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두꺼운 피와 단단한 뼈를 가진 진짜 사내는 힘들 때는 닭똥처럼 굵은 눈물을 흘리고,
기쁠 때는 형이상학의 체로 걸러내느라 자신의 행복을 잡치는 일 없었다.
두 번째는 주인공이 친구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산길을 거닐며 생각하는 장면이다.
p421>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산물이며,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상징이라는 눈부신 외관을 하고 나타나지.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야. 그것들이 우리를 발견하려고
멀리서 올 필요는 없어. 그것들은 먼 곳에서는 우리에게 전해는 메시지가 아니라고,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생겨나며, 우리들 밖에서는 전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해.
우리의 영혼은 그 메시지들의 수신자가 아니라 전송자야.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세 번째는 조르바가 죽는 장면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답게, 본인의 의지로 먼산을 바라보며, 호방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을 꼽으라며, 단연코 아래의 문장 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 번밖에 살 수가 없다. 다른 삶은 없다.
그리고 이 삶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즐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곳뿐이다.
영원히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적인 재미보다는 캐릭터의 재미에 빠져 읽은 소설이다.